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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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587회 작성일 20-09-07 00:09본문
그 숲에 내 시를 놓아두고 왔다. 발가벗은 내 집 문으로부터, 숲은 눈에 보이는 거리 내에 있었다. 박새 한 마리가 담 위에 내려앉았다. 그 새는 숲으로부터 왔다고 했다.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내 피부에 닿지 않고 피부 안쪽 저 너머 파도소리가 멀리 스산한 파란빛 통각의 안으로 침입해들어갔다. 누군가 숲은 죽음이라 했다. 죽은 나뭇가지 바싹 마른 잎들만 가득하다고 했다. 누군가 숲은 시취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멀리서 바라보는 숲은 청록빛 물결이 윤기 도는 가지 위에 넘실거렸다. 나는 열개 손가락들이 죄다 꺾여진, 치마가 훌쩍 위로 올라가 앙상한 다리가 더 앙상해보이는 소녀에게 눈이 갔다. 소녀는 청보리 내음 생생한 벽장 안 이불 더미로 기어올라갔다. 그녀 또한 숲으로부터 왔으리라.
나는 숲으로 향하는 길이 없다고 들었다. 개암나무 열매가 잠 못 이루는 밤이면 창백한 북극성이 하늘 꼭대기로부터 칙백나무 정수리 위에 차가운 오줌을 쏘아내린다고 했다. 구공탄 피우듯 매캐한 연기 파닥이며, 허공에 머무는 새가 끝내 둥지를 찾지 못한다고 했다. 가장 높은 나무 꼭대기에는 폐선 한 척이 달랑거리며 매달려있다고 들었다. 돛이 없는 기둥 위에 날카로운 칼날로 등뼈를 새긴다고 했다.
내 시는 어디 있을까? 언어의 융단을 흙바닥에 깔면 투명한 압박에 흙알갱이들이 몸부림치고 아득히 높은 것이 허공 중에 일어선다. 숲이 날 찾아왔다. 내 시는 숲이 되었을까? 내 시는 박새가 되고 높은 가지 위를 넘나드는 청설모가 되고 신비한 녹음 사이로 퍼져나가는 현악사중주의 화음이 되었을까? 마주르카의 섬세한 두드림이 되었을까? 파랗게 숨쉬는 고깔모자를 얻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숲이 조금 더 멀어지는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화음을 낮추면 내 숨이 더 가빠지고 발바닥에 박힌 가시가 뽑히지 않고 숲으로 가는 길은 없다. 숲이 날 찾아오는 일도 없는 것이다. 계피나무 잎 청록빛 숨결이 부르르 몸 떤다. 높은 가지에서는 연분홍빛 둥그런 것이 침묵 속에 썩어간다. 향기는 허공의 굴곡 따라 모이거나 흩어져간다. 나는 숲이 환상이라 생각하지만, 어쩌면 숲이 날 환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댓글목록
창가에핀석류꽃님의 댓글
창가에핀석류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 숲은 시공을 초월한 여러 관문을 지나야 들어갈 수 있는 코렐리시의 발상지이며
귀착지가 될 처녀지와 같이 느껴집니다. 결국 그 숲은 시인 자신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감각이나 사유로 느끼기 보단 내면의 떨림으로 더듬어 읽어 내야 하는 산책인지라
무척 즐겁군요. 아름다운 시 잘 읽고 갑니다. 혹, 오독이라면 너그럽게 ㅎㅎ
고맙습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제 시보다 석류꽃님의 평이 더 아름답습니다.
잡아도 잡히지 않고
세상 모든것에 겹쳐 환상을 자아내기도 하는
그런 것에 대해 써보려고 했습니다. 거기로부터 제 시가
출발하고 있는 것은 아마 맞는 것 같습니다.
늘 혜안을 갖고 계셔서 놀라게 되네요.
소녀시대님의 댓글
소녀시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코렐님 의 묘즘시를 보면황당합니다
숲에시를 놓고간다는설정부터 말도안되고
요즘숲에서 시쓰는사람 있을까요
키스신이나 베드신하는뎌가 숲아닐카요
적오도 자금의 한국사회에서는
솔직하계 독자가 공감하는 범위가낫지않을카요
시마을오십받아봐야 껌값도안되느거 진실한
자기작품 진실한 자기감정 돈 섹스 연애 이런거
왕련의 자운영은 정신과 치료중
감삽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 숲이 물리적 숲으로 보이십니까? 저 위에 석류꽃님이 쓰신 대로
시공간을 넘어선 문을 몇개는 열고 가야 닿을 수 있는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
그런 세계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심각한 난독증상이 있으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