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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백나무 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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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409회 작성일 20-12-26 10:01

본문

편백나무 애기




1. 

편백나무 숲엘 간 적 있다. 

다도해를 여는 통영 

미래사 뒤편에 

끝 모를 길이 편백나무들 

사이로 뻗어있다. 


길이 조금 몸을 꿈틀거리면 

편백나무가 그 방향으로 

기울어져서 울울한 청록빛 

상흔이 향기와 섞여든다. 흙을 집어 

그 알싸한 맛을 혀 끝에 놓으면 

부르르 

떨리는 내 몸이 편백나무들 

사이 바닷바람에 속부터 

시쳐진다. 



2.


초여름 편백나무는 하얗고 

가는 나이테가 오똑한 코와 슬픈 눈을 그린다.


편백나무 애기는 미래사 적적한 마당 수국들이 

만발한 돌계단 앞에 앉아 있었다. 


편백나무 애기는 처마에 흐느끼는 풍경 

소리를 듣고 있었다. 


편백나무 애기는 치마 위에 떨어지는 햇빛이 

쨍!

하고 금속성의 울림 내는 것을 듣고 있었다.


편백나무 애기는 어린 가지 끝에 솔방울

만큼 아련한

고통이 맺히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편백나무 애기는 위태로웠지만

그만큼 외롭기도 했다.


편백나무 애기는 아주 먼

길을 걸어 적멸 바로 앞에 서서 

날 그리워하는 중이었다.



3.


어제 들어간 어느 천장 낮은 집에서 

편백나무 애기를 다시 만났다. 


편백나무 애기는 작은 못을

얼굴에 박고 낯선 표정으로 

거울을 쓰다듬고 있었다. 

거울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아서 

나도 그만 거울과 같은 방향으로 

쓰러지고 싶어졌다. 

어둠과 같은 음향으로

흐느끼고 싶어졌다. 


편백나무 애기는 내내 

날 그리워했다고 소곤거렸다. 

밖에는 이미 어둠이 내리고 있다고. 

편백나무 애기는 거기 앉아서 

깨끗한 숨으로 싸락눈처럼 

손에 닿자 녹아버릴 아주 짧은

영원을 내게 속삭이는 것이었다.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21-01-05 13:19:59 창작시의 향기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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