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비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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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656회 작성일 22-03-23 08:54본문
블랙 비너스
세이프웨이에 갔다가 계산대에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보았다.
키가 2미터는 됨직한,
검고 곧은 등뼈에
찰흙으로 마구 붙여댄 울퉁불퉁한 근육들.
무거운 해시계처럼 아래로 가라앉는 두 유방들.
성난 신이 매서운 엄지손가락으로
난폭하게 푸욱 찔러 놓은 배꼽.
일곱개의 별들을
한 자리에서 잉태한 거대한 골반.
그녀는 사막에 혼자 서 있었다. 임팔라들이 그녀 그늘 안으로 모여들었다.
녹슨 쇠로 만든 가면을 얼굴에 눌러쓴 원숭이들이
작고 푸른 빛 도는 조약돌들을 그녀에게 바쳤다.
그녀는 협곡 석벽에 아로새겨진 바람의 물결
100년에 1인치씩 깊어진다는 심연의 바닥
소금기로 문질러진 상처를
두 다리 사이에 감추고 있었다.
그녀는 똑바로
푸른 빛 도는 유리창을 투과하여 지나가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 나의 비너스. 널 스쳐지나가며 본 적 있다.
새하얗고 창백한 버섯들이 마리화나 연기 포자를 내쏟는 뉴욕 거리
그 어느 것도 내게 감히 가까와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너는 사자의 가면을 쓰고
주유소 의자에 앉아 빨간 모자 무심한 표정
가슴을 열고 쥐어뜯어낸 따끈한 심장으로
이 현란하게 돌아가는 거리의 풍경을 출산하고 있었다.
그러노라면
손톱을 쥐어뜯듯 강렬한 비트로
너는 내게 콸콸 오줌을 쏘았다. 제사장의 투명하도록 얇은 옷을 찢고
모락모락 황금이 피어오르는 똥을 내게 누었다.
너는 원숭이들의 폐렴과 코로나 바이러스와 누군가 보도 위에 토해놓은 마약을
하루에 1달러가 오른 휘발유 가격을 마구 씹어 먹었다.
더럽게 이어진 담들이 네 애액에 흠뻑 젖어
반들거리며 휘황한 몸부림에 휩싸였다.
나는 무언가 떠올라서 널 다시 쳐다보았다.
너는 묵직한 가지에 청록빛 짙어져가는 잎들을 쥐고서
조용히
허공을 쏘아보고 있을 뿐이었다.
네 골반뼈가 썩어 움푹 들어간 구멍 속에
청설모들이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은빛으로 반짝이거나 혹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쓰레기들이
네게 모여들고 있었다.
댓글목록
콩트님의 댓글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Body World'
전시회를 관람한 적이 있습니다.
인체의 신비에 대한 궁금증으로 방문한 그곳에는
시체들의 조각들로 모자이크를 했더군요.
기증받은 시체인지 구입한 시체인지는 모르겠으나
남녀 시체를 이용해 섹스 장면까지 적나라하게 연출했더군요
시를 감상하다보니 당시의 영상이 떠올라 몇자 남깁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쇼핑몰에서 본 흑인여성을 보고 감동 받아 쓴 글입니다. 이미터는 됨직한 큰 키에 당당한 체구,
뭔가 원초적인 생명력과 강렬한 힘을 주는 그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장희님의 댓글
이장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루부르 박물관 비너스상을 떠올려 봤습니다.
물론 화면으로 본 것이지만 참 숙연해 졌던 기억이 납니다.
시인님이 본 비너스상 저도 보고 싶네요.
시로 심상을 떠올리며 넘 궁금해 져요.
시인님 시로 남아 빌렌도르프 비너스상을 상상만 하다가 갑니다. ㅎㅎ
좋은 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
늘 건필하소서, 코렐리 시인님.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빌렌도르프 비너스는 아름답다기보다 몸의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엉덩이, 거대한 유방을 가진
다산의 상징입니다.
원시적인 생명력과 그 생명력의 그로테스크함에 대해 적어보고 싶었습니다.
tang님의 댓글
tang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현상학적 미학이 아름다움 추구에 형용적인 수구적 지성을 이입하려 하나 봅니다
순수를 이겨 미학의 얼개를 열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합니다
장구함을 사용하여 흡인력 있게 된 점 좋습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제 시가 님의 말씀을 조금이라도 따라가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