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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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느지막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2회 작성일 22-07-26 10:08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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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온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본의가 아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철부지를 아궁이 속에 집어넣었다
갓 태어난 그릇
시한부를 가지고 태어난 모든 것들
소멸 이후를 무시하다가 부정하다가 외면하다가 나중에는 두려워한다
무상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고, 변화에 시달리다가
그릇은 차츰 금이 가고
나를 만든 모든 것은 자연으로 봉인된다
*
허공에 뿌려진 소리가 정처없이 돌아다니다가 너에게 걸렸다
감추고 싶은 나의 비밀이 주책없이 튀어나왔다
이목구비가 멀쩡하게 찾아와서 흔적없이 사라지는 머리 없는 몸통
분명 소리는 있었지만 남아 있지 않은 말
네가 없는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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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이 허물어지면, 그런 때가 온다면, 우리 안에 우주가 끝없이 팽창하고
자기로부터 자유로운 삶이 찾아온다
새장을 벗어나는 새로운 세상
우리로 통일되는 나는, 날개 없는 추락이 기다리고 있는 줄 모른다
*
어제와 같은 하루가 오늘을 물고 간다
어제가 쌓인 지난 날이 쪼그라든 어깨를 감싸고 있다
화려한 등장을 뒤로 한 지나간 풍물
가랑비에 젖은 파뿌리가 좁아진 골목길을 오르고 있다
한고비에 머물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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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돌고 돌아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쳇바퀴
시작과 끝이 모호하여 항상 애매하다
흙을 뒤집어쓴 땅 속에 흙
삿대질은 아니라도 핏대 오른 얼굴들
남 따라 무난한 길
구태여 생각할 필요 없으니 얼마나 홀가분한가
*
더디갈 이유가 있어서 버티는 게 아니다
암흑이 두렵다고 돌아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안다
오래 되면 녹슬어 삐걱거리는 불편
마감 전에 유혹은 당신을 괴롭힐 줄 모른다
지금 같이 살다가 어느 날 잠자듯 그냥 그대로
늦은 저녁의 바람은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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