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기억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박성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1,172회 작성일 16-01-04 20:43본문
몸의 기억
산과 산을 넘으며 벌초를 한다.
포터에 실린 짐 사이로 당숙과
당숙의 어린아들이 흔들리며 산을 넘었다
올해는 짐이 좀 많다는 생각에 동생과 나는
차에서 내려 깊은 산길을 천천히 걸었다
짙은 풀내음 속에서 낯익은 그 길이 건네는 눈인사에
이 길을 넘어가던 옛날의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모든 연장이 크고 서툴렀던 그때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것이다
작고 무른 몸으로 들일을 하다
드는 낫이 지나가고 손가락 두 개가
대롱대롱 파란 하늘 아래에서 열렸다
아버지는 얼른 입고 계시던 런닝을 찢어
두 손가락을 둘둘 말아주셨다
어린 나는 형이 운전하는 자전거에 실려
산 너머 큰 벌에 계신 의원을 찾아
이 산길을 넘었다
둘둘 말렸던 한 덩이의 런닝이 횃불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 불덩어리에서 핏덩이가 눈물처럼 뚝뚝 떨어질 때 쯤
지친 형의 몸이 비틀거리며 좌우로 흔들릴 때 쯤
비릿한 그 피내음에 산짐승들이 내려오지나 않을까
두려움에 눈물이 날 때 쯤 그때서야
멀리 의원이 계신 마을이 눈으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짙은 풀내음 속으로 동생과 나는
멀리 의원의 집을 비틀거리며 찾아가는
어린 형제의 뒤를 말없이 따라갔다
몸이 기억하는 그 아픈 시간들을 따라 가는 우리들 뒤로
나무와 나무사이 조각 난 파란 하늘이
만국기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이 게시물은 시마을동인님에 의해 2016-01-12 18:50:13 창작시에서 복사 됨]댓글목록
안세빈님의 댓글
안세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양수로 부터 물려받은 몸의 기억은 치매가 걸려도 숟가락은 드는 법입니다.
형제,
자매,,,,,,,,,,,,,,,,,,,,,,,,,,,,,,,,,,,
.
삶이 각박해지면서 내가 형제를 버렸다 해도 묻혀질때 몸의 기억은 치매가 아닐듯합니다.
삶의 기억에서....
살아계신 백석시인님께...
박성우님의 댓글의 댓글
박성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말이 형이지.. 나보다 두살 많던 형은 덩치가 나랑 비슷했습니다.
그 먼 산길을 자전거로... 지금 생각하면 깜놀입니다.
두 아이만 그 먼 길을 보낸 부모님도 정말 깜놀입니다. 요즘 같은 상상도 못할....
덕분에.. 아직도 손톱이 쪼개져 나옵니다.
Sunny님의 댓글
Sunny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유년의 집은 외딴 잠실이였지요
놀 친구도 없고 뭐..그러다 보니 아제야 꽁무니 따라다니며 놀던 때
나무하는 산에 따라갔지요
아제가 톱으로 소나무 한 그루 넘어뜨려놓고 지게에 있는 낫 좀 갖다 달라했지요
그 낫을 든 그 때
하필 저녁 노을이 왜 그리 아름답던지
그만 엎어지고 말았지요
지금도 내 오른 손 중지에는 그 아제야가 있고 그 저녁노을이 있지요.
그 아제, 우리집에서 3년 살았었는데..
그때는 몰랐지요
주인집 딸 손 아무는 동안 얼마나 가시방석이였을까???
한번쯤 보고 싶기도 하지요
그때 나이도 스무살 채 안밖이였을 텐데.
처음으로 잠시나마 마음 설레 본 사람이였는데.. ㅎㅎ
박성우님의 댓글의 댓글
박성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서울에서도 나무 하던 시절이~~
그 아재 상처 아무는 동안 가시방석 이었을 듯~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추억은 시간의 미궁으로 떨어져 쌓이는 부식토...
추억은 생명보다 길다"
앙리 보스코, 『이아생트』에 나오는 말이지요.
스토리텔링이 아름답네요.
박성우님의 댓글의 댓글
박성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것도 촌에서 많은 걸 경험하지 못한 거에 대한 자격지심 일 겁니다~
맨날 추억의 부스러기나 만지작 거리는~
건강하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