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방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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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핑크샤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1,777회 작성일 15-07-28 22:10본문
정의의 여신이 들고 있는 저울은
왜 기울어져 있는가? 라는,
명제를 삶속에서 실현해보겠다고
한 때는 백골단과 맞대면도 했으며
또 한편으로는
부족한 지식의 창고를 채우기 위해
닭장 같은 고시원 방에서
누더기로 만든 책이 제법 많았지만,
존재가 불분명한 운명의 여신은
명제를 오직 명제로만 남겨둔 채
시뻘겋게 헐떡이는 늑대처럼 나를
출구 없는 세상으로 내몰아 갔다.
초등학교 3학년의 솜털 구름 같은
빈약한 이상(理想)만으로도
나는 나의 선택에 자족하였으나
어설프게 짜 놓은
시나리오 속 엑스트라처럼
단 한 번의 컷 소리와 더불어
퍼뜩 죽어버린 ‘고베'의 소처럼
시커멓고 거대한 권력에 짓밟혀
외마디소리만 남긴 채 죽어지냈다.
그러다 다시 한 번 겨우 부여잡은
무지개빛깔 브릿지를 걷던 환상은
시간을 달리는 야망가에게 빼앗기고
못다 핀 나의 청춘은
붉은 산자락 아래서 사랑을 접었다.
유기된 나의 이십 대 삶에 대하여
유책 관계자들의 표정 없는 얼굴은
상황논리로 무장된
너덜너덜한 누더기 같은 법을
지치지도 않고서 기워내고 있으나,
언제나 그렇듯이 20대 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아름다운 방황을 한다.
[이 게시물은 시마을동인님에 의해 2015-08-03 08:48:20 창작시에서 복사 됨]
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젊음과 좌절이 동의어로 읽힐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OTeL에 가서
좌절에 열(H)를 달아주려 노력해도 맹공탱 지나 고자가 되었으므로 잘 안 되더군요.
좌절이 또한 좌정으로 읽힐 때도 있습니다.
이십대는 아마도 절망을 먹이로 하고 불편을 양식으로 하는 시기였다는 생각도 듭니다.
일찍이 도를 통한 자들은 김산 말대로 조루이거나 지루이거나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박차고 나가 빌어먹을 밥그릇이나 챙겨야 한다면
이 세상은 먹이사슬 맨밑바닥에서 나 잡숴 하는 '크릴' 같은 것이겠는데 흰긴수염고래가
마셔도 잠시 크릴은 유영할 것입니다. 아 캄캄한 밤이다 하고
그러나, 크릴 한마리 고래 숨구멍을 뚫고 솟구치면 더 넓은 하늘, 그리하여
크릴이 날아오르면 마치 청새치가 치솟듯 날아가면
무력한 시기도 무력 시위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방황과 방랑은 달라서
방랑은 투척할 뿐이겠으나 방황은 단단한 동아줄에 매달려 절벽도 오르리라 싶습니다.
工과 法 잘 버무려, 탄탄대로 시커멓게 웃는 아스콘 깔고
활보하시길 바랍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핑크샤워님의 댓글
핑크샤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활연시인님의 멘토가 가슴에 꽂히는 군요, 그 시절엔 왜 그렇게 제도권에 도전장을 내고 싶었는지, 왜 그렇게 붉은 혁명을 꿈 꾸었는지, 그러다기 인간적인 나의 20대는 유기된 채 세월이 흘러 , 돌아보니 아쉬움이 남는 시절이었습니다, 날씨도 우중충 마음도 우중충, 해서 적나라하게 저를 드러내놓고 자신을 난도질한 날이었습니다, 깊이를 가늠할 수없는 시인님의 지식에 무한한 경의를 표합니다/ 늘 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