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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난감한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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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金嗤國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1,407회 작성일 16-01-2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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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난감한 슬픔




나는 클리셰를 신봉하는 편입니다
주저리주저리 씨부리는 걸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운동장은 먼지들의 산란장이고 땅바닥에 그린 선은 그림자가
조금 오른쪽으로 당길 수도 있습니다 땅따먹기는
리얼리즘의 꼬리뼈입니다
나는 사실보다는 사연이 좋습니다

말의 차이를 까먹기도 하니까
바짝 다가가 섬가에 자라는 나무의 연골을 분명히 보았다 생각하는데
눈먼지였거나 눈먼 짓이었거나(말장난을 좋아합니다) 어쩌면 한밤중에
다섯번째 늑골이 철봉인양 매달려 놀던 아이가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집 첫째는 나도 모르는 항적도를 그리고 있습니다
둘째는 가려운 목과 팔꿈치 안쪽을 긁으며 괴로워합니다
습관적으로 자해하듯 자꾸 긁어댑니다
발갛게 붓고 긁힌 자국이 선명합니다
엘보는 늘 당기는 힘으로 지치니까요
우리집 안쪽은 바깥에 있습니다 바퀴자국을 따라 나가고
바퀴자국을 따라 돌아옵니다
나는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연필을 깎거나 칼로 손톱을 손질합니다
깎아내고 덜어내고 뼈대와 살점 몇만 붙여야 할 것을
말도 안 되게 늘여 쓰며 무언가를 적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땐 광염 위를 걷는 광인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제는 늘 부조리에 관한 탐구심이라 그 또한 오래된 클리셰겠지요
바깥은 예년처럼 추운 날씨입니다

우리집에서 직진 좌회전 우회전 그런 식으로 가면 텅 빈 운동장이 있습니다
영화관도 있고 술집도 있고 흘러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세상입니다
있을 건 다 있는데 몹시 궁금한 날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발소 액자에 걸어둔 명작 같은 글을 씁니다


                       ......


걷습니다
침묵 한 그루를 지나칩니다
외면 한 그루를 지나칩니다
폭력 한 그루를 지나칩니다
음모 한 그루를 지나칩니다
모략 한 그루를 지나칩니다
장사 한 그루를 지나칩니다
생계 한 그루를 지나칩니다
어제 한 그루를 지나칩니다
그날 한 그루를 지나칩니다
이렇게 가로수에 이름을 달아주는 건 쉽습니다

걷습니다
부조리 단독 사각형 한 채를 지나칩니다
모르쇠 연립 사각형 한 채를 지나칩니다
탐구심 가득한 연구소 사각형 한 채를 지나칩니다
사각형 아파트는 아파, 아파해, 라고 쓰려다가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둥근 호수와 오목조목 길들과 중심으로 버스가 다니기도 하는 커다란 캠퍼스를 가로질러 갑니다
아직 정문을 통과하지 못한 푸른 아이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길거리에 커피향이 살살 녹습니다

많이 쓰고 싶지만 이발소 명작은 몇 개만 걸어두면 되니까
이쯤에서 그치려다가........................ 또 씁니다
핵심이 뭐야? 라고 묻는 사람도 생길 것 같습니다 그러면 묻겠지요
당신은 상징 몇 마리 구으려고 밤 새오?
아무튼 지루해지기로 했습니다 벽에 걸 그림은
풍경화나 산수화나 아침 햇살에 더욱 빛나는 수채화라면 더욱 좋겠지요
기름은 전쟁터 냄새가 나니까 유화는 가급적 피하고 싶습니다
읽는 것도 지루하고
보는 것도 지루하고
생각하는 것도 지루합니다
모든 걸 기억하면 머리가 터질 것 같습니다
가능하면 빨리 까먹습니다
비둘기들도 그렇게 하고 모이나 쪼아댑니다
그래도 제 짝을 찾는 데는 선수입니다


                       *

무엇을 알아야 하고 무엇을 잊어야 할지
알 수 없는 거리입니다
몇만 페이지의 진실을 어찌 다 읽겠는지요
늘 한마디로 요약되는 거짓이 힘이 더 세니까요
배가 고프니까 라면이라도 끓여야겠습니다 면을 먹고
모자라다 싶으면 밥을 말아 먹겠습니다

말아 먹겠습니다

조개껍데기 같은 시라도 잘 쓰고 싶습니다
이건 순수한 내 욕구입니다 무한대의 자위족은 친구들입니다
나는 모르는 시체를 곁에 두고도 시*를 조몰락거릴 자신이 있습니다



* 脚註: 알아먹을 수 없게 살짝 데치고 뚜껑을 덮어 놓으시오.

모작(模作)
- 연필은 기울기를 마시며 자란다 


              /金嗤國


   3,500mm 상공에 나무가 떠 있다 

   제 몸속 목줄을 꺼내 조금씩 기울면 울적한 물관이 발바닥을 긷는다

   물을 마시자 물이 된 한붓그리기 여러 개 풍선이 되려다 자꾸만 닳아 없어지는 발가락

   나무는 피가 모자라는 밤을 옮겨 적는다 몸속 단단한 밤들이 굴러 불 속을 뛰어들면 탁, 탁 깨지는 소리 물의 입술이 닳는 소리

   나무는 국경까지 걸어가다 되돌아온다 강물도 건너편 산기슭도 무섭지 않지만 몸을 적신다는 게 몸을 녹이는 일이라서 철망색 침엽수림을 데리고 새로운 새장을 찾는다 갇혀 있어야 조롱할 수 있다

   나무가 아가미를 열고 흠씬 공기를 마시자 혀 마른 잎사귀가 물 위에 뜬다




[이 게시물은 시마을동인님에 의해 2016-01-22 13:37:53 창작시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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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고현로님의 댓글

profile_image 고현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생계 나무 한 그루를 지나치다가 아는 체하고 가려고 들렀습니다.
추운 날인데 따뜻하고 배부르게 몸 보존하시고 건필하십시오.
한 며칠 되잖은 목표에 다다르는 꿈만 꾸다가 혼절했습니다.
될 일을 해야겠다 싶어서 다 팽개치니까 참 좋은데요. 히히히
건강하시고 건필을 재차 거듭 기원합니다.^^

추신:시인은 정말 대단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누구나 한다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으흑흑흑...

장라움님의 댓글

profile_image 장라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빤스 벗고 소고기 꾸버 먹을까요.
혹시 마블링 잘 된 젖꽃판 보면 우뚝 설지도 몰라요.
전화하세요. 사금팔이에 헛둘헛둘.

고현로님의 댓글

profile_image 고현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늘과 내일은 안 됩니다. 아까 술시에 어딜가서 깽판을 놓을까 연구중이었는데
하숙집 아줌마가 저 꼬실려고 서정소곡이를 집에 사놨다고 해서 유혹에 까딱
넘어가버렸어요. 되잖은 포도주 낑낑대고 따주고 참내...
서정소곡이 한 절음에 영혼을 비루먹고 있습니다.
몸 좀 만들어서 수원갈비 숙성시켜 놓을터이니 빤스나 쌘삐 입고 오세욤.^^
지금까지 만난 분 중엔 장라움

장라움님의 댓글

profile_image 장라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칼릴지브란의 예언자, 라는 에니메이션 영화를 보는데 목소리 좋은
리암 니슨, 그래서 그가 출현한 더 그레이(The gray)란 영화를 보다말다 했는데,
비행기 추락 후, 생존기...뭐 이런
"살면서 느꼈던 그런 것들이야말로  더 살고 싶게 만든다는 거, 맞서게 만든다는 거"
이런 말을 하더군요. 괴물 같은 늑대들과 맞서는 상황,
어릴 적 난봉꾼이고 제멋대로인 아버지가 있었는데 모든 게
엉망이었지만, 다른 건 딱 한 가지 '시'였다.
극한의 상황인데 자기 얘기를 하는 장면,
거실 벽에 걸어둔 액자에 든 글은 나이가 든 한참 후에 알았지만, 아버지가 쓴 시였다.
장례식 때 읽었다.
"한번 더 싸워보세
 마지막으로 폼나게 싸워보세
 바로 이날 살고 또 죽으세"
오분에 한 편 쓰자면, 이건 뭐 시를 도살하는 지옥이겠다 싶은데, 직방으로 끄적거리고 미안해서
시처럼 생긴 거 하나 흉내. 이름을 김치국(웃을치嗤나라국國)으로 개명할까 해요, 김칫국으로 읽는 사람 혼내주려고...
나중 호젓이 한잔해요.
"살면서 느꼈던 것들이 더 살고 싶게 한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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