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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시인, 일곱 편에서의 인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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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1,256회 작성일 16-01-3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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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시인, 일곱 편에서의 인용들




오우 조지아, 꼬집고 때리고 발가벗겨 모욕을 주고 싶었으나
다정한 입술을 내밀어(독사에게나 물려 뒈져버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서로의 손등에 입 맞추었다 쯔으읏 쯔으으읏……1)


미확인비행물체처럼 떠다니는 말의 정거장들과
폐기처분된 접시들이 중력과 척력 사이에서 부유해요
별과 별 사이를 날 때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을 의심해야 해요
관계는 상대적이지만 상처는 늘 절대적이니까요
날카로운 상처들을 피해 순간이동을 하고
슬픔은 빛의 속도로 버려요2)


나는 어두워서 노래하지 못했네
어두운 것들은 반성도 없이 어두운 것이어서3)


언젠가 꽃 모가지를 리본으로 묶는 걸 보았어
그녀도 그렇게
툭툭 팔을 분지르며 곤두박질쳤지4)


내 손보다 더 큰 접시가 놓인 밥상 위에서
우리는 접시보다 못한 곳이 되어버렸죠5)


도망치고 싶고 그만두고 싶어도
이유 없이 나누어주는 저 찬란한 햇빛, 아까워
물에 피가 번지듯……
희망과 나,
희망은 종신형이다
희망이 외롭다6)


겹겹 밀봉해도 새어나오는 김치 냄새처럼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것, 몸이 흘리는 말이다

누이가 쑤셔박은 농짝 뒤 어둠, 이사할 때 끌려나온 무명천에 검붉은 꽃7)




1) 황병승 시, 「비의 조지아」에서 인용.
2) 여승민 시, 「모자의 진화」에서 인용.
3) 안도현 시, 「그 집 뒤뜰의 사과나무」에서 인용.
4) 임현정 시, 「나무 위의 고양이」에서 인용.
5) 조말선 시, 「손에서 발까지」에서 인용.
6) 김승희 시, 「희망이 외롭다 1」에서 인용.
7) 장옥관 시, 「붉은 꽃」에서 인용.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_ 박민규(소설가).

 


* 한 편이 될 수 없으나, 자의적으로 일곱 편에서 일부를 모셔 와 짜깁기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함.






[이 게시물은 시마을동인님에 의해 2016-02-03 11:21:54 창작시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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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 누구에게라도 읽으라 강요할 수 없지만, 절반쯤 필사했다.
  댓글이 어느 정도 자유롭다면 그것의 일부일 뿐이다. 본문과 연계된 글이라 믿는다.
  불편한 시선에 대해서는 그냥 가볍게 지나치라 권하고 싶다.
  김훈 소설가 개인의 인식이나, 어떤 사실에 대한 적시(摘示)일지 모르겠으나, 도움이 되길 바람.

...................

세월호


      김훈(소설가)


 

  나는 본래 어둡고 오활하여, 폐구閉口로 겨우 일신의 적막을 지탱하고 있다. 더구나 궁벽한 갯가에 엎드린 지 오래니 세상사를 입 벌려 말할 만한 식견이 있을 리 없고, 이러한 말조차 아니함만 못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하되, 잔잔한 바다에서 큰 바다가 갑자기 가라앉아 무죄한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한 사태가 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알지 못하고,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몸을 차고 어두운 물밑에 버려둔 채 새해를 맞으려니 슬프고 기막혀서 겨우 몇 줄 적는다.

  단원고 2학년 여학생 김유민양은 배가 가라앉은 지 8일 후에 사체로 인양되었다. 라디오 뉴스에서 들었다. 유민이 아버지 김영오씨는 팽목항 시신 검안소에서 딸의 죽음을 확인하고 살았을 적의 몸을 인수했다. 유민이 소지품에서 학생증과 명찰 그리고 물에 젖은 1만 원짜리 지폐 6장이 나왔다. 김영오씨는 젖어서 돌아온 6만 원을 쥐고 펑펑 울었다(유민 아빠 김영오,『못난 아빠』중에서). 이 6만 원은 김영오씨가 수학여행 가는 딸에게 준 용돈이다. 유민이네 집안 사정을 보건대, 6만 원은 유민이가 받은 용돈 중에서 가장 많은 돈이었을 것이다. 이 6만 원은 물에 젖어서 돌아왔다.
  아 6만 원, 이 세상에 이 6만 원처럼 슬프고 참혹한 돈이 또 있겠는가. 이 6만 원을 지갑에 넣고 수학여행 가는 유민이는 어떤 설계를 했던 것일까. 열일곱 살 난 여학생은 무엇을 사고 싶었을까. 얼마나 간절한 꿈들이 유민이의 6만 원 속에 담겨 있던 것인가. 유민이가 가지고 싶었던 것들. 아버지, 엄마, 동생에게 사다주려 했던 선물은 무엇이었을까.
  6만 원은 유민이의 꿈을 위한 구매력에 쓰이지 못하고 바닷물에 젖어서 아버지에게 되돌아왔다. 300명이 넘게 죽었고,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의 몸이 물밑에 잠겨 있지만 나는 이 많은 죽음과 미귀未歸를 몰아서 한꺼번에 슬퍼할 수는 없고 각각의 죽음을 개별적으로 애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유민이의 6만 원, 물에 젖은 1만 원짜리 6장의 귀환을 통해 통절히 슬퍼한다.
  아 6만 원, 유민이의 마음속에서 6만 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셀 수 없이 많았고, 유민이가 갖고 싶었던 것은 사소할수록 간절했을 것이다. 이것을 살까, 저것을 살까 망설일 때 그 후보 리스트에 오른 물건까지를 합산한다면 이 6만 원이 갖는 구매력의 예상치, 실현되지 못한 구매력은 몇 배로 늘어난다. 유민이의 선택에서 최종적으로 탈락되었다고 해서 그 탈락된 꿈이 무효인 것은 아니다. 배는 수항여행지에 닿지 못했다. 죽은 많은 아이들의 용돈도 다들 물에 젖어서 돌아왔을 것이므로 그 많는 꿈들은 슬픔과 분노로 바뀌어 바다를 덮는다. 유민이의 지갑에서 돌아온 6만 원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국가재난 컨트롤타워에 성금으로 보내야 하는가를 생각하다가 생각을 그만두었다. 내가 젊은 날 육군에서 힘들 때 엄마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어렵고 힘들 때는 너보다 더 어려운 이 어미를 생각하라, 라고 적혀 있었다. 고지의 겨울은 맹수에게 물어뜯기는 듯이 추웠다. 엄마의 편지를 받던 날 밤에 나는 보초를 서면서 고난을 따스함으로 바꾸어놓는 엄마의 온도와 엄마의 눈물의 힘을 생각했고 자라나는 고비에서 치솟는 반항기로 엄마를 속썩인 패악을 뉘우치면서 가슴이 아팠다. 유민이의 6만 원에도 엄마의 편지처럼 크고 깊은 슬픔의 힘이 저장되어 있어 세상의 불의와 더러움을 밀쳐낼 수 있으며, 말을 알아듣고 사물을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켜줄 테지만 그렇게 말해봐도 산 자들의 말일 뿐, 젖어서 돌아온 6만 원을 위로할 수는 없다. 배 안을 수색하는 잠수사들의 말에 따르면, 아이들이 담요를 둘둘 말아서 배 안의 창문 틈마다 모두 막아놓았다고 한다. 아이들은 그렇게 버둥거리다가 최후를 맞았다. 골든타임도 에어포켓도 컨트롤타워도 다가오는 인기척도, 아무것도 없었다.
  글을 쓰면서 읽은 책을 들이대는 것은 게으르고 졸렬한 수작일 테지만 나는 바다에 빠져 죽을 뻔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별수 없이 책을 들먹인다.
  조선 성종 때 관인 최부崔溥(1454~1504)는 제주도에 공무 출장 갔다가 부친상을 당해 배를 타고 육지로 돌아오는 길에 풍랑을 만났다. 그는 15일 동안 바다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중국 해안에 표착했고 북경을 거쳐 6개월 만에 귀국했다. 그는 바다와 대륙에서의 일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사나운 바다에서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은 이렇다.

            한 채의 이불을 찢어 여러 번 둘러 동여매고 횡목橫木에 그것을 묶어서 죽은 후에도 시신이 배와 함께
            오래도록 서로 멀어지지 않도록 했다.
                _ 최부,『표해록』, 서인범 주성지 옮김, 한길사, 2004, 62쪽

  최부는 이불을 찢어서 배 기둥에 몸을 묶었고 유민이네 학교 아이들은 담요를 말아서 창문 틈을 막았다. 그 마지막 정황에서 인간의 모습은 비슷하지만 세월호는 풍랑에 깨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침몰했다. 차오르는 물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담요를 말아서 창문 틈을 막았는데, 아직 살아 있는 몸의 동작이 생명을 향해 그렇게 작동되어지는 과정의 무서움을 최부의 글을 통해 겨우 짐작한다지만, 거듭 말하거니와 세월호는 풍랑에 깨지지 않고 스스로 침몰했다. 큰 배가 스스로 뒤집혀서 가라앉게 되는 배후에는 대채로 얼만큼 악과 비리가 축적되어 있는 것인지, 그리고 담요를 말아서 창문 틈을 막다가 죽은 아이들과 정치적 행정적 시스템과의 그 참혹한 단절을 어찌된 영문인지를 나는 알 수가 없다. 최부가 표류했던 조선 성종 시대으 동지나東支那 바다는 물결이 사나웠고 세월호가 침몰하던 박근혜 대통령 시절의 진안 연안 여객선 수로는 잔잔했는데, 그 인기척 없는 적막강산의 풍경은 국망과 건국, 전쟁과 재건을 거쳐온 6백 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도 어찌 그리 똑같은지, 내가 얼마 전에 진도 팽목항에 가서 눈물도 말라버린 유가족들과 함께 바다를 바라보니 부르는 소리는 수평선 너머로 퍼져가는데 배 빠진 자리는 흔적이 없고, 바다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國破浪花飛 국파랑화비
        海募號哭散 해모호곡산

        나라는 깨지고 물보라 날리니
        바다는 저물고 곡소리 퍼진다.
          _ 두보杜甫를 흉내내어 지음

  장한철張漢喆(1744~?)은 조선 영조 연간의 제주도 선비다. 26세 때 서울 가서 과거를 보려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가 풍랑을 만났다. 그는 오키나와까지 떠밀려갔다가 중국 상선을 타고 2개월 만에 돌아왔다. 29명 중에서 22명이 물에 빠져 죽었고, 살아서 돌아온 자들도 곧 병들어 죽었다. 부서진 배가 파도에 치솟고 잠기면서 장한철에게 죽음이 다가오는데, 임박한 죽음 앞에서도 인간은 삶을 기약한다. 그때 장한철의 각오는 다음과 같다.

          만일 내가 살아서 돌아간다면 응당 글 읽는 일을 던져버리고 집밖의 일도 벗어던지고 몇 고랑
          안 되는 밭을 몸소 갈면서 쌍오당(둘째아버지의 아호)의 여생을 효성스럽게 받들련다.
            _ 장한철,『표해록』, 김지홍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2009, 68쪽

  임박한 죽음 앞에서 장한철은 삶의 쇄신을 각오하는데 쇄신의 골자는 책을 버리고 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는 언어와 관념의 세계를 버리고 몸과 대지가 부딪치고 엉키는 직접성의 세계에 삶을 재건할 것을 기약한다.

  세월호가 기울고 뒤집히고 가라앉을 때 배에 갇힌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러한 방식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생명의 고유한 원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 물이 차오르는구나, 이제 죽어야겠다, 라면서 죽은 사람이 있을 것인가. 세월호에서 죽은 그 많은 사람들도 장한철처럼 죽음 앞에서 삶의 쇄신을 기약했을 것인데, 그들의 마음속에서 울음으로 끓어오러던 새로운 삶에 대한 각오와 동경, 지나간 삶에 대한 회한과 뉘우침, 이루어야 할 소망과 사랑과 평화와 친절, 만남과 그리움, 손 붙잡기, 끌어안기, 쓰다듬기......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팽목항에서 나는 기막혔고 분했다.
  장한철의 그 일생일대의 각오는 오래가지 못했다. 살아서 돌아온 그는 다시 글의 세계로 돌아갔다. 풍랑 치는 바다에서의 생각과 흔들리지 않는 땅 위에서의 생각은 전혀 다른 모양이다. 장한철은 살아온 지 두어 달 만에 다시 서울로 올라가서 과거에 응시했고, 떨어졌다. 낙방한 그가 다시 배를 타고 제주 바다를 건너 고향으로 돌아갈 때 책과 밭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기록에 없다.
  장한철은 살아서 돌아왔으므로 그의 마지막 각오와 소망을 번볼할 수 있었겠지만, 세월호에 갇혀 죽은 사람들은 돌아와서 번복할 수 없을 것이므로 그들의 마지막 소망은 영원히 유효하다. 그 유효한 소망들이 바다와 육지 위에서 발 디딜 곳을 찾지 못하고 떠돌고 있다. 떠돌고 있지만, 소망들은 유효하다.
  세월호는 화물을 너무 많이 실었고, 선체를 불법으로 증축했고, 배의 균형을 유지시켜주는 평행수를 빼냈고, 갑판 위의 화물을 단단히 묶어놓지 않았기 때문에 배가 흔들릴 때 복원력을 상실하고 한쪽으로 쏠려서 침몰한 것이라고 검찰은 수사결과를 밝혔다. 검찰은 이 부분을 아주 자세히 설명했다.
  검찰의 말은 한마디로, 세월호는 물리법칙을 위반했기 때문에 침몰했다는 것인데, 지구 중력의 자장 안에서 물리법칙을 위반하고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세월호는 가라앉을 만해서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나는 오래전에 졸작소설『칼의 노래』를 쓰느라고 선박과 항해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었다. 내가 읽은 책들은 들이댈 만한 것도 아니고 내가 쓰려는 소서로가 직접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바다의 질감과 선박의 작동원리를 전혀 모르고서는 글을 쓸 용기를 낼 수 없었다. 백면서생이 배의 작동원리를 말하는 것은 꼴 같지 않지만 무릅쓰고 가려 한다.
  20세기의 대형 선박은 모두 쇠로 만든다. 쇠가 어떻게 물에 뜨는가, 쇠건 바위건 나무토막이건 같은 용적의 물보다 가벼우면 뜨고, 무거우면 가라앉는다. 이 세상의 모든 배를 지칭하는 보통명사는 베슬vessel인데 그릇이라는 뜻이다. 그 자체에 용적을 포함하고 있는 운송수단이라는 말이다. 수만 톤의 쇳덩어리는 베슬을 이룸으로써 가라앉으려는 중력과 띄우려는 부력이 길항拮抗하면서 물에 뜬다. 이것은 소금쟁이가 물에 빠지지 않는 이치와는 전혀 다르다. 이 길항의 원리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나오는 신석기 사내들의 고래잡이용 보트(내가 좋아하는 그림!)나 생환율이 50퍼센트에 불과했던 16세기 포르투칼 스페인 네덜란드의 범선이나 명량해전 노량해전 한산해전 옥포해전에서 이긴 이순신 함대의 판옥전선이나 두 동강 난 천안함이나 방위 예산 떼어먹은 통영함이나 멀쩡히 가다가 가라앉은 세월호나 다 똑 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예외는 없고 예외는 곧 죽음이다. 무게중심과 부력중심이 서로를 피하고 또 달래가면서 기우는 배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데 이 양극단의 모순이 한순간의 물리현상 속에서 통합됨으로써 배는 롤링하면서 전진한다. 그런 배가 옆으로 기울 때 이 경사각도가 모순을 통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가면 복원력은 순간에 소멸하고 배는 뒤집혀서 침몰한다. 배는 유柔로써 강剛을 다스리며, 유와 강의 종합으로써 롤링하고 피칭하는데, 배가 롤링과 피칭 없이 뻣뻣하게 파도를 대하면 배는 바로 깨지거나 침몰한다.
  이순신 함대의 배도 그렇지만 전통적인 한선韓船은 연안 항해용이기 때문에 바닥이 평평해서 큰 파도를 만났을 때는 복원력이 약하다. 그래서 한선은 무거운 화물을 배 밑바닥에 싣고, 화물이 모자랄 때는 바위를 실어 무게중심을 낮춘다. 목포 해양박물관에 전시된 신안 보물선도 모든 화물을 배 밑창에 싣고 있다. 이것은 아무런 비밀도 아니고 전문지식도 아니다. 고대 이집트의 갈대배에서부터 적용되는 원리다.
  세월호는 이 모든 원리와 인류의 축적된 경험을 거꾸로 했다. 그러니 어찌 살기를 바라겠는가. 갑판에 과적을 함으로써 무게중심을 위로 끌어올렸고, 배 밑창의 평행수를 빼버려서 배의 중심을 허깨비로 만들었다. 이것이 침몰의 원인인가. 이것은 원인이라기보다는 침몰 그 자체다. 이것이 침몰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배가 뒤집히니까 가라앉았다는 말과 같다. 이것은 동의반복이다.
  세월호 침몰의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화물을 단단히 묶지 않았다는 것이다. 검찰이 그렇게 말했다. 기울어진 세월호의 사진을 보면 갑판 위에는 컨테이너고 승용차고 아무것도 없이 빗자루로 쓸어낸 것처럼 깔끔하다. 배가 기울 때, 화물들이 한쪽으로 쏠려 물속으로 휩쓸려내려간 것이다. 화물을 단단히 묶지 않았다는 수사결과는 맞는 말이다.
  화물을 단단히 묶는 것을 고박 고박固縛이라고 하고, 원양선원들의 전문용어로는 래싱lashing이라고 하는데, 다 같은 말이다. 이것도 별것이 아니다. 지게꾼이 옹기를 묶을 때, 1.5톤 픽업 트럭 기사가 적재함의 짐을 묶을 때, 퀵서비스 오토바이 기사가 뒷자리의 박스를 묶을 때, 그리고 앞에서 썼듯이 조선 성종 때 바다에서 죽음의 위협을 맞은 최부가 이불을 찢어서 몸을 선체에 묶을 때, 이 모든 동작이 래싱이다. 래싱은 흔들리면서 길을 가는 모든 자들의 기본동작이다. 별것이 아니지만, 이탈자는 살길이 없다.
  그래서 원양을 항해하는 선박의 갑판원들은 쉴새없이 갑판을 순찰하면서 컨테이너를 묶는 쇠줄(래싱바)을 스패너로 조인다. 이것이 갑판원의 기본 업무다. 컨테이너는 선체와 밀착되어 롤링과 피칭을 함께 해야 하며, 컨테이너가 정위치를 이탈해 한쪽으로 쏠리면 그 기세로 배 전체를 끌고 쓰러져서 살길은 없어진다. 운동은 복원되지 않는다. 세월호는 등짐 지는 지게꾼만큼도 래싱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세월호가 래싱을 엉터리로 해서 침몰했다는 말도 또다른 동의반복이다. 비를 맞으니까 옷이 젖었고, 밥을 굶었더니 배가 고프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세월호는 왜 기울었고 왜 뒤집혔는가.

  2014년 4월 16일의 참사 이후로 사태를 바라보는 이 사회의 시각은 발작적인 분열을 일으키며 파탄되었다. 슬픔과 분노를 온전히 간직해서 미래를 지향하는 동력으로 가동시켜야 한다는 시각과 그 슬픔과 분노를 매우 퇴행적이고 소모적인 것으로 여겨 혐오하는 시각이 교차했다. 거칠게 말하면 4월, 5월까지는 전자의 시각이 우세했으나 6월 4일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적지 않은 재미를 보고, 이어 7월 30일 재보선에서 여당이 압승하자, 후자의 시각이 주류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슬픔과 분노에 오랫동안 매달려 있는 것은 경제 살리기에 해롭다는 것이 그 혐오감의 주된 논리였다. 세월호에서 놓친 골든타임이 경제회복의 골든타임으로 살아났고 거기에 이념의 날라리들이 들러붙기 시작했다.

 (계속)

최승화님의 댓글

profile_image 최승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겹겹 밀봉해도 새어나오는 김치 냄새처럼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것, 몸이 흘리는 말이다

누이가 쑤셔박은 농짝 뒤 어둠, 이사할 때 끌려나온 무명천에 검붉은 꽃7)/

개인적으로 오늘은 이 대목이 좋습니다.

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 당시엔 아무 말 못 했지요, 너무 참혹한 사실이라
이제 2주기도 되어가는데, 감정적으로 이해하고 사실에 대해선 둔감하다,
그런 의미이지요. 나 자신도 이 엄청난 국가재난사건이 기가 막혀
오래도록, 입안에만 우물거리고 있었으나, 낱낱이 다 밝혀져야 한다는 생각,
감추고 왜곡할수록 역사는, 현재의 이 국면은 더욱 참혹해지리라,
산문을 필사하는 건 드문 일인데, 냉철한 시각을 갖자면,
바로 알고 바로 파악해야지. 혼자, 그런 생각이 들었음.

이건 패러디도 아니고, 도용인데, 아이들이 몰살해도 무심한, 무감각한 우리를 위해...
두 분, 따스운 날 지으셈. 고맙습니다.


* 이 피아노곡은 영화 Interstellar에서 쓰였던, First step(Hans zi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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