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AM 1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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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정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1,181회 작성일 16-02-03 08:00본문
토요일, AM 12시
커튼콜에 익숙한 낮달 아래로 순번없이 한무리 새떼가 날아간다. 파란하
늘 밑, 순서없이 부양하는 것이 어디 새들 뿐이랴, 곧 들이닥칠 立春이고
보면 고향 떠난 새들도 이쯤 거처를 비울 때가 되었구나. 밤새 어둠을 가
린 커튼을 또륵또륵 올리고 낮달이 도사린 하늘로 초승달처럼 열린 동공,
아침 볕은 인적없는 아파트 좁은 길을 지나 106동 허리쯤에서 반토막이
난다. 듬성듬성 잿빛으로 분장한 하늘, 106동 사잇길로 삐죽 얼굴을 내민
햇살은 어제와 같이 곱고 금새 팔을 내밀어 은밀한 침실에서 긴 옷고름
을 푼다. 빨래건조대에서 꾸덕꾸덕 말라가는 내 허물들, 분침과 초침 사이
를 맴도는 때 이른 토요일 기상시보, 햇살 꽁무니를 낚아 챈 사내의 시선
은 새떼가 날아간 피안의 세계로 이끌려간다. 휙휙 창 끝을 흔드는 바람,
주저없이 새떼가 떠난 길을 난도질한다. 아침 햇살을 한입 베어 문 하품
의 긴 여운, 눈물 찔끔, 볕이 머뭇거리는 베란다에서 귀를 세우고 세상소
리를 듣는다. 뜬소문만 무성한 놀이터에서 수직벽을 오르는 전설같은 무
용담들, 오늘도 생생한 삶을 엮어가는 육성의 울림, 놀이터 한켠, 하얀 겨
울 옷을 걸친 키 작은 사람들이 부동자세로 웃고 있다. 107동 비좁은 길
을 따라 언 길이 녹아내리고 있다. 앵콜없는 가수의 노래를 자장가 삼아
다시 게으른 잠을 청한다. 아직 낮달은 파란하늘 위를 서성이고 토요일
12시 시보가 문턱에 걸린다.
글쓴이 : 박 정 우
댓글목록
이장희님의 댓글
이장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빨래건조대에서 꾸덕꾸덕 말라가는 내 허물들]
[아침 햇살을 한입 베어 문 하품 의 긴 여운]
[아직 낮달은 파란하늘 위를 서성이고 토요일
12시 시보가 문턱에 걸린다.]
시가 넘 좋네요.
아파트에 살아야 느낄 수 있는 정서 공감합니다.
좋은 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
늘 건필하소서, 박정우 시인님.
박정우님의 댓글의 댓글
박정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감사드립니다.
미흡한 점이 많음에도 이렇듯 평을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설 명절이 다가옵니다.
늘 건필 하시고
행복하고 즐거운 설 명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고현로님의 댓글
고현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캬~ 커튼콜... 커튼콜이라니...
표현이 화려화려하네요.
대단하신 듯...
박정우님의 댓글의 댓글
박정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감사합니다.^^
화려한 시는 아닙니다.
여러 글에 댓글을 달아주시는 정성과 부지런함
늘 부럽습니다.
설 명절, 뜻깊게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