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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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1,276회 작성일 16-02-25 01:46본문
자전거
한 사내가 외줄을 긋고 간다
염색단지 이상한 냄새가 끼친다
한때 바다였던 개활지가 까무룩 잠들어 있다
칼금을 지우듯 바퀴 자국 흐리며 사내가
갯고랑에 닿는다
예리한 불이 건너간 달의 흰 뼈가 덜컹 부려진다
사내가 조각난 그믐을
물가에 풀어놓고 페달을 밟는다
삐거덕삐거덕 체인 감기는 소리가 난다
비명은 따라오지 않는다
사랑했다는 새하얀 말은 따라오지 않는다
가로수는 나 몰라라 흔들린다
낮게 깔린 먼지들이 풀썩인다
자전거 바퀴살에 새벽이 으깨진다
썩은 꽃잎처럼
녹슨 도관을 흐르는 개숫물처럼
멀리서 아침이 오고 있다
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목련이 죽는 밤
허연
피 묻은 목도리를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날을 떠올리다 흰머리 몇 개 자라났고
숙취는 더 힘겨워졌습니다. 덜컥 봄이 왔고 목련이
피었습니다.
그대가 검은 물속에 잠겼는지, 지층으로 걸어 들어
갔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꿈으로도 알 수가 없습
니다. 그래도 기억은 어디서든 터을 잡고 살겠지요.
아시는지요. 늦은 밤 쓸쓸한 밥상을 차렸을 불빛
들이 꺼져갈 때 당신을 저주했었습니다. 하지만 오
늘 밤 목련이 목숨처럼 떨어져나갈 때 당신을 그리
워합니다.
목련이 떨어진 만큼 추억은 죽어가겠지요. 내 저
주는 이번 봄에도 목련으로 죽어갔습니다. 피냄새가
풍기는 봄밤.
`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짐승들이 젖어 있다
허연
지금 이 역의 짐승들은 모두 젖어 있다.
우산을 반 바퀴쯤 돌리거나 바닥을 탁탁 치면서
소심한 저항을 하지만 공격적이지는 않다.
이 늦은 밤
여기서 만난 소심한 짐승들에게 하루를 묻는 건
예의가 아니다.
발정기가 끝나가는
태양력의 어느 날
지하철역에서 짐승들이 젖어 있다.
젖은 짐승들은 두려운 게 많고
두려운 게 많은 짐승일수록
말이 없다
젖은 자는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한다.
모든 걸 독으로 저장해놓은 짐승들.
지금 이 역에는
위험한 짐승들이 젖어 있다.
`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말미잘
허연
말미잘이 엄마를 삼켰다
말미잘이 엄마를 뱉어냈다
.
.
.
.
엄마가 바람이 났다
엄마는
오 톤 미만 목선의 깃발처럼 펄럭였다
폐선에 올라가 바다를 보면
하늘과 바다는
나뉘어 있지 않았고
펄럭이던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도시에서 배달되어 온 필통에선
귀가 큰 아기코끼리가 웃고 있었다
소년은
무성생식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날 밤
붉디붉은 월식이 있었다
`
문정완님의 댓글
문정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위 본문 시 어떤 비극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 것 같습니다 ^^
잠도 안자고 시를 쏘는 활은 그래서 弓인가 봐. ㅎ
아래 위 활 시 잘 감상했습니다.
아래 위 댓글시도.
허연이라는 분, 처음 뵙는 분인데.. 시가 내공이 생사현관을 예전에 타동한 것 같습니다.
좋은 시인을 보면 확 자판을 엎고 싶어요 ㅎ
즐잠하삼^^ 활.
채송화님의 댓글
채송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음! 자전거가 그런 것이네요. 상상력을 자극하는 면에서는 단연 으뜸입니다.
음악은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활,님 쏘스보기하면 글 맨 아래에 <em->
요 대목을 활,님 밥통에서 밥 푸듯 퍼 왔으므로 우리는 밥으로도 형제!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사건을 차용했지만, '긴장감'을 쓴 것이지요.
뭘까, 뭘까, 읽다가~~ 암것도 아니네, 그런 식.
우리가 사는 세상은 멀쩡한 것 같아도, 섬뜩하기도 하지요.
두 분, 유쾌한 오후 지으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