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길 /중3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돌아가는 길
언젠가부터 나는 돌아가는 길을 좋아하게 되었다.
가는 길보다 풍경이 덜하고,
기대보다는 정리된 마음이 남는 그 길을.
기차를 타고 외갓집에서 돌아오던 날들이 생각난다.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들판,
며칠 전엔 분명 걸어 다녔던 동네의 모습이
이상하게 낯설고, 멀게만 보이던 시간.
열차는 흔들렸고, 나는 그 안에서 자주 졸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등을 토닥여주던 할머니의 손이
이제는 먼 곳의 기억처럼 느껴졌고,
손에 쥔 약과의 부스러기마저
그때는 왠지 뿌리치고 싶었다.
어릴 땐 그게 "마음의 흔들림"인 줄 몰랐다.
그저 어른들이 말하던 “이제 다시 일상이지”라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가방 끈을 매만졌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돌아가는 길이란,
다시 살아가는 길이라는 걸.
남겨진 풍경 속에 조용히 인사하고,
품 안의 온기를 찬 공기에 조금씩 흘려보내는 일이라는 걸.
어느 날 밤,
할머니가 쓰던 오래된 이불을 꺼내 덮은 적이 있다.
솜이 뭉쳐 있어 어깨가 눌렸고,
약한 비린내 같은 오래된 냄새가 났다.
하지만 그 이불 아래에서 나는 잠이 들었고,
꿈속에서 다시 기차를 탔다.
그곳엔 말없이 내 손을 잡아주는 손이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다만 함께 있는 것만으로
모든 안부를 대신해주는 손.
지금도 나는 어쩌다 먼 길을 다녀오면,
혼자 걷는 뒷길에서
그 시절의 ‘돌아가는 마음’을 떠올린다.
기대는 사라졌지만, 무언가 가만히 남아 있는 느낌.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풍경.
울음은 없지만, 오래도록 젖어 있는 마음.
그게 아마,
내가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간직하고 있는
가장 조용한 사랑이다.
댓글목록
정민기09님의 댓글

"언젠가부터 나는 돌아가는 길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나무님의 댓글

함께 있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대신 해주는 손/
가장 조용한 사랑
표현이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