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타버린 방에 앉아 있었다 /중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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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타버린 방에 앉아 있었다
불은 이미 꺼졌지만
연기는 아직 남아 있었다
창문은 열려 있었고
바람은 새것이었지만
그 방엔
그을린 냄새가 스며 있었다
무너진 건 가구만이 아니었다
책장 안의 단어들도
벽에 붙은 웃음도
서랍 속에 넣어뒀던 다짐도
전부
그을렸다
나는 그 방에 앉아 있었다
어디로도 가지 않은 채
손을 뻗으면
재가 되지 못한 것들이
아직 따뜻하게 남아 있었고
그 온기가
오히려 더 아팠다
불길 속에선
고통이 소리였지만
불길이 지난 뒤엔
고통이 침묵이었다
다 타버린 방에 앉아 있다는 건
잃었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그 안에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불이 모든 걸 삼켰다 해도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자리를
아직 잊지 못했기 때문에
그 자리가
아직 나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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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나무님의 댓글

시어들을 참신하게 빚는 시인이십니다
ㅡ바람은 새것이었지안
무너진 건 가구만이 아니었다
책장안의 단어들도
벽에 붙은 웃음도
서랍속에 넣어뒀던 다짐도 ㅡ
멋진 시를 짓는 분이시네요
정민기09님의 댓글

"그 방엔
그을린 냄새가 스며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