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스며들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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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스며들기로
윤 유경
언제쯤 소화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역류하는 너를 삼키고
토하고 싶지 않다
내뱉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한 번 두드린 문에 평생을 아팠다
오지말지, 오지말지, 오지를 말지. 하다가도
아니다 오기를 잘했다
까진 입천장의 아픔도 알고
나뭇가지에 찔린 쓰라린 아픔마저 알건 만
너와 함께한 아픔은 도저히 모르겠다
벌써 한 달이나 밀렸다
정확히 이 페이지에 별표를 해 두었는데
빨간 별표시가 칠해진 그 페이지만 넘기면 콧등이 베였다
수학문제 같은 당신, 끝없는 공식 같은 너를 완성된 답이라 믿었는데
풀었던 문제를 또 응용해야한다 부지런히. 밀린 숙제처럼
이 마지막 문제만 풀면 너의 이마를 짚어 볼 수라도 있을까
억지로 삼켜낸 종이조각들이 자꾸만 역류 한다
내게 건네준 꽃다발에선 음성소리가 줄었고
그저 잎 자락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메아리만 삼켰다
꽃잎이 베인 메아리는 잘도 향기로워 그 머릿결이 만지고 싶어졌다
지금 내리는 눈은 빗물이 되고 진흙이 됐다 모든 것은 그렇듯
오늘도 푼다 부지런히 응용하고 또 응용해서 계속 풀었다
점수가 매겨진 문제들
그 속에서 유일하게 동그라미 표시가 돼있는
달빛이 내려앉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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