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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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 배꼽이라 놀림받고
제일 좋아하는
불고기를 앞에 두고도
밥알만 깨작거리던 어느 저녁이었다
괜히 밥그릇을 싱크대로 던지듯 돌아서
방문을 닫아버리는 나를 보며
아버지는 조용히 내 옆에 앉으시더니
쉽사리 열지 않으셔 쇳덩이가 아닐까 생각했던
그 무거운 입을 여셨다
네가 태어나던 날 이야긴데
내가 말이다
네 배꼽을 잘랐단다
예쁘게 잘라주고 싶었는데
아빠가 미적 감각이 좀 부족해
미안하다. 아들
아직은 세상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인지 모를 제 피붙이와
마취약에 취한 채 쓰러져있는 아내와
귓전을 때리는 그녀의 심박소리. 의사들의 목소리.
온몸에 초록옷을 입고. 마스크를 낀 채
자신의 손에 들린 그 차가운 쇠붙이는
또 얼마나 흔들렸을까
수천번의 걱정끝에 한 자신의 가위질에
비로소 제 피붙이는 세상의 것이되고
첫 울음을 터트렸을 것이다
아기를 품에 안아보고서야
며칠째 아내옆을 지키느라
잠을 한숨도 못잤다는 당신은
그제서야 깊은 잠에 드셨다고 한다
나는 멋진 사람이 아니지만
너는 부디 멋진 사람이 되거라
당신의 아이를 처음 품에 안은 그 밤 하셨던 말이
십팔년의 시간을 뚫고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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