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대 그 이름들의 값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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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 그 이름들의 값어치
부시럭 쨍그랑 번쩍 화아악 좌르륵
…
이 거리는 한산하다
마치 흑백 영화를 보는 듯하나 착각이다
의식, 감동, 낭만, 움직임
그런 것들은 멸 한지 오래
구전으로만 맡았던 그윽한 내음일 뿐
이제는 소설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어느 머언 역사 속, 그 언저리에 파묻혀버린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 있기나 하였나?
핼쑥한 남자가
긴 바바리 차림으로 바닥을 쓸며
다 쓰러져가지만, 벽돌 사이에 틈 하나 없는 건물
지하로 버려지듯 쓸려 내려간다
문소리 얼음 두 개 부닥듯 차갑게 딸랑인다
대충 주욱 보다가 대뜸
이거 얼마요?
아 그것 말이오?
그건 사람들이 별로 안 쳐주더라고
대체 왜 그런 거래?
그게 무슨
예술이 어쩌고 야망이 저쩌고 낭만이 어쩌네
혼자 깨어있는 척하다가
결국에는.
현실을 직방으로 맞았다나
가방끈도 짧아 담배 한 까치만도 못 하오
그래서 얼마인데?
만원에 가져가시오
예끼, 이 사람아
아니 이름 하나가 뭐 그리 비싸?
허이구, 그게 아니라
콩팥이든 염통이든
이목구비, 오장육부
뇌가닥 값 모두 합이올시다
그러면 너무 헐값 아닌가?
알아서 매겨 가시오
한 까치 있음 계산대 위에 놓고 싸가던가
어찌, 봉다리에 담아드려?
아녀 아녀, 그냥 만 백 원에 사겠소
아 그리고 그…
‘낭만’이란 것도 여기서 거래하셨던가?
그건 3만 원에 취급하네만
이 ‘낭만’은 더는 그 옛날의 향을 피우지 못하오
그래도 주쇼, 이름이라도 그게 어딘가
간만에 나른해져 보고 싶구먼….
각설하고 오 아무개 하나랑 낭만 셋 담아주시오
아 또 그리고...
잠시만, 여 어디 종이에 적어 두었는데...
음... 그니깐...
혹시 ‘공감’이란 것도 있소?
그게 뭐요?
...
그 단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려 하지만 이내 둘 다 벙찌고
스쳐 지나간 행복해 보이는 기억들이 멀겋게 흩어짐을 느낀다
정적을 흐리는 어릿광대의 조소가 밖에서 들림과 동시에
허허, 나도 잘 모르오
혹시 아나 해서...
...
근데 상인 양반
그때가 되면
우리는 몇 까치나 할 것 같소?
글쎄, 한 모금은 하려나….
(피식)
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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