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하루를 보내던 그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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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 하루를 보내던 그 때는
백은서
예전엔 말이지, 어렸지만 그래도 중학교 시절 시를 쓸 때는 말이지
시와 함께 하루를 보내던 그 때는 말이지
오늘이 아니야
하얀 등불 책상에 비추어 놓고 누런 공간 안에서
흰 종이 위에 내 똘망한 눈을 그려 넣던 그 때는 말이야
이젠 정말 추억이지, 돌아가고 싶은 내 기억이지
시와 함께 어제와 오늘을 오늘과 내일을 넘나들던 그 때는 말이지
국어시간에 누구의 시를 읽고 와서 비슷하게 써본다고
종이 한 장에 밤새 열심히 끄적거리던 때가
오늘이 아니야 벌써 오늘이 아니야
노오란 가로등 불빛이 새어 들어오는 그 집에 살 때
가로등 불빛 때문에도 못 잤지만 시와 함께 하기에 설레어 잠 못 이루던 밤
내가 끄적인 종이를 창문너머 하늘 위로 높이 치켜들곤
그 둘을 비교하며 비슷하길 바라던 밤
그 밤하늘을 내 손으로 모두 담을 수 있을 거라 부풀던 그 때
그 때 그 모습이 그리워
그 때 그 나도, 그 아이도 이 달을 보고 있었을까
나는 아이와 함께 했던 달의 모습을 이제야 보고 있단 말이지
난 더 이상 그 순수에 젖었던 아이처럼
매일을 시와 함께 할 수 없고, 오늘에 감사할 시간을 가질 수 없고
좋아하는 여자를 만들어 사랑을 노래할 수 없고, 더 이상 시인이 될 수 없고
길을 걸으며 주위를 둘러 볼 수 없고, 시를 쓰고 싶어도 시를 쓸 수 없어
예전엔 말이지
어렸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 시와 함께 할 때는 말이지
조약손 두손으로 엄마손 꼬옥 잡고 따라다니던 때는 말이지,
두둥실 둥근 달 보다도
어둠이 서린 이 길을 비추는 가로등 하나를 더 보는
이 길을 걷는 사람들 틈에 끼여든 내게
다시는 돌아갈 수 없지만
언젠가 돌아갈 길이 되어 버렸기에
시와 함께 하루를 보내던 그 때는 말이지
오늘이 아니게 되어 버렸네
그저 난 그 때를 조약손 두손으로 꼬옥 잡고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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