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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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밤
백은서
지하철에 내려 큰숨 한번 들이쉬어
가슴팍 한쪽 구석이 아파온다
매일을 강남으로 출퇴근 등하교에
내 몸은 지하철 구덩이
그 깊은 곳에서 지쳐 올라오지 못한다
상일동역에 올라나와 큰숨 한번 들숨 날숨
코끝부터 눈망울을 거슬러 발끝까지 전해지는 것이
우리 동네로구나
풀향기 흙향기 뒤섞여 춤을추고
여름밤 가로등 비추는 느티나무 아래서 삼겹살 구워먹던
그곳이로구나
어른들 서로 따르는 막걸리에 눈이가고
아무것도 모른채 옆집 누나 좋아라 따라다니던
그래, 그래서 옆집과 같이 먹는 여름밤 삼겹살은 더욱 행복했지
저녁 먹고
우리동네 집집마다 불켜지고 웃음켜진 거리를 지나
개구리 개굴거리던 뚝방이라 불리던 강가를 걸었지
모기몇방 물려도 엄마와 하하호호 웃으며 서로 물파스를 발라주던
참으로 오래된 곳이로구나
2년마다 이사를 옮겨 다니면서도
우리 엄마, 초여름밤이면 꼭 아카시아 꽃 늦게까지 노래하던
고덕 뒷길에 가셨지 나를 데리고 가시곤 했지
지하철에서 내려 큰숨 한번 들이쉬어
저 먼 발치 우리 주말농장위에 세워진 높다란 아파트가 보여
눈시울이 붉어진다
상일동역 올라와 작은숨 한번 들이쉬어
고랑마다 쌓아놓은 돌무더기 에서도 가까스로 피어나던 민들레가 아련해
눈방울이 맺힌다
우리동네 어귀에 들어서 한숨 한번 내쉬어
가슴팍 한쪽 구석이 아파온다.
그 깊은 곳 구덩이에서 쓰러져가던 고목이 괴음을 내며 아우성친다
강남에서는 눈감고 배째라며 흘러가버리던 말라가던 가슴이
초여름밤,
그 정겨웠던 기억을 맞아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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