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지하철
백은서
지하철에 타고 싶어 타는 사람이 있습니까?
깜깜한 굴속에 들어가
수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부대끼며
탁한 공기 속에서 막막한 어둠 속에서
그 작은 빛 응어리 하나 타고
땅바닥을 기는 것도 아니요 그 아래에서 기어 다니니
지하철을 타고 싶어 타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 할아버지
무릎아파 못 타시고
우리 할머니
사람 무서워 못 타시고
난
그 회색 짙은 얼굴들에 가득 가득 들어 차 있는
졸림과 어둠과 피곤함과 걱정들에
꾹꾹 눌려 담겨져 있는 그 어깨들에 올라 타 있는 벌레들이
내 어깨에도 올라탈까 무서워 타지 못하겠습니다.
산새 쫓아 들판을 뛰어다니며
마음만은 그 따라 날아 다녀야 할 우리가
그래요 땅을 기더라도
개미처럼 모으면 모으는 데로 부유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설사 땅 속을 기더라도
지렁이처럼 지나가면 지나가는 대로 풍족해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평평한 땅에서 조차 쫓겨난 우리에게
사람답게 사는 것이란 것은
요즘 새 나라의 어린이가 9시에 자는 것과 같은 것입니까?
요즘 중고등학생이 8시간동안 자는 것과 같은 것입니까?
지하철은 나에게 침대요
지하철은 저 아저씨에게 사생활이 보장된 취미생활의 공방이요
지하철은 이 아줌마에게는 아무 말 없는 수다의 장이요
지하철은 여기 대학생 형아의 네 번째 도서실입니다.
지하철에 타고 싶어 타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래도 나는 지하철을 타러 오늘도 일찍 나아갑니다
좋다고 가고 죽자고 가고 살자고 가고
지하철이 좋아 타는 사람이 있습니까?
난 바깥 배경에 어지러워 멀미하는 버스보단 차라리 깜깜한 지하철을 타렵니다.
지하철이 좋아 탑니까?
빛을 보러 올라가는 그 순간을 기다리며 나는 지하철을 탑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