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를 견디는 법/ 오명선(시감상)
페이지 정보
작성자 水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533회 작성일 15-07-11 18:17본문
오후를 견디는 법/ 오명선
몇 겹으로 접혀
낡은 소파에 누웠다
며칠 현관문이 '외출 중'을 붙잡고 서있는 동안
나는 세상에서 방전되었다
익숙한 풍경이 커튼처럼 걸리고
빛이 차단된 몸에서
수많은 눈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간다
화창한 오후는 그림자를 둘둘 담요처럼 감는다
뱉지 못한 문장 뒤틀린 서술들
나는 오래전 어둠에 길들여진 어긋난 문법,
나를 필사하는 오후의 손가락이 한 뼘 길어졌다
흐린 지문으로 나를 한 술 떠먹는다
적막의 두께로
낡은 하루가 완성되었다
가끔 손을 넣어 가라앉은 나를 휘저어 본다
-계간『詩로 여는 세상』(2011, 여름호)
...............................................................................
어느 한군데 문학적이지 않은 언술이 없고 시적 장치가 피해 간 곳이 없다. 그리 길지 않은 시임에도 읽는 내내 행간의 늑골을 긴장시켜야만 했다. 시인과 함께 ‘오후를 견디’면서 ‘몸을 몇 겹으로 접어’ ‘낡은 소파에’ 누이기도 하고, ‘수많은 눈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간’ ‘화창한 오후’ ‘그림자를 둘둘 담요처럼 감’기도 했다.
무슨 연유로 며칠씩이나 현관문에 '외출 중‘임을 내걸고 ’나‘를 ‘세상에서 방전’시켰던 걸까. 도대체 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무얼 궁리했단 말인가. 이럴 땐 삼시 새끼 챙겨 먹는 것도 그리 쉬운 노릇이 아니다. 참견할 그 누구도 둘레에 있는 것 같지 않다. 좀이 좀 쑤실 법도 한데 스스로를 무엇인가에 몰입시킴으로써 '적막의 두께'를 쌓는다.
그림자를 포개고 앉은 듯한 불안, 더디게 흐르는 시간의 모서리에 던져진 적요. ‘뱉지 못한 문장 뒤틀린 서술들’의 석연치 않은 그 무엇, 혼자 보내는 어둠의 시간을 잘 훈련한 사람일수록 문학을 성공시킬 가능성도 그만큼 크겠지만 가혹한 일이다. ‘오래전 어둠에 길들여진 어긋난 문법’이 오래 입은 옷처럼 익숙해져 시차의 적응이 난항이다.
오후를 견디는 것은 낯선 적요를 견딘다는 의미일 터. 머리맡에는 세상으로 쏟아져 나오지 못한 시간들이 수북 쌓여간다. 고장 난 시간의 부스러기들이 블록처럼 쌓이는 동안 ‘오후의 손가락이 한 뼘 길어졌다.’ 허무의 자잘한 시간 위에 의미망이 덧씌워지면서 구원에 나선 ‘마니또’의 시간도 잠시 멈추어 침묵했다. 힘을 가진 시가 그러하듯 오후를 잘 견뎌야 삶이 단단해지리라.
‘적막의 두께로 낡은 하루가 완성되었다.’ 시간이 자신을 배반하고, 인내가 현실을 외면해도 시인은 꿈꾸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 꿈이 적막의 무게로 침전된다 해도 ‘가끔 손을 넣어 가라앉은 나를 휘저어’보는 것으로 나를 조금 부양시킬 뿐.
권순진
몇 겹으로 접혀
낡은 소파에 누웠다
며칠 현관문이 '외출 중'을 붙잡고 서있는 동안
나는 세상에서 방전되었다
익숙한 풍경이 커튼처럼 걸리고
빛이 차단된 몸에서
수많은 눈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간다
화창한 오후는 그림자를 둘둘 담요처럼 감는다
뱉지 못한 문장 뒤틀린 서술들
나는 오래전 어둠에 길들여진 어긋난 문법,
나를 필사하는 오후의 손가락이 한 뼘 길어졌다
흐린 지문으로 나를 한 술 떠먹는다
적막의 두께로
낡은 하루가 완성되었다
가끔 손을 넣어 가라앉은 나를 휘저어 본다
-계간『詩로 여는 세상』(2011, 여름호)
...............................................................................
어느 한군데 문학적이지 않은 언술이 없고 시적 장치가 피해 간 곳이 없다. 그리 길지 않은 시임에도 읽는 내내 행간의 늑골을 긴장시켜야만 했다. 시인과 함께 ‘오후를 견디’면서 ‘몸을 몇 겹으로 접어’ ‘낡은 소파에’ 누이기도 하고, ‘수많은 눈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간’ ‘화창한 오후’ ‘그림자를 둘둘 담요처럼 감’기도 했다.
무슨 연유로 며칠씩이나 현관문에 '외출 중‘임을 내걸고 ’나‘를 ‘세상에서 방전’시켰던 걸까. 도대체 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무얼 궁리했단 말인가. 이럴 땐 삼시 새끼 챙겨 먹는 것도 그리 쉬운 노릇이 아니다. 참견할 그 누구도 둘레에 있는 것 같지 않다. 좀이 좀 쑤실 법도 한데 스스로를 무엇인가에 몰입시킴으로써 '적막의 두께'를 쌓는다.
그림자를 포개고 앉은 듯한 불안, 더디게 흐르는 시간의 모서리에 던져진 적요. ‘뱉지 못한 문장 뒤틀린 서술들’의 석연치 않은 그 무엇, 혼자 보내는 어둠의 시간을 잘 훈련한 사람일수록 문학을 성공시킬 가능성도 그만큼 크겠지만 가혹한 일이다. ‘오래전 어둠에 길들여진 어긋난 문법’이 오래 입은 옷처럼 익숙해져 시차의 적응이 난항이다.
오후를 견디는 것은 낯선 적요를 견딘다는 의미일 터. 머리맡에는 세상으로 쏟아져 나오지 못한 시간들이 수북 쌓여간다. 고장 난 시간의 부스러기들이 블록처럼 쌓이는 동안 ‘오후의 손가락이 한 뼘 길어졌다.’ 허무의 자잘한 시간 위에 의미망이 덧씌워지면서 구원에 나선 ‘마니또’의 시간도 잠시 멈추어 침묵했다. 힘을 가진 시가 그러하듯 오후를 잘 견뎌야 삶이 단단해지리라.
‘적막의 두께로 낡은 하루가 완성되었다.’ 시간이 자신을 배반하고, 인내가 현실을 외면해도 시인은 꿈꾸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 꿈이 적막의 무게로 침전된다 해도 ‘가끔 손을 넣어 가라앉은 나를 휘저어’보는 것으로 나를 조금 부양시킬 뿐.
권순진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