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이 곁에 있던 사람 /중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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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이 곁에 있던 사람
그런 사람이 있었다.
말을 걸지도 않았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내 표정을 유심히 들여다보지도 않았고,
위로하려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람이 옆에 있을 땐
내가 내 마음을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말을 아끼던 날,
누군가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었던 일이
나에게는 하루를 무너뜨릴 만큼 힘들었던 날,
나는 그 사람 곁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말하지 않았지만
그 사람은 알고 있었다.
내가 말하지 않는 쪽을 택했을 때,
내 마음이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우리는 때때로
말보다 더 깊은 감정으로 연결되는 법을 배운다.
함께 걷는 길,
말없이 나눠 마신 커피 한 잔,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한참을 침묵했던 순간.
돌이켜보면
그 사람은 내 마음의 안쪽에 앉아 있었던 것 같다.
아무 말 없이,
아무 말도 묻지 않은 채.
감정이 벼랑 끝까지 밀려 있는 날에도
나는 그 사람 곁에서 울지 않았고,
그 사람은 그런 나에게 ‘괜찮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은 자주 생각나지는 않는다.
언제부터 멀어졌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날,
지하철 안 창밖을 보다 불현듯
그 사람의 조용한 옆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날의 공기,
그날의 침묵,
그날의 마음까지 따라온다.
그 사람은
말 없이 곁에 있어줌으로써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관계였지만,
지금도 내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앉아 있는 사람.
그런 존재가 있었다는 것만으로
내가 그 시절을 살아낼 수 있었다는 걸
이제야,
말 없이 말해주고 싶다.
댓글목록
정민기09님의 댓글

"위로하려는 말도 꺼내지 않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나무님의 댓글

글과 오랫동안 벗한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편안하게 글을 풀어나가고
생각을 펼쳐내는 힘이 있습니다
긴 마음을 정갈하게 함축해서 풀어낼 수 있다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하늘나는고양이님의 댓글의 댓글

산문시가 좋아서요 ㅎㅎ 충분히 가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