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학 강의 열 번째 [현대 시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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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학 강의 열 번째 [현대 시조-3-]
[현대 시조-3-]
(4) 8·15 이후의 시조 민족사의 거시적 단위로 보아 해방 후 50년은 결코 길다고는 할 수 없다.
오늘의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그때 그 광복의 감격과 기대가 반세기에 이르는 현대사의 격동 속에서
조금씩 퇴색하거나 망각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해방은 민족사에 있어서 처음으로 남북 분단이라는 대결 관계에 놓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구속해 온 것도 명백하다.
빼앗긴 국권, 그러나 국권을 찾았을 때 강대국의 대결의 장으로 분할된 국가와 더불어
사상과 이념이 나누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8·15는 해방과 광복의 의미를 지니면서 동시에 분단과 대결이라는 양면성을 지닌다.
이러한 양면성은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낳았고
좌우의 대립은 민족문학의 분열을 낳았으며,
심지어는 남과 북의 서로 이질적인 문학을 낳게 하였다.
시조라고 예외는 아니다.
시조를 보는 시각이 남과 북이 매우 다르다.
한 쪽에서는 시조가 민족적이고 전통적인 형식이라면서 무조건 계승되어야 한다고 했다.
반면, 다른 한 쪽에서는 시조를 양반 사대부의 생활 감정과 미학적 요구를 반영한 노래로 보고
무조건 부정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중요한 것은 관심을 시각에서 실상으로 돌려 북에서는 시조에 대한 획일적인 시각을 버리고
시조의 실상을 깨우치게 하는 일이다.
동시에 남에서는 다시 한번 시조의 위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다져야 한다.
해방 직후는 창작의 성과보다 이념의 대립, 정치적인 갈등이 고조되었던 비시적(非詩的) 시대다.
해방의 감격에 압도되어 대부분의 시가 정치적 전언 일변도였다.
양주동(梁柱東)의 〈님을 뵈옵고〉, 정인보의 〈십이애 十二哀〉, 이병기의 〈해방전-살풍경〉,
박노제의 〈해방〉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 시편들이 당시 시의 정치적 전언이 있을 법한 판에 박힌 상투성과 무관한 것은
시조의 절제된 형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조운의 ≪조운시조집 曺雲時調集≫(1947), 정인보의 ≪담원시조집 饋園時調集≫(1948),
이병기의 ≪가람시조집 嘉藍時調集≫(중판, 1947), 양상경(梁相卿)의 ≪출범≫(1946),
정훈(丁薰)의 ≪머들령≫(1949), 이희승(李熙昇)의 ≪박꽃≫(1947) 등의 출간은 해방 직후
시조계를 대표하는 시사적 업적으로 평가된다.
물론 이들 시조는 대부분 해방 후가 아니라
해방 이전의 암흑기에 씌어져서 발표되지 못하고 있다가 출판된 것들이다.
이렇듯 해방전의 암흑기와 6·25전쟁까지의 공백기를 메꾸고
1950년대로 이어주는 과도기적 교량적 역할을 담당한 시인들은
이병기·이은상·조운·이호우(李鎬雨)·김상옥(金相沃)·김어수(金魚水)·이영도(李永道)·장하보 등이다. 그
중에서도 조운은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월북하였다.
이들은 주로 ≪백민≫·≪죽순≫·≪영문 嶺文≫·≪민성≫ 등을 통하여 작품활동을 하였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현대시조에 있어서 1950년대는 주목할 만한 시기다.
1950년에 터진 6·25전쟁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정규전으로서
단순한 남과 북의 군사적 충돌이 아니었다.
대전 이후 국내 정치 구조의 필연적인 양극화와 더불어 시작된 동서 양 진영의 냉전이
실제의 무력 전쟁으로 벌어진 최초의 전쟁이다.
안으로는 민족의 분열과 대립을 심화시키고 분단 체제를 한층 강화시키는 하나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그만큼 6·25의 충격은 해방 후 한국시의 양상을 바꾸는 데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으며
시조의 현대적 성격을 특징 짓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1950년대에 와서 시조는 현실시처럼 서정적 자아가 외향하기도 하고
전통시처럼 내향하기도 한다. 서정적 자아의 외향은 전쟁의 극한상황을 직접 다룬
이은상의 〈너라고 불러보는 조국아〉(1958)·〈고지가 바로 저긴데〉(1956),
최성연(崔聖淵)의 〈핏자국〉(1955) 등의 시편에서 볼 수 있다.
서정적 자아의 내향은 박재삼(朴在森)·정소파(鄭韶坡)·장순하(張諄河)·최승범(崔勝範)·
송선영(宋船影) 등처럼 전통적 서정을 노래하는 시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전통적 사상력을 통한 이러한 자기회복의 움직임은 1950년대가 거둔 시적 성취다.
그리고 이것은 전후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과 1930년대의 시문학파와
앞 세대의 가람·노산 등의 시조가 계기가 되어 이루어진 문화적 각성과 자연감각이 내면화된 것이다.
그렇다고 은둔·안주 등 조선조 시조 이래 오랜 내력을 지닌 귀거래사의 자연은 아니다.
그만큼 자연감각으로 자연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자연은 인간의 감각으로 파악된 자연이다.
자연의 개념이 바뀐 것이다. 자연은 삶의 현실, 삶의 현장 그 자체가 된다.
이들 시에 나타나는 서정은 전후 현실적 상황에 대한 시적 대응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그것은 1960년대 이후에 고조된다.
4·19와 5·16의 역사적 격랑을 겪은 1960년대 이후는 물질주의의 팽배와 사회적 모순으로 물들은 시대이다.
이 시대는 분명 시의 시대라기보다는 산문의 시대다.
아니, 물량화의 시대다. 산문의 시대, 물량화의 시대 속에서 시적 상상력은 비인간화해 가는
현실의 이모저모를 헤아리면서 아울러 그 비인간화 과정에서 인간의 구원을 겨냥하고 있었다.
박경용(朴敬用)·정완영(鄭椀永)·이우출(李禹出)·이우종(李祐鍾)·유성규(柳聖圭)·
배병창(裵秉昌)·김준(金埈)·이근배(李根培)·김제현(金濟鉉)·이상범(李相範) 등의 시조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 점에서 1970년대에 와서 장순하·서벌(徐伐)·윤금초(尹今初) 등의 장시조가 시도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유재영(柳在榮)·김남환(金南煥)·김연동(金演東)·김원각(金圓覺)·박기섭·
박시교(朴始敎)·박재두(朴在斗)·백이운(白利雲)·이일향(李一香)·이우걸·
이지엽(李志葉)·임종찬(林鍾贊)·정해송(鄭海松)·한분순(韓粉順)·민병도(閔炳道)·
조동화(曺東和) 등의 시가 환기하는 주변적 경험 역시 여기에 따라 나오는 자연스러운 결과라 할 수 있다.
현대시조는 이미 있어온 잠재적 시조의 보편적 질서와 개인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개인적 질서가 함께 실현된 시형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 질서와 보편적 질서는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개인적 질서는 보편적 질서에 의하여 안정을 얻고, 보편적 질서는 개인적 질서에 의하여 변형된다.
이때 보편적 질서란 물론 한국시가 전체가 나누어 가지고 있는 원초적 질서이다.
한국시가사상 오직 시조의 형식만이 시형으로서 지속적인 가치를 가졌다는 것은
시조의 형식이 한국시가의 다양한 변화 속에서도 일관하는 민족적 동일성과 깊은 연관성을 지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같은 보편적 질서는 시에 형식을 부여한다.
즉 보편적 질서를 통하여 개인적 경험을 표출하는 것이 시조라고 하는 전통양식인 것이다.
그것은 곧 보편적 질서에 뿌리를 박고 있되 개인적 질서로 재구성되는 실감실지의 눈이다.
실감실지의 눈은 이미 있어온 관습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나고,
이러한 저항은 개인적 질서에 의하여 완성된다.
곧 개인적 질서를 통하여 보편적 질서가 갱신될 때 현대시조에서는 새로운 시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조운曺雲의 석류石榴)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툼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이 시조는 시어로 보나 율조로 보나 개화기시조와 비교하여 상당히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개화기시조와 같은 단조로움이 극복되어 시조가 단형 서정시로 변모되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변모가 가능한 것은 보편적 질서에 근거하면서도
개인적 질서로 재구성되고 있는 ‘실감실지’의 눈으로 대상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실감실지의 눈은 무엇보다도 이미 있어온 시조적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섰을 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으며, 자기의 개성적인 질서에 충실하였을 때에 재확인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있어온 시조의 틀 안에서도
현대시조는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는 신축성과 유연성을 가질 수 있다.
이와 같은 예는 이은상이 1925년 4월 18일에 발표한 〈봄처녀〉,
이병기가 같은해 7월 1일 ≪동아일보≫에 발표한 〈봉천행 9장 奉天行九章〉에서 잘 나타난다.
이어 주요한·변영로·조운·정인보 등을 거쳐 ≪문장 文章≫지의 추천을 거친
김상옥(金相沃)·이호우(李鎬雨)로 이어지면서 시조의 근대적 변화가 꾸준히 추구되었다.
현대시조의 특징으로는,
형식면에서 개화기시조의 경우와 같이 시조의 형태를 6구의 형식으로 분절해 놓은 것과,
이은상이 시도한 양장시조(兩章時調)를 들 수 있다.
양장시조는 3장에 담을 내용을 압축해서 평시조의 자수를 단축하여 30자 내외로 하고
종장의 3·5자를 지키면서 중장을 생략한 형태이다.
내용면에서는 계절이나 자연물·명승고적 등을 찾아 거기서 느끼는 서경과 회고,
여정의 회포 등이 대부분을 이룬다. 이 시기의 작품활동은 주로 ≪동아일보≫·≪조선일보≫ 등의 신문과
≪신동아 新東亞≫·≪조선문단≫·≪조광 朝光≫·≪사해공론 四海公論≫·≪문장≫ 등의 잡지를 무대로 이루어졌다.
이 시기에 나온 시조집으로는 최남선의 ≪백팔번뇌≫(1926), 이은상의 ≪노산시조집≫(1932)을 비롯하여
장정심(張貞心)의 ≪금선 琴線≫(1934), 김희규(金禧圭)의 ≪님의 심금(心琴)≫(1935) 등이 있다.
이외에 오신혜(吳信惠)의 ≪망양정 望洋亭≫(1935), 이병기의 ≪가람시조집 嘉藍時調集≫(1939)
등의 시조집도 출판되었다.
다음 시조 학 강의 열한 번째 시조 - 음악적 성격[마지막 회]
댓글목록
chdka님의 댓글

죄송 합니다.
그간 분주히 봄맞이 하느라 글 올리는게 늦었습니다,
양해하여 주십시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