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학 강의 여섯번째 [시조의 형성과 전개]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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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의 형성과 전개] - 4 -
(4) 평민가객의 출현과 가집 편찬 이와 같은 사설시조의 발달과 함께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 발달과정에 있어 가장 주동적인 구실을 하고 있는
평민가객(平民歌客)의 출현이다.
이들 평민가객들 중의 한 사람인 김수장(金壽長)이 편찬한 시조집 ≪해동가요≫에는
17, 18세기에 걸쳐 활약한 가객 56인의 명단이 실려 있다.
이들은 대개가 문벌이나 지위가 낮은 인물들이며,
사회적으로 크게 대우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16세기 이래 시조의 창작에 참여한 기녀들과 함께
시조문학의 발달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바 이들의 업적을 세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로, 이들은 끊임없는 연수를 통하여 시조의 작법과 창법을 전수하고 있다.
역사적인 문헌에 나타난 바로는 ≪광해군일기≫에 당시
고부군수를 지냈던 이석형(李升亨)이 ≪고금가사 古今歌詞≫라는 한 권의 책을 가지고
기녀인 은개(銀介)에게 5, 6년 동안 노래를 가르친 기록이 있다.
김수장이 소개하고 있는 가객들 가운데 가장 시대가 앞선 인물인 허정(許珽)은
이승형이 은개 에게 노래를 가르쳤던 17세기 초엽에 태어나서
승지·부윤(府尹) 등의 벼슬을 지낸 사람이다.
〈광해군일기〉에 보이는 이승형에 대한 기록은
평민가객들이 활발하게 배출되기 이전에는 일부 선구적인 유학도 들이
노래에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들 일부 선구적인 유학도 들과 그 뒤의 평민가객들 사이의 관계는
자세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18세기의 평민가객들이
시조의 창법과 작법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한 흔적은 다수 발견된다.
장안으로부터 관서지방으로 시조의 장단법을 가져갔던 이세춘(李世春)이나
영남지방에 가서 시조의 창법을 전수하였던 김유기(金裕器),
김유기의 집을 방문하여 시조를 논하였던 김천택(金天澤) 등은 모두 18세기의 가객들이다.
이외에도 18세기 가객들로는 박상건(朴尙健)에게서 창법을 익힌 김우규(金友奎)와
김성기(金聖器)에게 거문고와 퉁소를 배운 김중열(金重說)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19세기의 박효관(朴孝寬)·안민영(安玟英) 등의 활동도
18세기의 가객들이 수립한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로, 이들은 사설시조라는 새로운 시형을 발굴하고 발전시켰다.
현존하는 사설시조는 작자를 알 수 없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또 가객들이 창작한 작품도 평시조가 대부분인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18세기의 평민가객을 대표하는 김수장이
36수의 사설시조를 창작하였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당시의 문학과 음악은 이들 평민가객에 의하여 발달하였고
동시에 이들의 독자적인 미의식인 희극미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이 시기의 위항문학(委巷文學)의 성행,
가사문학의 변화, 판소리사설의 완성 등 일련의 문학 내적·외적 변이과정과
동일한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셋째로, 이들은 가단(歌壇)을 형성하고 시조집을 편찬함으로써
시조문학의 항구적인 발전을 꾀하고 있다.
18세기 초반에 일군의 가객들과 더불어 가단활동을 한 것으로 보이는 김천택은
주의식(朱義植)의 작품을 구해준 변문성(卞文星),
김성기의 작품을 얻어준 김중려(金重呂) 등과 협력하고
그 밖의 많은 가단 구성원들의 이해와 협조를 얻어 시조집 ≪청구영언≫을 편찬하였다.
김천택이 이끄는 가단의 일원이었던 김수장은
18세기 후반에 새로이 배출된 신진가객들과 더불어
가단을 재편성하여 발전시켰으며,
이들의 협조를 얻어 시조집 ≪가곡원류≫를 편찬하였다.
이들이 편찬한 ≪청구영언≫·≪해동가요≫·≪가곡원류≫는
다른 시조집들에 비하여 수록한 작품수가 많고
그 편차체제(編次體制)가 정연하여 3대 시조집이라고 일컫고 있다.
이밖에도 송계연월옹(松桂烟月翁)의 ≪고금가곡 古今歌曲≫,
이형상(李衡祥)의 ≪병와가곡집 甁窩歌曲集≫,
편찬자 미상의 ≪화원악보≫·≪남훈태평가 南薰太平歌≫,
김교헌(金喬軒)의 ≪대동풍아 大東風雅≫ 등의 시조집들이 전한다.
다음번 차례 시조 - 현대적인 양상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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