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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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마감 마지막 날이다. 720만원을 맞춰야 하는데 삼사십만원 모자라지만 다른 달에 비해 비교적 마음은 여유가 있다. 내가 쓴 돈이거나 먹은 돈이기 때문이다. 그냥 범사에 그러기로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엘라 피츠제럴드의 미스트는 언제나 촉촉하고 감미롭다. 감미? 단맛이 난다? 이 여자의 노래를 그렇게 느껴야 하는건지는 모르겠다. 불쑥 사용한 단어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적절한 것 같지 않다. 작년 12월까지 꿋꿋하다 이 봄을 위해 장렬하게 전사 한듯 했듯 몇 송이 진달래의 후손들은 내 노천 사무실을 가득 에워쌌다. 엘라 피츠제럴드는 악동 뮤지션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 남매 중 여자 아이가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목소리가 청량하다. 그 영혼에 대해 대뜸 짐작하게 만드는 청량감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들은 마술사들이다. 이른 봄, 겨우내 썼던 편지를 바람의 손에 쥐어주던 목련은 그 안의 모든 문장들을 다 비워낸듯 새로운 계절을 향해 연두를 내밀고 있다. 마치 소매끝에서 비둘기를 날려보내고 이번에 또 다른 카드를 미녀의 턱선을 어루만지면서 꺼내는 마술사 같다. 오늘 나는 이십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목표를 은근히 가지고 있다. 왠지 될 것 같고 되지 않아도 맘 상하거나 졸이지 않을 것 같다. 교회에 하나님이 있다는 생각에 점점 회의적이다. 내게 성령이 내렸으면 내가 그대로 고요하게 있는 것이 예배라는 생각이 든다. 성 안토니오스 같은 성인들이 왜 세상을 등지고 사막의 수도원으로 숨어 들었는지 나는 이해 할 것 같다. 세상과의 부대낌과 세상사로 인한 소요가 가라앉은 막걸리 병을 뒤흔들듯 사람의 영혼을 뒤흔들지 않는다면 신이 내게 거하는 사실 자체로 이미 천국을 이룬 것이기 때문이다. 신의 의지와 신령이 내장된 로봇이나 컴퓨터를 상상해보면 우린 이미 신의 의지 이외의 아무것도 아닌 셈이지 않는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만약에 내가 그것을 이루게 된다면 세상의 모든 꿈이나 위로나 사랑이 물건을 꺼낸 박스나 뽁뽁이나 박스를 싸맨 노끈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사실은 어떻게 되어도 좋은 일들이 아니였던가? 사실은 더 잘 되는 일도 없는 일들이였지 않은가?
난 술을 비교적 덜 먹게 되었다. 확실히 저쪽 주님과 친해지기 시작하니 이쪽 주님과는 서먹서먹해져 간다. 술에 취해 산들 술을 피해 산들 무엇이 다를까마는 뒷날의 숙취와 우울증을 몇일 걸러 마주하게 되어 좋다. 그리고 술에 취해 실수를 하지 않게 되어 사람들과의 관계가 점점 좋아져 가는 것 같기도 하다. 특별히 사람에게 내가 술에 취했을 때보다 나은 인간으로 보이고 싶지도 않지만, 술에 덜 취하는 것이 신과 더 친해지는 길이라면 나는 술잔을 엎고 싶기도 하다.
매화가 지고 살구가 지고 벚꽃이 지고 복숭아꽃이 피고, 이화가 피고,
진달래, 철쭉이 핀다. 그러고 나면 여름이 또 뜨거운 꽃들을 피워 낼 것이다. 난 왜 예수님의 통역자들이 천국을 황금길이나 수정으로 만든 건물 따위로 묘사했는지 불경스럽게도 이해하기 힘들다. 이 꽃들의 축제 외에 어떤 천국도 나는 상상해낼 수 없다. 난 전생에 이미 예수님을 믿어 이생에 이곳 천국에 태어났나보다. 가끔 혹은 자주 내게 닥치는 고통과 슬픔은 좋은 순간 더욱더 천국을 천국으로 느끼게 만들기 위해 있는 일부러 내미있게 만든 트릭이나 복선 같다. 보라, 나는 지금 아무 이유 없이도, 아무 가진 것 없이도, 아무 달라진 것 없이도 괜히 행복하고 있지 않은가? 106동에 떠먹는 요구르트 10개를 배달 가고, 출고를 가야겠다. 늘 이렇게 일기를 쓰놓고 손님이 오는 통에 날려 버린다. 오늘은 일기를 쓴다. 행복하다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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