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고, 돈으로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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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누가 운영하는 소주방 뒷마당, 빈병을 채운 술박스가 쌓여있고, 쥐가 대가리 내밀지 말라고 깨진 벽돌을 메워 둔, 그러나 그 위로 쥐들이, 불안한 눈으로 찍찍거리다 달아나는 수쳇구멍이 보이는, 취객들이 화장실에 갔다 담배를 피울 자리가 나의 미용실이다. 다섯시 부터 술을 마시며, 여섯시가 다 되어 전동카를 접고 달려 온 나에게 늦게 왔다며 투덜대는 노인의 주름진 얼굴이 달은 쇠처럼 벌겋다. 이발소나 미용실에서 볼 수 있는 촘촘한 빗이 아니였다. 거의 도끼빗 같은 널성한 빗으로, 종일 모자와 바람에 시달린 머리를 빗어 내리는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항암치료를 하는 어머니의 가발을 빗길 때 스프레이를 떡칠 했다고 화를 내더라는 말을 들은터라 "아저씨! 오늘 바람이 많이 불어 머리가 엉켰네요"하고 지레 변명을 했다. 그는 내 변명에 답도 없이 거의 분을 풀듯 뒤엉킨 머리카락 사이로 빗을 수직으로 쓸어 내렸다.
시누가 그를 만난 건 이십년 전인데, 그는 이십년 전에도 옥봉동과 중앙 시장 일대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머리를 깍아주고 돈을 주었다고 한다.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일용직 노가다 해서 번 돈을 주었다고 한다. 그것도, 남자는 않되고, 여자만 깍아주고, 돈을 주었다고 한다. 시누는 이미 오만원어치를 깍고 돈을 받았고, 어머니는 가발을 깍고도 이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우린 그가 여자의 머리카락을 깍아주며 희열을 느끼는 변태가 분명하다고 입을 모았지만, 그저 빗을 대고 가위질을 할 뿐 전혀 이상한 짓을 하지 않는다는 시누의 말을 믿고 차례 차례 머리를 맡긴 것이다. 실제로 그는 내 머리카락 이외에 내 신체에 대해서 정말 아무짓도 하지 않았다. 잘 해독이 되지 않는듯 신중하게 가위질을 하느라 숨을 멈추었다 뱉을 때 심한 술냄새가 풍겼고, 또한 오래 갈지 않았는지 내 억센 말총 머리를 머금고는 한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위를 쥔 그의 손 역시 이십년 넘도록 여자들의 머리카락을 잘라왔다는 경력이 무색하게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 연세에는 흔히 있는 수전증인지, 우리의 예상대로 그가 여자(생물학적으로)인 나의 머리카락과 가위가 닿는 뒷 목덜미에서 이해 할 수 없는 희열을 느껴서 그러는 것인지 알길이 없었다. 나는 어쩐지 그랬다. 여고생 때 공중 전화를 걸다가 그 앞에 세워 둔 트럭 옆에서 어떤 남자가 나를 쳐다보며 수음을 하고 있었는데 수화기를 철커덕 내려 놓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좀 놀라긴 했지만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그 또한 한참 절정에 도달해서 내가 자신을 보았다는 사실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듯 했다. 수업 시간에 교과서 밑에 있는 서랍속에 넣어두고 읽었던 책들이
도움이 된 것 같았다. 남자라는 동물들이 그러기도 한다는, 어떤 인간 수컷들은 개처럼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그러면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는, 아! 그것이구나, 나는 생각했고, 집에 돌아와 엄마가 부업으로 붙이는 봉투의 풀을 보며 조금 속이 메스꺼워지긴 했다. 세상에는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종류의 쾌락이 존재한다. 영화 아가씨에 나오는, 일본 귀족들과 한국 매국노들은 감독과 바람 났다는 김 민희가 읽어주는 야설을 들으며 침을 꼴딱 꼴딱 삼켰고, 우표를 수집하거나 골동품을 수집하거나, 심지어 여자 아랫도리 털을 수집하는 이들도 있고, 연쇄 살인마들은 살인에서 쾌감을 느끼고, 이웃집 누나들 팬티를 훔치거나, 모두 타고난 지문이 다르듯, 각각 개인을 만족시키는 쾌락의 종류도 다 다른 것 같다. 이런 문예 사이트에 돈도 되지 않는 시를 올리는 일 또한 이발사가 아닌 그가 이발 도구를
가지고 다니면서 오히려 돈을 줘야하는 이발을 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그가 너무 심하게 떨었기
때문인지, 이발 가운을 벗은 나의 머리는 동그란 구에 심어놓은 광섬유 다발처럼 뻣뻣하게 위로 뻣쳤다. 8개월 전 길었던 머리를 목 뒷덜미가 훤히 보이게 잘랐었다. 가볍고 시원하고 기분 좋았었다. 샴푸도 적게 들고, 핀 값도 들지 않을 것이고, 드디어 폐경된 여자처럼 나는 홀가분 해졌다. 사람들이 잘 어울린다. 어려보인다 치켜 세워서도 기분이 좋았었다. 그리고는 미용실을 가지 못했다. 유독 오른쪽 머리에만 자욱한 흰머리도 물들이지 않았다. 일을 핑계삼아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절대로 모자를 벗지 않았다. 다행히 나는 모자가 잘 어울린다. 난 나의 머리모양에 무심해져 가는 내가 맘에 들었다. 교회를 가는 일요일을 빼놓고는 야쿠르트 유니폼에서 내 몸을 꺼내는 일은 잠잘 때 뿐이였다. 잘 차려 입고 싶다는 욕망이 사린진 내가 또한 맘에 들었다. 내 삶의 많은 채널에 대해서 나는 무심해졌다. 이제 내 삶의 그 많은 채널은 한 곳으로 고정 되어간다. 돈! 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제껏 그기 고정 되어 있다 이제는 여유가 생겨 여기 저기로 돌리는 삶의 채널을, 나는 이제사 돈에 고정 시킨다. " 머리를 묶을수는 있게 해주세요." 내가 노인에게 한 유일한 요구였다. 좀 많이 자르면 돈도 많이 줄까 싶었지만 여름에는 머리가 묶여야 시원하기 때문이였다. 묶을수는 있게라는 나의 주문을 엄수한 머리는 바람난 딸년을 방에 가두고 아버지가 한웅큼 말아쥐고 한달음에 싹뚝 가위질한, 딱 그 머리였다. 내 머리값은 만원이였다. 종일 열두시간 노천에 서서 십만원을 벌어도 내 손에 남는 돈은 24000원인데, 별로 쓸모도 없는 머리카락 좀 덜어내고 10000원이면 알돈이라는 남편의 말이 맞다. 그래도 마누라더러 돈 만원 벌라고 머리 자르라는 건, 여자 머리 잘라주며 돈 내주는 그만큼이나 이해하기 힘든 집착 같기도 했지만, 사랑한다는 건 누구나 사랑할 수 있는 것을 사랑하는 일이 아니라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것을 내가 사랑하는 일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이해 따윈 하지 않으면 된다. 그게 너인가보다 하고 받아 들이면 된다.
머리카락 따윈 아무래도 상관 없다. 그것은 내 두피에서 자라는 꽃도 열매도 없는, 푸를 줄도 모르는 검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그런것으로 나를 수식하고 싶지 않다. 병원에 입원한 선희의 어머니를 병문안하며 내 머리털을 잘라 흰 봉투에 넣어주고 올 수는 없다. 그 추운 겨울, 언니 야쿠르트 장사한다고 큰 가방을 매고 와서,"언니! 날짜 다 된거 주라, 우리 애들 아무꺼나 잘 묵는다." 날짜가 4일 5일이 남아도 항의 전화가 오는데 날짜 다 된 것을 일부러 골라가던 선희였다. 윌 열개를 들고, 병문안을 가서 윌 열개만 놓고 오고 싶지 않다. 윌 열개 위에 봉투를 놓고 오고 싶다. 병든 어머니 모시고, 혼자 두 아들 공부시켜 가면서 사촌이내에 열명은 한다는 보험을 하며 생계를 꾸리는 선희가 겨울 내도록, 어쩐지 올 때마다 사무실 경리에게 닦이고, 동료들에게 치이고, 고객에게 치이고, 속이 썩어서 혼자 울고 있던 나를 안고 "어떤 년이 우리 언니 괴롭히노? 가자! 이년들 내가 가만 않놔둔다." 큰 소리 쳐주던 선희에게 돈 봉투를 주고 싶다. 왜 십일조를 내느라 빌라에 난방도 하지 않고, 전기 장판 켜고 겨울을 보냈던 우리 엄마에게 주님은 아무 축복도 내리지 않으시고, 다니는 회사가 어려워 월급이 나오지 않는다는 오빠는 주님이 아니라 내게 전화를 해서 돈 백만원을 빌려 달라는 것인가? 그래 성령을 받았으니, 내안에도 주님이 있어, 시누에게 부탁을 해서 백만원을 부쳤으니, 이것도 주님의 은혜라면 은혜겠지요? 머리털이면 어떻고 보지털이면 어떤가? 쓸데도 없는 것 다 잘라서 돈으로 바꿀 수 있다면 바꿀 것이다. 군대 갔다와서 이년이 넘도록 땡전 한 푼 벌지 않는 놈이 "엄마! 서울이다"하며 전화가 왔다. 그래! 잘했다. 집구석에만 틀어 박혀 있지말고 서울이고 미국이고 다 다녀라! 난 그렇게 말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이노무 새끼, 지 정신이가? 땡전 한 푼 없는 자슥이 서울은 뭔 놈의 서울이고, 팍, 고마..죽을래? 경비 더 들기 전에 당장 내리온다. 차비 얼마 필요하노? " 이 찌질이 궁상이 나다. 돈은 좋은 것이라 만유의 창조주 하나님 조차도 돈 달라고 하신다. 번 것의 십분의 일이나 달라 하신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는가? 이 세상과 나를 만들어 주셨는데 십분의 일이 아니라 십분의 십을 바쳐도 무엇이 아까울 것인가? 팔다 남은 요구르트가 아니라 헌금 봉투에 넣어서 내고 싶다. 목사님이 헌금 해준 사람 이름 부를 때 내 이름도 불렸으면 좋겠다. 내가 낸 돈이 예수님 이름으로 이웃도 돕고 노인도 먹이고, 아이들도 도왔음 좋겠다.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정보 신문 구인 광고란에 노래방 주방 이모 급구라고 쓰인 페이지를 펼친다.
"아줌마! 애들 먹을 수 있는 야채 쥬스 있어요?"
젊은 엄마가 도로로 뛰어 나갈까봐 꼭 팔목을 잡은 대여섯살 먹은 아이의 눈이 새까맣다.
"타요? 줄까? 뽀로로 줄까? "
혹시 아이의 엄마가 볼까봐 한손으로 신문을 접는다.
나는 루비콘 강을 여러번 건너 갔다 온 불사신 같다.
늘 돌이 킬 수 있었던 건 시가 있어서였다.
엄지 손끝으로 뜯은 휴지 조각 같은,
하얀 나비 한마리가 날아간다.
바람이 불어 전동카에 매달린 비치 파라솔이 휘청인다.
엄지 손끝으로 뜯은 휴지 조각 같은
하얀 나비 한마리가 풍향을 거슬러 날아간다.
시란, 나비가 바람에 날려가지 않고
꽃을 향해 날아가게 만드는 힘이다
시를 버리고 돈을 쓰고 싶다.
돈으로 쓰고 싶다. 시를
사랑한다고, 돈으로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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