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내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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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남편이 싸 준 도시락을 까먹는 시간이 내 하루 중 가장 근사한 시간이 되었다.
햇빛을 받아 물의 갈비뼈를 드러내며 윤슬을 일렁이는 남강가 작은 바윗돌 위에 나의 식탁은 펼쳐진다.
멘델스 존 바이얼린 협주곡 64번 마단조도 펼쳐진다. 지나가는 주민들에게 내가 노상에서 밥 먹는 모습을
들키지 않아도 되고, 입에 음식을 우물거리며 손님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나는 고성군 동해면 외곡리에서 출생해서 백일만에 진주로 이사를 왔다. 남강은 거의 오십년 가까이
나의 시간과 함께 흘러왔다. 어려서는 엄마를 따라 남강가에서 빨래를 했고, 좀 더 자라서는 빨래 대야에
방망이와 비누를 담고, 그것을 허리에 붙여들고, 내가 빨래를 하러 갔고, 남강 다리 밑에서 멱을 감다
모랫구멍에 빠져 죽을 뻔 하기도 했고, 남강가에서 씻은 소풀( 부추를 그렇게 불렀다)을 사러 엄마를 따라
새벽길을 나서기도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친구들과 남강 둔치에서 놀았고, 화가 날 때는
혼자 남강에 와서 괜한 강물에게 물제비를 던지며 울과 분을 가라앉혔고, 밤새 사느라 시달리다 술에
취해 돌아오는 새벽엔 수면 위의 빗방울이 그리는 동심원을 잡으러 강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어떤
시민의 신고로 출동한 119 엠블란스에 실려 퇴근을 하기도 했다. 엄마의 보증빚으로 길거리에 나앉은
아버지께서 죽을거라고 서성였던 남강을 나도 서성였다. 이젠 여기서 도시락을 까먹고 앉은 것이다.
오후 해거름녘이 되자 목이 아팠다. 잠은 쏟아지고, 눈을 감으면 바로 쓰러질 것 같았다. 내 몸 더러
무쇠처럼 미련한 녀석이라 했더니 화가 났던 모양이다. 좀체로 내게 화를 잘내지 않는 몸이
해도 해도 너무 한다며, 목젖을 벌겋게 돋우고 뭔가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새벽잠을 재우지 않고,
밤낮없이 술만 퍼 먹이고, 식당일이며, 고등학교 화장실 청소, 들판의 마늘 뽑기, 온갖 모진 일들을
다 시키더니 무쇳 덩어리처럼 아플줄도 모른다고 구박을 했던 것이다. 오늘 따라 나를 데릴러 오는
남편이 늦어 그 아픈 몸에게 토요일 제풀까지 가득 들어 있는 보관함을 들어 올리게 하고, 끝까지
야박하게 부려 먹었다. 남편차에 탔더니 꾸벅꾸벅 졸음과 피로가 몰려와서 금세 조수석에 앉아 잠이
들어 버렸다. 집에 돌아와 뻗어버린 나를 깨워 남편이 자신이 먹는 감기약 두알과 물과 밥을 차려 왔다.
그 와중에도 내 몸은 배가 고파 상추와 삼겹살과 고봉으로 담은 밥 한그릇을 게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그리고는 감기약과 물을 먹고 다시 잠들었다. 내 몸은 참 착하다. 그러고 아침에 일어나니
맑개 개인 하늘처럼 푸르게 다시 살아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햇볕에 그을리고 바람에 시달려도
거울 속에서 피부를 반짝이며, 주름도 별로 없이, 입속에 가득 고인 치약 거품을 한 입 뱉고는,
치약 거품 묻은 입술로 환하게 웃으며, 오늘은 왜 또 살아야 할까 싶은 나를 달래고 있다.
악마라는 단어를 들으면 아주 전생의 트라우마를 기억하는 이생처럼 나는 한 쪽 머리가 당기며
아프다. 내 몸이나 나나 어리석고 단순해서 그렇게 불리기에 너무 모자란다. 그 악마는 한 달에
얼마를 버는지를 물으면 화를 내는 가난한 남자와 살아 볼거라고, 어디에 쓰는지 물으면 또 화를
내는 돈을 벌기 위해 하루에 다섯 시간만 자며 종일 일을 한다. 그것도 모자라 일요일엔 오디를
따는 농장에 알바를 하러 갈 것이다. 그 악마가 지금 바라는 것은 딱 하나 뿐이다. 시 쓰느라
생계를 해결하느라 잘 해주지 못하고 키운 두 아들에게 얼마라도 돈을 남기고 죽는 일이다.
그 악마는 옆에 지구 여사님이 제품을 빌려 달라고 하면 제 가게를 접어 두고 배달해 준다.
언니가 나보다 열살이나 나이가 많아 자전거를 타고 왔다가는 일이 열배나 힘들 것 같아서이다.
그 악마는 금요 시장을 갔다 잠시 쉬어 가는 할머니들의 짐을 들어 드리고, 다리가 아파
내려 오지 못하는 할머니의 세탁물을 찾아 드리고, 뭐하나 거절 할 줄도 요구 할 줄도 모른다.
몸시 마음을 다치고 화가 났다가도 상대방이 조금만 친절하게 잘 해주면 금새 뻣속까지 녹아서
흐물흐물 웃고는 마음이 상했던 일마저 미안해 한다. 그런 나를 악마라 불렀을 때 나는
그래, 나는 악마인지도 몰라 하고, 악마의 채찍으로 나를 때리며 할퀸다. 그래서 내가 악마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 계속 나를 주시한다. 암에 걸린 전남편이 누워 있는 병실을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뼈까지 암이 전이 되어 피골이 상접해 있을 그의 오랜 증오를 감당하기 두려웠기 때문이다.
무서웠다. 또 그렇게 죽어간 그이 장례식장에 갈 수 없었다. 깊이 고민을 했지만 결국 가지 못했다.
교회에 가서 하나님에게 계속 기도를 했다. 악마인 나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 주실지 어떨지
고민도 없이, 하나님! 그를 살려 주세요, 그를 살려 주시기 싫다면, 그가 주님을 영접하고 좋은
나라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 했다. 내가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오열과 상심과 기도 뿐이였다.
악마였기 때문이다. 악마이기 때문에 겨우내 십일조는 내어도 난방을 하지 않는 친정 엄마의 집에
가서 설이라고 이십만원을 넣어드리고 쌍둥이 조카들 십만원을 넣어주고, 몇 달을 용돈을 드리지
못했다. 그리고 난방도 하지 못하는 가난한 엄마가 내는 십일조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욕했다.
지금은 월급이 나오지 않아 백만원을 빌려 달라는 오빠의 전화를 받고, 시누에게 백만원을 빌려서
보내주고, 내심, 어떻게 하면 그냥 백만원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남편을 설득 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악마의 고민이다. 나는 악마라 불사의 몸을 가졌다. 팔이 부러져 산재처리를 받을 수 있게 된
친구를 부러워하며 보험을 들고 나의 몸을 혹사 시키고 있다.
그러나 생이여! 나는 악마라 이 세상이 아닌 어떤 천국도 꿈꾸지 않는다. 나는 이곳이 좋다.
햇빛이 좋다. 바람이 좋다. 꽃이 좋다. 나무가 좋다. 내가 좋다. 너가 좋다. 모두가 좋다.
영원이 아니여도 좋다. 불탄 종이처럼 산산히 흩어져 사라져도 좋다. 나는 악마라 영원을
꿈꿀 수 없다. 나는 악마라 밤새 울어도 아침에 웃는다.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는 내가
찡그린 얼굴, 짜증나는, 아픈 말들을 주는 것이 미안해서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쪽지에
"사랑한다"고 쓰서 건내듯, 웃음을 건낸다. 안녕하세요! 악마는 그렇게 인사를 하며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건내는 웃음처럼 내 웃음을 옷 소매로 부랴 부랴 닦은
사과처럼 건낸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고 했던가? 나는 미소를 입는다. 온 몸이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향한 웃음이였음 좋겠다. 몸은 뛰다가 넘어진 아이에게 냉큼 달려가 흙을
털어주고 "야! 이 친구! 진짜 용감하네! 아파도 울지 않고" 내 몸은 그렇게 웃는다.
밤새 끙끙 소리를 내며 앓았던 나의 몸이 아침에 양치 거품을 묻히고, 세면 거울 속에서
내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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