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7年 03月 15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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鵲巢日記 17年 03月 15日
맑았다. 아침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붓으로 한 필 썼다. 바다에 사는 물고기는 하늘을 그리워한다고 썼다.
택배가 왔다. 모두 10상자쯤 된다. 꽤 많은 책이 배달되었다. 어제 왔어야 할 책이었지만, 하루 늦은 셈이다. 아침에 부랴부랴 여러 선생께 보내야 할 책을 담아 포장했다. 택배로 보냈다.
오후, 사동에 커피 배송했다. 이번에 나온 신간 ‘가배도록3’과 ‘카페 확성기 1’을 선물로 드렸다. 카페 일 보시다가 심심하면 읽었으면 하고 드렸다. 점장은 매우 놀라워했다. 카페 우드에 커피 배송했다. 이번에 나온 신간을 선물했다. 우드 사장께서는 ‘카페 확성기 1’을 펼쳐 몇 군데는 읽으신다.
조감도에도 몇 권 전시했다. 점장 배 선생께서는 매우 관심을 보였다. 오전에 ‘가배도록 3’을 조금 읽었다며 말한다. ‘카페 확성기 1’을 가져다 놓고 한 권은 배 선생께 권했더니 점장은 머리말부터 펼쳐 읽으셨다.
전에 중앙병원에 일했던 이 선생께서 시지에 창업한 일이 있었다. 오늘 잠깐 들러 인사했다. 그간 책 쓴다며 찾아뵙지 못했다. 작은 화분과 이번에 낸 책을 선물했다.
카페 디아몽에도 들러 책을 선물했다.
저녁에 이러한 생각이 든다. 역사와 시 읽기, 그리고 글쓰기만큼은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다. 가배도록 3권 뒤쪽을 다시 펼쳐 읽다가 단재의 역사관은 우리 민족이 반드시 알아야 할 의무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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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탕光洞湯 / 鵲巢
계절이 바뀔 때면 간혹 코감기 앓을 때 있다. 그럴 때면 약국 가기에는 너무 멀어 가까운 마트에 가 광동탕 하나 사다 마신다. 두통 끼가 있으면 펜잘도 하나 사서 곁들여 먹는다. 자연은 늘 제 속도에 흐르지만, 몸은 노화로 머릿속 잠재한 시간과의 차이가 결국 감기로 드러난 것이다. 노화와 머릿속 잠재한 시간과의 차이를 틈이라 하자. 틈을 메우는 일은 광동탕이다. 광동탕 하나 까서 마시며 보름달 같은 현실을 고대한다. 하루 고되게 보내다가도 계절까지 잊은 틈을 우리는 광동탕처럼 보낸다. 언어의 카페, 죽사발을 들고 한 숟가락씩 푸는 것은 쉬이 내 삶의 연장이요 부끄럽지 않은 잎새를 이는 바람에 나부껴 보는 일이다. 광동탕, 내 어린 손에 그 병목을 비틀며 온전히 마시는 것은 아침은 백마 탄 초인이 있어 두 발 벗고 나가 맞이하기 위함이다. 광동탕, 하얀 눈밭에 내가 걸었던 발자국 보며 이미 걸어야 할 일을 아득히 예견해 보는 것이다.
물고기(魚) / 鵲巢
머릿속 유영하는 어떤 사고를 우리는 물고기라 한다. 물고기는 정처 없이 떠다닌다. 다채로운 색상으로 크기도 다양하다. 어떤 것은 우발적으로 하늘 튀어 오르는 것도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얼마 전 팽목항을 찾아 방명록에 ‘얘들아 너희들이 촛불광장의 별이었다’며 ‘미안하다. 고맙다’고 썼다. 이 ‘고맙다’고 쓴 게 한때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러니까 ‘탄핵해 줘 고맙다는 뜻인가?’ 일각에서는 해명하라는 비난에 진땀을 뺐다. 그러니까 이 ‘고맙다’는 말은 무심코 튀어 오른 물고기다. 바다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넓고 깊다. 바다를 개척하는 사람이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람이다.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분야며 그 바다를 일군만큼 어장은 풍부하겠다. 어장이 풍부하다는 말은 먹고 살 수는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물고기는 잘 다루어야 한다. 찢어진 지느러미 채 낚은 물고기는 없어야겠다. 물고기 한 마리로 천 냥 빚 갚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잘 정돈하여 기른 후, 생선 궤에 반듯한 어물로 가득 채우는 날까지 바다는 개발하여야 한다. 죽는 그 날까지 바다의 어장을 개척하는 데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다. 수어지교(水魚之交)라는 말도 있듯 우리는 물고기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임을 명심하자.
마계 / 鵲巢
마계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말을 세놓는 일을 목적으로 삼던 계 마계馬契가 있고 다년생 국화과 풀이 마계馬薊라 하고 이를 말린 약재를 또 마계馬薊라 하기도 한다. 또 하나는 악마의 세계를 마계魔界라 한다. 마계와 비슷한 소리 은유인 마개도 한 번 떠올려볼 만하다. 마개는 병 입구를 막는 뚜껑이다. 귀마개, 병마개, 북한에서는 총마개라는 말도 쓴다. 총마개는 총알받이를 뜻한다.
시는 언어 마계다. 우리의 현실을 혹은 그 현실을 역지사지로 그려낸다. 언어 마계가 마치 언어 마개처럼 읽힌다. 우리가 본 사물은 각막과 동공을 통과하여 망막에다가 그림자를 남겨놓는다. 그림자는 실체가 아니라 상상이다. 이를 표현한다는 것은 현실의 언어로는 역부족이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세계에 그 그림자는 떠 있으므로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언어로 묘사할 뿐이다. 그러므로 시는 언어 마계다.
글은 고체화한 사상이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한다는 것은 젤리 같은 이상이다. 어떤 물체로 굳는 것은 그 이상이 표현될 때다. 글은 그 뜻을 다 표현할 수 없다는 고사도 있지만, 우리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오로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시를 잘 쓴다는 것은 우리가 읽지 못하는 그 어떤 것도 들어내었다는 얘기다. 마계의 실체를 언어라는 마개로 잘 덮은 것이 어쩌면 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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