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7年 03月 21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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鵲巢日記 17年 03月 21日
맑았다. 엊저녁에 봄비가 내렸더니 꽤 맑았다.
조감도 뒤, 매화가 피었고 살구가 꽃을 피우려고 한다.
아침에 잔돈 바꾸기 위해 새마을 금고에 다녀왔다. 마침 전무님께서 계셨는데 인사했다. 전무님은 인사로 복사꽃이 피었지요? 복사꽃 피었습니까? 하며 물으셨다. 복사꽃만 핀 것이 아니라 매화도 피었고 살구도 피려고 하다며 답했다. 이제 벚꽃이 피면 온 동네가 꽃과 향으로 가득하겠다. 종일 꽃향기로 코가 간질거려서 재채기 여러 번 한 것 같다.
오전, 커피 교육을 진행했다. 교육생 손 씨는 67년생이다. 오늘은 커피 사업을 어떻게 이끌어왔는지 얘기했다. 그간 배워 나간 교육생과 그 활약상을 잠시 얘기하기도 했다. 손 씨는 어느 지인이 진량에 건물이 하나 있는데 이 건물에 새 들어 있는 음식점이 곧 계약이 만료되어 커피 집하면 어떠냐는 권위로 교육받게 되었다. 이 음식점은 장사가 꽤 잘 된다. 문제는 권리금 문제가 모호해서 건물주는 지금 영업하는 사람은 계약이 만료되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인 거 같다. 그간 땅값도 꽤 올랐다. 누가 땅을 파시라 해도 팔지 않았다. 웃돈을 더 들인다 해도 팔지는 않았던가 보다. 진량, 외환은행 사거리 요충지인 데다가 땅값은 매년 오르니 거기다가 세만 놓아도 수익은 제법 되어서 팔지 않았다. 그나저나 음식점은 올 시월이 만료라 하니 어떤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다.
박영규 선생께서 쓰신 ‘춘추 전국사’를 모두 읽었다. '군주가 자식을 태자로 삼으면, 그 태자의 어미는 군주가 빨리 죽기를 바란다.' 한비자의 말이다. 이 말이 종일 곱씹으며 생각했다. 남자면 평생 일도 일이지만, 그 무엇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저녁, 식당 운영하시는 김 씨, 문구점 운영하시는 전 씨, 어느 도예공 선생과 함께 식사했다. 옥곡 흑태찜이라는 식당에서 먹었다. 흑태찜을 처음 먹어보았다. 명태라 보기에도 어렵고 대구와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그 맛은 명태와 대구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있었는데 이들 고기보다 기름이 좀 더 많아 보였다. 씹는 맛은 독특하며 씹을 때 입안에 기름이 착 도는 맛이 일품이라 자꾸 손이 가다 보면 배 부르는 것도 모를 정도다. 적당히 먹어야 하지만, 과하면 속 더부룩하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
다시 본점으로 자리 이동하여 커피 한 잔씩 마셨다. 문구점 운영하시는 전 씨는 건물 곳곳 궁금한 게 많았다. 이것저것 물으시는데 답하기에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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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두께 / 鵲巢
누구는 가슴에 뜨지 않는 달이 하나 있네. 한마디로 거절하는 개미의 반대를 무릅쓰고 싸리문은 걸어 잠가야 했네. 담장 너머 핀 참꽃은 저리 붉으랴. 하루도 쉬지 않고 골목을 거닐며 내다본 산마루는 저리 높으랴. 반듯하게 길을 긋고 잘못된 돌은 바로잡고 졸음을 꺾으며 새웠던 필봉, 조그마한 마을이라 해도 어제가 있고 오늘이 있고 내일이 있네. 그 깊이를 들어내는 것은 어제의 것을 다시 읽으며 떠올려 보는 일, 좁은 마을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찢어 놓는 것 춘추필법만이 올곧게 세우는 일이네. 큐브의 긴 호흡과 짤막한 각주는 가위처럼 타기함세. 두 안장은 절대 용납할 수 없어, 쓰다 시바새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네. 그러면 마을은 꽤 산책하기 좋다네.
*쓰다 소키치 소리 은유
만주철도주식회사와 조선사편수회 출신으로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 등의 조선 식민사학 이론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쓰다 소키치는 한(漢)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했다는 한 군현이 평양을 비롯한 한반도 북부에 존재했으며 한반도 남부에는 임나일본부가 있었다고 하는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했다.
대한민국의 역사학자 이병도는 쓰다 소키치의 제자다.
어느 소년의 행보 / 鵲巢
하나(Hanah)는 긴 꼬챙이에다가 하얀 보자기를 묶어 어깨에 둘러메고 여행한다. 예멘에서 다마스쿠스로 이동한다. 현실과 미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간다. 예멘은 예멘이 아니고 다마스쿠스는 다마스쿠스가 아니다. 우리는 오늘 걸었던 양만큼 사고의 깊이를 가져야 한다. 마치 오아시스에 당돌한 낙타가 물을 흠뻑 마셔두는 것과 같다. 언어의 사막을 우리는 쉼 없이 걸어야 한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언제 저 모래바람에 파묻혀 영영 깨어나지 못한 삶으로 마감할지도 모른다. 하얀 뼛골로 풍화되고 수천 년 모래에 휩싸여 떠도는 운명이다. 모래의 역사를 밟으며 다시 다마스쿠스에서 예멘으로 우리는 걷는다. 마치 지도에 지난번 걸었던 여정을 표시해 두었듯이 어쩌면 공간의 벽을 계속 파기하면서 타기한다. 우리의 고향은 어딘가? 오아시스와 같은 영혼의 안식처 말이다. 간이침대를 펼치고 따가운 햇볕을 잠시 피하는 파라솔 같은 잠은 어떤가! 잠을 취하는 수련은 어쩌면 본능이다. 긴긴 다시는 오지 못할 이 땅에 가벼운 모래로 우리는 남는다. 하나(Hanah)는 오늘도 예멘에서 다마스쿠스로 간다. 다마스쿠스에서 낙타 등을 타며 흰 보자기 펼치며 모래바람을 더듬으며 무한 공간으로 이동한다. 별 총총 밤하늘 보며 은하수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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