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7年 03月 22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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鵲巢日記 17年 03月 22日
대체로 맑았다.
조회 때, 김 군은 아침 뉴스에 들었던 얘기를 했다. 어느 70대로 보이는 구두닦이는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사인은 고독사라 한다. 생애 칠천만 원을 모았다고 한다. 김 군은 40이 넘었고 아직 총각이다. 이 뉴스가 가슴 깊이 닿았던 모양이다. 나는 웃으라고 한 얘기지만, 결혼해도 고독한 것은 마찬가지라 했다.
오전, 아내 오 선생과 삼성현 역사문화 공원에 다녀왔다. 어느 지인께서 이곳에 땅을 사놓고 집을 짓지 않았다고 해서 다녀왔다. 우리는 상가 지을 수 있는 땅이 있는가 하며, 둘러보았다. 공원 앞에 땅 분양이라 현수막이 붙었는데 전화했더니 상가 지을 수 있는 땅은 없고 이 현수막 붙은 곳, 커피 집 하 나 있었는데 이 땅을 사라 한다. 땅값은 10억이라 한다. 앞에 택지 분양한 가격은 130여만 원인데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이 커피 집은 평당 400만 원 친다. 이미 미래가치가 다 반영된 가격이다. 경산 시에서 시행한 공원 조성은 참 잘 된 것 같다. 양지바르고 앞이 탁 트이니 주말이면 사람이 붐빈다고 했다. 시에서 공원을 조성하더라도 위락시설을 갖추었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경기 안 좋고 고용이 좋지 않다는 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서민의 놀이문화를 잘 살렸으면 고용 효과와 소비문화를 낳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반곡지도 많은 사람이 찾지만, 정작 편의시설은 한 군데도 없다. 참 안타깝다.
오후 3시, 커피 교육했다. 오늘은 커피 역사를 강의했다. 커피 발견에서부터 서양세계에 커피가 언제쯤 들어가고 어떻게 전 세계에 전파가 되었는지, 우리나라는 언제쯤 들어오고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시대별로 조목조목 예를 들며 설명했다.
이외, 오늘 틈틈이 시마을 동인 선생께서 주신 시집을 읽었다. 이른 아침부터 읽었는데 저녁 7시쯤에야 한 번 볼 수 있었다. 선생께 긴 편지를 썼다. 어떻게 대하실까 미리 걱정도 된다. 아무쪼록 시집 출간에 먼저 인사드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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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태찜 / 鵲巢
칸막이 놓인 방에 구르마 끌며끌며 온 흑태찜 있었네. 콩나물이 살아 있었어, 아주 맛깔스런 흑태찜 아삭거리네. 살아 있었단 말이야, 사이사이 등대 같은 섬 우리는 방향만은 잊지 않았지. 곧장 허공을 가르며 집은 살짐, 신세계 그리네. 뒷문 닫은 눈은 큰 사람 같네. 접시에 담은 트렁크보다 바다는 깊어, 바닷속 헤집으며 운전만 했네. 어느 사거리 신호등 없이, 힐끗 바라본 백미러 하나 없이, 뒷문 닫은 눈은 큰 사람, 눈만 동그랗게 떠서 심해에 누웠네. 보드라운 물거품보다 부드러운 습자지보다 한 겹씩 읽은 물살, 너무나 짧은 시간 긴 바다를 한껏 공백의 구석진 자리에 채웠네. 숨 헐떡거리며 바다를 끝끝내 붙잡으려 애썼네, 싱싱 달리는 차 혼선 하나 없었네. 동그란 눈알 잃은 바다, 덩그렇게 길가에 놓이네. 시신경 끊은 눈알 하나가 데굴데굴 구르네.
부질없는 일 / 鵲巢
태후는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였지. 여불위는 노애가 궁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다며 거짓으로 궁형을 가하는 척했네. 눈썹과 수염을 모두 뽑은 뒤, 환관으로 변장시켜 태후의 궁중에 들여보냈다네. 노애가 태후의 궁중에 들어간 뒤, 두 사람은 자주 간통했네. 두꺼운 문이 열리는 순간, 아! 말해서 뭐하겠나? 말 그대로 교잡이었어, 그러니까 그건 임신이라고 하세. 태후는 남들이 알까 봐 두려워서 몰래 아이를 품고 있었던 걸세. 결국, 유명한 점쟁이를 매수하기까지 했네. 점은 참 묘하게 나왔네. 궁을 옮겨 옹 땅에 살아야 한다는 거야. 그 후 태후는 옹 땅에 궁궐을 짓고 살았네. 노애는 한 치도 태후의 곁을 떠난 일 없었네. 올 붙어 있었지.
에휴 마! 어떻게 되었겠는가? 진 시황은 모두 불태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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