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슬픔 가명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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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떠난다.
유산균아, 보리밀아, 곽진구야,
욕쟁이 술주정뱅이,
요구르트 아줌마로 다시 살아 보고 싶었고,
요구르트 아줌마가 지겨웠고,
이전의 이름이 부끄러웠다.
나는 외로워서 내가 지은 가명들이 내 친구다.
외로움이란 참 괜찮은 성이다.
첨탑이 무너져 가는 이 성에서 나는 내가 지은
가명에 물을 주고 말을 걸며 향기를 맡으며 사는
라푼젤이다.
외로움이 필요할 때마다 나는 욕을 한다
술을 마신다
주정을 한다.
그러고 나면 한 사람 씩 한 사람씩 내 곁에서 없어진다.
없어질 때마다 나는 홀가분해진다.
한 명의 외로움이 늘 때마다
내 가명도 하나 더 늘어난다.
안녕,
이젠 번데기 다 벗고 나비가 될까?
내가 일평생 바꾸지 않은 단 하나의 필명
숲, 불, 물,
누군가 무식하고 욕잘한다고 비꼬면서 지어준 필명을
나는 그게 누군지 몰라서 고맙다고 받아서
한 번도 바꿔 본 적이 없었다.
안녕, 한 때 나를 품어준 이름들아
나는 돌아간다.
댓글목록
곽진구님의 댓글

술이 취했다.
혹시 두편이 넘을까 싶어 리플을 단다.
난 누군가 나의 글을 읽을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쓸 수 없다.
다만 나의 현실에 맞게 나를 훈계하는 글을 내가 읽는다.
언젠가 조선 후기의 화가 오원 장승업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보았다.
그림을 그리라고 집도 마련해주고 맛나는 것도 주는데
오원이 아무 그림도 그리지 않아서 누가 왜 그리지 않느냐 물었더니
"이놈아! 꼴려야 그리지"
꼴려야 그리는 것이다.
꼴리지 않을 때는 아무리 절경을 보아도 절치부심해도 단 한 줄을
쓸 수 없다가도 꼴리면 열편도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장승업같은 천재도 아니면서
열편을 다 어쩌겠다는 말은 아니나
적어도 자를 들고 다니면서 여학생들 치마길이를 재는 것은 좀 심한 것 같다.
블랙리스트가 따로 있나?
무슨 무슨 규정이다 하며 어긋난 사람들
자료를 쫙 긁어 놓고 당신이 이랬다하고 올리는 것 진짜 소름 끼친다.
여기 시 올리는 사람들 나 빼놓고는 모두
규칙 잘 지킨다.
알아서들 한다.
그가 완장차고 설치지 않아도 모두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는 사람들 같다.
아무리 유명한 시인들의 글판은 아니라지만
여기에도 꼴림이란 분명 있을 것이다.
어쩌다 꼴림이 규칙을 살짝 위반 했을지라도
인정사정 없이 위반 사례를 올리며 눈에 불을 켜는 것은
이런 예술 공간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속 풍경인 것 같다.
내가 운영진이 규정을 지켜 달라는 말을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규정보다 중요한 이해와 배려가 분명 있을 것이다.
일주일 내도록 단 한 편도 올릴 수 없었던 사람이
주말에 자정 전후로 서너편을 올린다면 그것은
토, 일 분량이며 일주일 분이다.
바빠서 그 사정 설명 조차 할 수 없었다.
조금만 이해해 달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공간이 예술 공간인가?
이 승철릐 노래 중에는 마지막 부분을 길게 부르는 부분이 있다.
노래 곡명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을 짧게도 할 수 있고 길게도 할 수 있는 것이
예술의 탄력성일 것이다.
욕을 한 건 명백한 나의 잘못이다.
그기에 대해 변명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양해를 이미 구한 부분을 다짜고짜 물고 늘어져서
너를 위해 준비했다는 듯 시시 카메라에 찍어 둔 것을
모조리 꺼내서 협박하는 순간,
나는 인격수양이 덜 되어 욕이 나온다.
좃만아! 니 꼴리는데로 해봐라!
그것도 내가 이미 사과한 욕부터 스크랲 해서 좍 올렸다.
그는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잘못하는가
눈여겨 봐두고 그 증거를 수집하고, 여차하면 들이대기 위해
시고 나발이고 쓸 시간이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 시마을에 출두하는 암행어사 같다.
내가 욕을 잘해서 시 쓰러도 못 온다는 분이 있다는데
나는 그가 욕을 잘하게 만들어서 시마을을 탈퇴 할 것 같다.
진짜 좃 같은 새끼라고 나는 느껴진다.
욕은 그를 위해 제작된 인류의 문화 유산 같다.
나야 이미 구제할 수 없이 좃같은 인간이지만
부디 그가 그의 좃같음으로부터 구제 되기를 기도한다.
아! 멘, 아! 멘붕이다.
사내새끼가 진짜 부랄찬 값을 못한다.
쪽팔린줄 알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