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유 일기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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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 죄송하다.
나에게도 죄송하다.
어제 회식이라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새벽에 배달을 할 때 한 동 옮길 때마다
하수구에 토했다.
서른 다섯살인 여사님이 소주를 마시니까
마흔 아홉인 여사님이 말했다.
술은 사십 넘어서 마셔야 한다고,
세상이 지키고 있는 건전이라는 건전은
죄다 자신의 것인양 하는 여사님에게
술을 권하며 무슨 말이라도 섞어보려 했지만
마음이 섞이지 않아 그런지 말도 섞이지 못했다.
대부분 세상을 건강하게 하는 인간 유산균 같은
그녀들과 내가 친해질 것 같은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나라고 해서 건전이라 규정 짓는 삶에서
얼마나 거리가 멀까마는, 무엇이라 할지라도
타의적인 가치에 얽매여 살아가는 것은 내 성향과
거리가 멀다. 나는 아직도 노래방에서 사내들의
마음을 탬버린처럼 흔들며 살아가는, 가슴이 너무 커서
그 가슴을 어깨 너머로 젖히는 시늉을 하며 인사를 하는
k와 사십 이전에, 아이를 키우는 여자는 술을 마셔서는
않된다는 모범 여사님이 격이 다른 친구로 보이지 않는다.
나는 사십이전에 술을 마셔서는 안된다는 여사님이 가지고
있는 자부심의 근거를 묻고 싶다. 아버지와 오빠가 아닌
남성에게 술을 따르지 않는다는 그 시대, 손의 자부심 같다.
나는 그런 장벽에 갇힌 사람은 정말 딱 질색이다.
내가 알고 있는 희정이라는 친구는 술집에서 웃음을 팔고
몸을 팔고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런데 늘 노름만 하고
놀고 먹는 남편의 노름빚 때문에 이혼을 하며 한번도 직업을 가져 본
적이 없는 남편이 자신이 없으면 어떻게 살거냐며 술 마시고 몸 팔아
번 돈 오천만원을 남편에게 주었다. 남편과 오빠 아닌 남자에게 술도
따르지 않고, 사십 이전에 술도 마시지 않는다는 그녀들이 이혼을 할
때는 어떨까? 나는 지금도 (만난지 몇 년이 지났지만)
전화 한 통하면 묻지도 않고 몇 백이라도
돈을 빌려주는 희정이가 왜 그렇게 고결하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거제를 가면 묻지도 않고, 자신의 집에 살자고 한다.
어떻게 살건 경직되고, 닫힌 삶 보다는 다치고 아프더라도 사랑하고 열린 삶이
나는 좋다. 내가 발효유 아줌마를 하는 것은 그것이 건전하거나 가치로워서가
아니라 내가 바깥에 있는 동안 아무도 간섭을 하지 않아서이다. 뭐든 밥벌이를
하긴 해야하는데 (젊지도 않은데 그녀들처럼 웃음이라도 팔자니 내 웃음이
시든 상추처럼 돈 주고 사기에 부담스러울 것 같아), 식당에 가자니 밤 열시까지고
주말도 없어 조금이라도 짧게 일하고, 주말엔 시도 좀 쓰고 싶어 하는 일이다.
난 대통령이 남이 앉은 변기에 앉지 않는 것을 이해하고 싶다. 자신을 그렇게 남다른
존재로 인식해 보고 싶다. 목구멍에 풀칠하느라 무엇을 하고 살건, 내가 보는 견해는
오십보백보다. 사람이 다 똑 같이 살아야 할 까닭도 없다. 꽃 타령과 창부 타령을 기가 막히게 부르는, 오십이 넘어도 아직도 그 바닥에 있는 j는 연예인이다. 일류면 좋겠지만, 어쩌겠는가? 팔자라는 것도 있지 않겠는가? 나는 그녀가 부르는 타령들이 텔레비젼에 나오는 어떤 민요 가수가 부르는 타령보다 멋드러지게 들린다. 그녀가 타령을 부를 때는 사내들도
잡질을 멈추고 흥에 겨워서 그녀에게 혼을 뺀다. 아아니, 아니 아니 노지를 못하리라..나는
사십전에는 술도 마시지 않는 그녀들보다 술에 취해 사랑에 취해 노래에 취해 사는 날라리
그녀들이 더 멋진 인생 같다. 발효유 네 병 값인 담배를 꼬냐 물고, 인생 뭐 있나? 신나게 놀다가는거지, 쥐구멍에 볕이 든다면 가수가 되었을 진짜 논다니 그녀들이 나는 자주 그립다. "언니야! 언니는 언니 자신이 순수하다고 믿나? " 고리에 칠이 벗겨진 나의 브레지어를 빨랫대에 널며 희정이는 물었다. 난 정말 내가 그렇다고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내가 순수하다고 믿냐고 물은 것이 아니라 무엇이 순수냐고 내게 물은 것 같다. 허구헌날 하는 일이라곤 노름해서 노름빚 늘리는 일인 남편이 마누라가 웃음 팔고 몸 팔아 번 돈으로 노래방 가서 도우미들 팁 주더라는 말을 듣고 그녀는 말했다. " 내 남편 같은 사람이 노래방 가서 팁 주고 노니까 우리도 먹고 사는건데, 내 남편이 여자 데리고 놀면서 팁 한 푼 줄 줄 모르는 쫌생이면 더 쪽 팔리겠다"던 그녀, 참 화통한 순수였다.
야쿠르트 소장이 벽에 무슨 꽃, 무슨 색깔, 무슨 계절을 좋아하는지를 적으라고 붙여 놓았다. 나는, 모두, 모두, 모두라고 적었다. 이 나이에 열여덟 여고생도 아니고, 무슨 꽃이 좋고 무슨 꽃이 싫겠는가? 나는 살아서 보는 모든 꽃, 모든 색깔, 모든 계절이 다 좋다. 소장은 검정색이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라 했지만, 검정색이 뭐 어떻다는 것인가? 깊은 산골에 가보면 불빛에 탈색 되지 않은 마냥 짙은 어둠이야말로 색상의 극치라는 느낌마저 든다. 한 평생 뼈빠지게 일만하다 가는 인생은 가치롭고, 놀다 가는 인생은 천한가? 오히려 허구헌날 야쿠르트 옷 속에 갇혀서 개미처럼 살아가는 그녀들이 한 일주일 짙은 화장하고, 미니 스커트 입고 낯선 사내들이랑 노닥거리며 쉬운 돈 좀 벌어 보았으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앞으로 놀다 갈 것이다.
뭘 하든 놀 것이다.
노는 마음으로 살 것이다.
인생을 전쟁터가 아니라 놀이터로 만들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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