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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유 일기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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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유산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43회 작성일 16-12-10 12:35

본문

어제 마칠 무렵 창원에서 S가 이곳까지 찾아 왔다.

아이 넷을 데리고 혼자 사는,

함께 교육을 받았던 여사님이다.

나도 금요일은 아이들 집에 가서 밀린 빨래와 설겆이, 청소도

해야하고,  일주일 동안 먹을 음식도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무척 바쁜 날이였지만, 창원에서 여기까지 왔다는데

만남을 거절 하기가 참으로 미안했다.

결국 택시를 타고 그녀를 만나러 갔는데

그녀를 만나서 삼십분도 되지 않아 남편으로부터

발발이 전화가 걸려왔다.  아침에 그녀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내가 일하는 아파트로 나를 데리러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가 끝나면 전화 하겠노라 했는데

십분도 않되어 근처에 왔노라고,  어디로 가면 되냐고 전화가 왔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하던 이야기를 대충 끊고

허겁지겁 달려 내려갔다.


화가 났지만, 그가 더 화가 나 있어 화를 내지 못했더니

뒷골이 찌릿찌릿 아파왔다. 언제 봤다고, 그런 쓸데 없는

인연을 만나냐는 것이 그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인 것 같았다.

내 인연들은 늘 그렇게 검열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쓸데가 있는 인연이란 어떤 인연일까? 그 반대의 인연이란

또 무엇일까? 내가 쓸데와 쓸모를 가리고 인연을 가졌다면

그 자신과 나의 인연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일까? 난 요즘

화가 많이 나면 구토증과 어지럼증과 뒷목을 누가 조르는 것

같은 증상이 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화와 화해하며 살려고

노력한다. 나도 사실은 화가 납니다.  쓸데가 당장 느껴지지 않는

인연들 말입니다. 이전에 같이 식당에 다녔던 동료들은 오다가다 와서

내일 배달할 제품들을 싸거나 장부를 정리 하는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아이들 하원 시간에 젊은 엄마들과 아이들이 서 있는데도 육두문자를

쓰면서 욕지거리를 해댑니다. 나도 잘 하는 욕이라 욕자체를 문제 삼고

싶지는 않았지만, 귀밝은 아이들이 들을까봐 살짝 무릎을 쳤는데도

계속 욕을 해댑니다.  좀 반반한 종업원만 보면 만져보자 안아보자,

불륜한 번 저질러자 하던 사장에게  그런 것은 너의 애인에게나 하는 것이다

성추행으로 고소 당하기 싫으면 그만해라고 문자 넣었다가 내가 잘리게 되었을 때

사장이 모두를 모아놓고 물었습니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을 누나처럼 여동생처럼 생각해서 그냥 친근감의 표시로

그러는 것인데 나의 그런 행동이 불쾌 했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나이 지긋한 주방 이모는 말했다.

"그런기야, 뭐 서로 친하다 보면 그럴수도 있지"

누구 한사람 사장님, 좀 지나치신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백대 일, 천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회사가 아니였다.

그 식당의 처우나 조건이 다른 식당보다 나은 것은 그 무엇도 없었다.

사장이 없는 자리에선 모두 개거품을 물고

그날 사장에게 당했던 성추행들을 늘어 놓던 사람들이였다.

내가 옷을 갈아 입는 탈의실까지 들어와서

누나 한번만 안아보자 했던 사장이였다.

어떤 직원은 뒤에서 껴안고 귓에다 입김을 불어 넣어서

더러워 죽는 줄 알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우리 모두를 더 이상 불쾌하게 하지 말라고 내가 말했을 때

그 누구도 나의 우리, 모두가 되어주지 않았고,

나는 그 식당에서 잘렸다.

그런데 일년이나 지나 그 식당을 그만 둔 한 살 위인 언니가 내 가게를

찾아와 그 사장의 잘못한 일들을 늘어 놓으며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들에게

들리도록 욕을 해대는 것이였다. 정말 쓸데, 쓸모를 찾기 쉽지 않은 인연들이였지만

참, 얼마나 두렵고 사는 일이 힘겨웠으면 그 흔해빠진, 제발 정직 좀 해달라고

가는 곳마다 빌어대는 식당에서 잘리는 것이 두려워 제 할 말 못하고 있다

그곳을 그만두고, 아무 힘도 없는 내게 와서 퇴직금 문제를 상의 하는 것일까?

내 세 시간 상담이 고맙다고 야쿠르트 열개, 천 칠백원어치를 사가는 그녀들

때문에 나는 내일 배달 갈 속의 우유와 발효유를 몇 군데나 엉터리로 싸고

내일 항의 전화를 받게 될 것이다.

어떤 동생이 하는 술집에 외상술을 한 잔 하려고 갔더니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주당 언니를 불러 냅니다.

사실, 나는 내 술값도 부담스러워 혼자 마시고 가려던 참이였는데

쓸모가 있건 없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언니를 불러내어

맥주만 마시는 그녀의 술값까지 속으로 걱정하고 있는데

이번엔 내 걱정을 덜어 주려는지 그 언니가 알고 지내는 영감까지

불러 내더군요.  나는 속으로 내 술값도 계산해주려나 싶어

하기 싫은 말도 하고 듣기 싫은 말도 들어 주었는데 내가 술에 취해

집에 돌아간 뒷날 아침, 문자가 들어 왔는데 그 영감 술값까지

덤탱이를 씌우더군요. 술 취해서 기억 나지 않는 내 죄라 싶어 계산은

하겠노라 했는데, 참 쓸데없는 인연이라 싶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훗날

그녀들이 내게 쓸데, 쓸모를 느껴 전화를 하면 나는 또 냉정할 수 없을

것을 나는 잘 압니다. 나는 누구에게라도 쓸데가 되고 쓸모가 되고 싶은 병

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회사에 성인이 되는 날을 이틀 남겨 둔, 열아홉

여사님이 들어 왔습니다. 그러니까 엊그제 그녀는 어디에 합법적으로 취직

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입니다. 그녀에게는 남편과 십팔개월 된 딸이 있으니

여사님은 여사님입니다. 어린 사람이 아이를 가지고 얼마나 고민스럽고 힘

겹게 세상과 싸웠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서, 그녀가 이제는 합법적으로

아이 엄마가 되고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세상에서 쓸모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을 축하 해주고 싶었습니다. 야금야금 쓰고 나면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는

목돈이 되는 전대 돈을 헐어서 푹신한 양말 몇 켤레를 사고, 양말 몇 켤레가

좀 더 그럴싸한 내 마음처럼 보일 수 있게 빨간 포장 가방에 넣어서 그녀에게

선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회사 여사님들 중 아무도 그녀가 성인이 된 것을

마음 밖으로 축하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나만 왜 일케 착한가를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의 오지랖이 참 광활하긴 하구나. 그 여사님들 중 가장 가난한

내가 아무도 하지 않는 짓을 하며 괜한 주목이나 받게 될까봐 거북스럽기도 했지만

지금껏, 남들 공부하고 수능 칠 나이에 불러오는 배를 안고, 혼자 끙끙 앓다, 아이를 낳고

살아 볼거라고, 사십 된 우리도 힘든 발효유 아줌마가 될 거라고 나온 모습을

그냥 그러려니 한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방관이나 방치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돈 있음 네 아이들 양말짝이나 챙겨라고 누군가가 빈정거리는 것 같기도 했지만

내 아이는 열일곱에 임신을 하지도 열 여덟에 출산을 하지도 않았으니, 우선 발이

더 시릴 아이가 남의 아이라면 더 발 시린 아이에게 양말을 신기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 이렇게 이쁜 어른이 세상에 한 명 더 생겨서 기쁘고 감사해요.

어른 된거 축하해요.  자신의 사랑을 책임 질 수 있다면 이미 어른이였는데

정말 멋진 어른이 될것 같아요. 우리, 어른끼리 잘해봐요!" 나는 내가 사준

케시미어 양말 몇 켤레가 그녀가 생의 어느 순간 했던 사랑과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성인으로서의 첫 걸음을 따뜻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쓸데와

쓸모의 장부가 없는 나의 인연들을 질색하는 그가 사랑한다면 나의 주먹구구를

좀 더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나이 오십에도 남을 위해 쓸 돈은 커녕

내 앞가림에 쓸 돈도 없는 내가 내 주변에게 손톱만한 쓸모라도 꿈꾸는 일이

허황된 것 같기도 하지만 어쩌랴, 세상은 서로 팔짱을 끼고 직조 되어가는 직물

같은 것, 뜨개실 한 코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서로의 코를 물고 우리는 한 벌이 되어

한 세월 덥히다 흙으로 풀려가는, 사람은 결국은 한 가닥이 서로 엮여 만드는 한 코에

지나지 않는 것을, 온전한 나를 꿈꾸며 머리를 깍고 산속으로 가도, 그 또한

질긴 바람 같은 인연에 다시 얽혀드는 것을,


자주 간암말기 남편에게 시집 온 베트남 여자에게 줘버린 노트북이 아쉽습니다.

일을 마치고 와서 일기라도 쓰려면 남편이 컴퓨터를 차지하고 있어

비켜 주기를 기다리다 잠이 들어버립니다. 그러나 밤 열시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시어머니와 조카와 아이만 있는 집에서 뒷치닥거릴 하다 잠을 자고

낮에는 일만 하고, 그러는 그녀의 청춘이 나보다 젊고 싱싱해서 그 노트북은

나보다 그녀에게 더 쓸모를 할 것이라 믿습니다.

자판을 치는 것보다 수기를 하는 것이 내가 내 마음으로 빚어낸 의미들과 좀 더

끈끈한 관계를 맺는 일 같습니다.


제발, 쓸데 없는 사람들 만난다고, 그대 앞가림이나 잘하라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나는 무슨 쓸데가 있어 이 추운 겨울날 창원에서 여기까지 얼굴 한 번 보자고 왔겠습니까?

아무것도 아닌, 아무 쓸모도 되어 줄 수 없는 나를 그렇게 찾아주는 마음이 이미

나를 세상에 있어도 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쓸모 입니다.


쓸데, 쓸모가 되기 위해.

오후엔 식당 아르바이트를 가야 합니다.

냉동실에 넣어둔 매운탕 꺼리를 얻어와서

우리 마당에서 오글오글 살아가는 고양이들에게라도

쓸모 있는 인간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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