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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유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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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유산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60회 작성일 16-12-1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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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에 앉으면 건너다 보이던 산은 이제 신축 건물에 가려질 것이다. 집 앞을 지나가는 길 아래 쪽에 있던 논을 메우느라 밤낮 없이 포크레인 소리 요란하다. 사람의 시선이 한 번 지나가면 자연은 거의 초토화 된다. 초토화를 통해 만든 도시에서 잘 살고 있는 그들이 왜 자연을 뒤돌아보는지 무섭다. 가난의 선물이라고 좋아하던 햇빛 자로 재던 긴긴 바람의 포목도 산과 사람 사이의 여백도, 그냥 가난한 사람들 끼리의 낮은 지붕도 가려질 것이다. 그들은 뭐든 가지길 좋아해서 무엇이나 멀찍이 보고 모두 함께 누리는 것을 꺼려한다. 그렇게 그들은 나와 우리를 구분하며 우리 가운데 나를 세우고 싶어한다.


요즘 새벽 바람은 이전의 봄바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 동물들로 부터 더 많이 털을 뺏고 젖과 알과 고기를 빼앗고 집에 불을 때어 동물들과 함께할 하늘에 그을음을 앉혀서 그런지, 사람의 겨울을 덥히느라, 삶을 덥히느라 지핀 불에 지구가 통째로 데워져서 그런 것인지

새벽에 집을 나서도 뺨이 시리지 않고, 오히려 긴 겨울 끝의 봄바람을 맨살에 느끼는 감미로운 느낌마저 든다. 내가 발효유를 파는 후문 화단의 진달래는 내가 발효유 장사를 먼저 그만 두나, 자신이 먼저 시드나 내기라도 하듯 꿋꿋하게 겨울을 잘 보내고 있다. 내가 백 이십만원을 메꿔넣고 친 마감 후에도 들어오지 않는 발효유 대금을 받으려고 고객과 통화를 하는 야외 사무실은 이제 내게 실내처럼 체감 된다. 아무리 바닥을 보아도 곡식 알갱이 한 알 없는데 오글오글 갈물 들인 구름뭉치 같은 새들이 날아들어 바닥을 쪼아댄다. 늘 한 골목 더 돌고 싶은 전직 교장 선생님과, 이제 추우니까 그냥 집에 가자는 요양사가 실갱이를 벌이는 벤치에는 비오는 날 빼고는 칸트처럼 산보의 시간이 정확한 햇빛이 걸터 앉아 있다.

점심을 먹지 않는 것이 거의 습관화 되어가는 내게 서너마리의 붕어빵을 건내시던, 오고 가는 노인들과 나를 포함한 몇 세대들이 겨울을 추억할 수 있는 마지막 인류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어묵이라 부르는 것보다 오뎅이라 불러야 제맛인 오뎅은 내 점심의 주식이 되어간다. 오백원짜리 동전 두개를 내고 오뎅 두 꼬챙이만 내려 놓으면 내 저녁은 배가 일어난다. 붕어빵 할머니와 나는 시장 번영회 회원들처럼 나름의 친목으로 결속 되어 간다. 101동에서 113동 까지  두 동마다 있는 여덟 분의 경비 아저씨들은 하나 같이 머리를 보고 뽑으시는지, 모자를 벗고 졸고 계실 때는 머리에 광배가 비친다. 그분들 중 바로 후문 입구에 있는 경비 아저씨 두분과는 많이 친해졌다. 한 분은 소심하고 한 분은 소탈해서 한 분은 얌전하게, 한 분은 털털하게 친하다. 코드를 맞춘다는 것은 간사가 아니라 배려라는 생각도 든다.


여전히 남편은 내 새벽 배달의 기수다.  나는 껌팔이 대장이 꼬봉을 부리듯, 에레베이트 층수 버튼 아래 놓여진 발판에 앉아 에레베이트 버튼을 누르고, 제품을 건내며 장부에 있는 호수를 말해준다. 그는 동작 굼 뜬 꼬봉처럼 에레베이트 문이 닫히기 전에 돌아오지 못해 에레베이트 문사이에서 햄버거 사이의 상추와 버거처럼 끼이기 일수다. 어떨 때는 빠뜨린 집이나, 예외로 주문한 먼 동에 아무것도 모르는 그를 보내기도 한다.


오늘도 새벽에 차를 타고 가며 예수님께 기도를 했다.

이제 내 평생에 남은 새벽,

항상 당신에게 말을 건내며 시작하게 해달라고,

이제 내 평생에 남은 나날

언제나 당신과 말을 섞으며 살아가게 해달라고,


이제 에레베이트 안에서 꼬봉이던 그가 빨리 일하러 가자고 닥달이다.

일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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