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유 일기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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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항암 치료를 받으려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남편은 대학병원에 갔다.
겨울에 가장 아름다운 곳은 하늘이다.
밤에는 별빛이 하늘에 박아놓은 다이아몬드 같고,
낮에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보다
슬픈 사람들이 울면 파란 눈물을 흘릴 것 같다.
나는 자전거를 타며 그 파란 하늘에 취해 있다
차나 건물 외벽이나 화단에 둘러놓은 울타리에
부딪힐 뻔할 때가 많다
겨울 하늘을 보면 하얀 구름 마저 얼룩이나
때였다는 느낌마저 든다.
우리가 지구의 안쪽에 살지 않고 지구의 표면에
살게 되어 참 감사한 것 같다., 하나님이 지구의
안쪽을 비우고 생명체를 살게 했다면 우리에겐
천정이 있고 하늘이 없었을 것이다. 하늘이
탁 트여있어 가슴이 갑갑할 때도 바라볼 곳이
있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가슴은 참으로 갑갑하다.
나에 관한 누구의 시선이나 평판이나 소문도 믿지 않고
스스로를 믿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외로운
사투다. 시를 쓰고 시와 함께 살아가는 일이 그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고 용서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일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생각도 든다. 용서하고 따뜻한 시를
쓰면서도 더 경직되고, 앙심과 원망과 바리세인 같은 율법과
관습과 증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 또한 많다는 생각이 든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혼자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사람 또한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떤 변명도 할 마음이 없다.
열렬히 살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이해를 받건, 오해를 받건, 팔자 소관이라 생각하고
내게서 우러나는 진실을 따라 살아왔고, 살아갈 것이다.
하나님은 그 것을 알고 계신다.
올 해는 많이 아팠고, 많이 단단해졌고, 많이 고요해졌다.
아프게 비운 가지에 봄이 온다해도
나는 다시 삭도로 머리를 미는 중처럼 봄을 맞지 않을 것이다.
고사목처럼 계절에 휘둘리지 않고
쓰러지지 않고, 서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를 졌지만
바리새인과 율법자들은 근엄한 옷을 입고 그를 정죄했다
신과의 교제가 사람들간의 다툼과 분쟁과 관계 가운데서
다른 관점을 제공하고 자유와 담대함을 선물하듯,
시라는 관점을 성령처럼 품고 살아가는 자들 또한
이 생존의 아귀다툼 속에서 하늘이라는 하나의 차원을
더 가진 새들처럼 자유롭고 연연함이 적어야 할 것이다.
시는 잘 쓰면 무엇에 쓰겠는가
그의 삶 안에 시라는 시적인 공간이 없다면
시 또한 돈이나 좋은 차나 예쁜 여자처럼 하나의 욕심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나는 시에 대해 아무 공부도 한 적이 없이
어쩌다보니 시를 쓰며, 조회수 없는 시를 쓰며
시에 붙들리고 매달려 살게 되어 시를 잘 모른다.
그러나 시가 내게 준 여유 덕분에 나는 이 박복한
삶이 조여서 터지거나 매몰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내게 시란 하나의 공간이였다.
사방 팔방 딱 막혀 있는 나날 속에서 올려다 볼 수 있는
하늘 이였고, 내 땅 아니라도 어느 버려진 의자에라도 앉아
담배 한 대 필 수 있는 공터 였다. 주방 바닥에서 밀고 나와야 하는
음식물 쓰레기 통을 비우러 나온 주방 뒤란에서
내 키만한 음식물 쓰레기 통에 쓰레기를 비우고 나면 현깃증으로
하늘이 빙빙 돈다. 나는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역겹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모두 식탁에선 콧구멍을 벌렁거리게 하던 미향이였다.
또 어떤 생명체에게는 지금도 그러할 것이다. 시는 관점을 바꾼다.
더러운 것을 아름답게 만들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의 실체를 직시한다.
시를 잘 쓰고 싶었던 오랜 의도가, 시를 발견하려던 오랜 고민이
어느샌가 나의 내적인 눈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나는 음식물 쓰레기통을
비우고도, 한참을 바깥으로 트인, 식당이라는 무대의 뒤에 앉아 숨을 고른다.
그 공간에선 베트남 여자들도 자기 나라말로 통화를 하고, 숯불 피우는 아저씨도
소주를 한 잔 몰래 하고, 찬모의 잔소리에 화가 난 냉면 빼는 총각도 담배를 피운다.
두껑에 자물쇠를 채워도 냄새를 풍기는 음식물 쓰레기 통 곁에서, 버려진 박스와
빈 공병들이 쌓여있고, 씻어서 널어 놓은 비닐 봉지와 앞치마들이 널려있고
누군가는 금방 비운 음식물 바구니를 씻다 세제가 몇 방울 튕겨도 아랑곳 하지 않는
그곳, 내게 시는 그 곳이였고, 그곳이다. 좀 오래 지체하면 누군가가 달려와 손님
왔는데 그기서 뭐하냐고 채근하는,
내년에 다시 상복을 입지 말았음 좋겠다.
시어머니가 다시 건강해지셔서 내년 여름에도
텐트를 지고 계곡에 가서 어머니가 준비해 온
국수를 먹었음 좋겠다.
이제 올해는 무엇인가 달라지기를 결심하지 않는다.
올해도 작년처럼 내게 인연된 사람들과 여전히 엮여서
낡은 대바구니처럼 남은 나날들 담고 갔음 좋겠다.
나는 내가 부끄럽고 죄도 많고, 과오도 많아
세상에 미워하거나 용서치 못한 사람이 없다.
나보다 부족하고 못나고, 어리숙한 사람을 나는 만나보지 못했다.
때론 내가 부족하고 못나고 어리숙해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부러워하고, 똑똑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신 신께 감사한 마음도 생긴다.
오만과 교만이라는 옷을 내게 주시지 않으셔서
추운 날도 챙피한 날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 옷이 피부처럼 달라붙어 너무 오래 입은 옷처럼
온갖 때와 세균이 다 달라붙어 있어도 자신이 그것을 입고
있는지 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차라리 벗고 살아 자주 씻을 수 있는 내가 축복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출근 해야겠다.
잃어버린 자전거는 누군가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그의 손을 덥혀주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야박하여 선행을 베풀지 못하는데
그가 후 하여 도둑이 되어가며 나를 선하게 가르치는듯 하다.
세상에 내 것이 어디 있으랴
그도 나의 것을 훔친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을 잠시
취한 것 뿐이라 믿자.
새 자전거는 잘 넘어지지 않았음 좋겠다.
넘어져도 페달이 고양이 팔톱처럼 접히지 말았음 좋겠다.
브레이크를 잡을 때 두배로 힘을 줘야 한다고
남편이 주의를 주고 갔다.
친절하게 어느 자전거 도로로 가면 편할 것이라고 말해주고 갔다.
나는 아직도 자전거를 당장 구해준 그에게 감사해야 할지,
그로 하여금 당장 자전거를 구해주도록 하신 예수님께 감사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감사할 대상이 많은 내 삶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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