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유 일기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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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철철 녹아 내렸다.
겨울 장대비라니,
함박눈도 아니고,
겨울 장대비 속에서 뜰채와 바께스를 들고 수족관에 엎드려 있는 광어를 잡으러,
개불과 멍게를 잡으러 나갔다. 연말이라 이 젖은 날씨에도 횟집 손님이
많았다. 옷을 갈아 입을 곳도, 시간도 마땅치 않아 야쿠르트 유니폼을 입고
주류 회사 이름이 적힌 앞치마를 입고 일했다. 그 횟집은 어쩐 일인지
방수 앞치마와 장화를 지급하지 않아, 일을 마치고 나니 강물에 엎드려
다슬기를 잡았을 때처럼 신발이 잡힌 멍게처럼 걸을 때마다 물을 뿜어 내었다.
종일 자전거를 타고 걸어서 오금과 종아리가 쑤셔 왔다. 막간에 주방 찬모가
배추를 반으로 잘라 달라고 해서 한 삼십분 앉을 수가 있었다. 그 순간
어느 구석에 쳐박혀 있다가 짠하고 나타나는 목욕탕 의자는 세상의 그 어떤
왕좌나, 옥좌 보다 내 몸을 편안하게 받들어 준다. 박근혜 대통령은
용변을 보기 위해 잠깐 앉았다 일어나는 변기를 통째로 뜯어 바꾸었다고 하는데
내 엉덩이는 누가 앉았는지도 모르는, 뒤집어 보면 안쪽에 곰팡이가 까맣게 낀
목욕탕 의자도 감지덕지 해서 제발, 삼십분만 배추를 가를 수 있기를 기도 했다.
정말 사람의 존귀함에는 그만큼의 차이가 있는 것일까? 남들 다 살갗 닿는 변기에
십분이라도 살갗이 닿으면 신성을 모욕 당한 것 같은 존귀함을 그녀는 가졌고,
나는 십분만 앉아서 졸 수만 있다면 목욕탕 의자가 변기나, 물엿통이나, 밀가루
뿌려진 박스 더미 위나 어디나 찬란한 왕좌 같은 비천함을 가진 것일까?
빨리가야 한다고 남편이 난리 난리다. 아침에 한 시간만 내 맘대로 글을 쓰고 싶다
나에 대해, 내가 살았던 하루와 내가 살아야할 하루에 대해 성찰하고 기록하고
나와 세계와 대화하고 싶다.
예수님, 제 이 엄청난 욕심을 비워 주시던지,
제발 한 시간만이라도 저와 당신과 세계와 우주와 대화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시던지,
혹은 아무것도 주시지 않고,
십분만 앉을 수 있는 목욕탕 의자라도 주신다면
저는 이 모든 존귀함(엉덩이의 존귀함이거나, 목욕탕 의자의 존귀함이거나)을 창조하신
당신께 감사 할 것입니다.
설령, 흙바닥에 앉게 된다 해도 당신이 숨을 불어 넣으신 저의
생명을 존귀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것을 감사와 사랑이라 여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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