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균 일기 일기 6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회식을 했다.
내가 술을 더 많이 마시게 될까봐 일찌감치, 술에 취하기 전에 데리러 오라고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냥 그 자리에서 오는 손님에게 사려는 발효유를 팔면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가가호호 방문해서 영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머리에 쥐가 났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사려는 욕망을 불러 일으키는 것, 나는 참 잘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싫었다. 목적이란 그렇게도 나쁜것인가 묻기도 하지만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대한다는게 나쁘게 느껴진다. 목적 없는 만남이 어디 있으랴? 그냥 아무것도 사고 팔지 않더라도, 그 사람을 만나면 마냥 좋다는 것도, 마냥 좋고 싶은 목적이 있는 만남이다. 알게 모르게 어떤 유형, 어떤 성질의 것이라도 이익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사람을 혹은 사람이 개나 동물을 보는 것이다. 어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나쁘고 어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가? 그 사람을 통해서 재화를 얻어서 행복한 건 나쁘고 그 사람을 통해서 어쨌거나 행복한 건 그렇게도 순수한 것인가? 따지고 물으면 싫을 것도 없는데 난 내 웃음의 배후에 숨겨진 상품이 부끄러웠고 부끄럽다. 그런데 이곳은 자본주의 시장이다. 팔리는 것은 구실을 하는 것이다. 팔리지 않는 것은 제 구실 못하는 것이다. 돈을 왕창 벌면 대박 났다고 하며 모두들 부러워하고 그를 혹은 그 대상을 가치롭게 인식한다. 그렇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존재라고 인식한다. 그래서 너도 나도 대박 날 수 있는 방법을 조언한다. 오늘도 사장은 매출 그래프를 보여주면서 1위 2위 3위 여사님들을 앞으로 불러서 사례담을 말하게 했다. 부러워하면 진다고 했던가? 사실 부러웠다. 삼백 정도의 수입을 가진다고 했다.
예수씨, 내가 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했다고 해서 정말 비를 내려 주신 예수씨, 처녀가 시집 가지 않겠다고 하면 시집 보내지 않고, 늙은이가 늙으면 죽어야지 하면 정말 죽일 예수씨, 진짜 비를 내려주시다니, 아멘, 할렐루야! 예수쟁이들은 그렇게 감탄사를 쓰죠. 새벽 네시 삼십분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남편의 트럭이, 그렇게도 입어보고 싶었던 분홍색 레인 코트를 입었고, 조기 배달을 하며 뛰는 나보다 손수레에 실은 야쿠르트 가방이 땀을 더 많이 흘렸다. 가난의 특권인 새벽별과 달은 세상을 평등하게 하느라 얼굴을 가리고, 빌어먹을, 동호수와 상품명을 적은 배달 노트가 빗물에 젖었다. 어쨌거나 나의 순진한 애인, 예수씨, 여자가 싫어요 하는 것은 정말 싫어요가 아니라, 당신이 뭘 잘못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라는 뜻이랍니다. 당신이 창조하고도 알수 없는게 여자인가요? 제 나이에 빗속에서 170원짜리 하나 팔아 볼거라고 발을 동동 구르는거 청승 맞아서, 좋게 좋게 저 자신을 설득 시키려고 하는 말을 곧이 들으시다니. 어쨌튼 제 말을 들어주셨으니 비를 즐겼습니다. 가만히 눈치 보니까 그게 아니라고 당신도 느꼈는지, 제 눈치를 보며 보슬보슬 내리다가 스위치를 껐더군요. 아이구, 이 바보야! 괞찮다. 이왕 내린거, 그냥 비가 아니라 돈 폭설이 내리게 해달라고 기도 할 걸 그랬나보다. 좋아요.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은 다 들어 주시는 것 맞죠? 그렇다면 저에게 용기를 주세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집 문을 두드리고, 제가 이것을 팔고 있으니 당신은 이것을 사세요 라고 말할 수 있게, 그렇게 말하고도 숨 잘 쉬며, 다시 그 사람 만나도 아무렇지도 않게요. 다행히도 그가 소주 마시고 담배 피는 돈으로 야채 쥬스나 유산균 음료를 살 수 있게요. 제가 사지 않으면 뭔가 자신에게 나쁜짓을 한 것처럼 느껴지게 말할 수 있게요, 나는 신이 사람을 위해 당신이 만든 질서를 바꾸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당신이 정해놓은 법칙을 따라 일어나고 있어요. 저는 잘생긴 아버지와 토종 마늘처럼 생긴 어머니의 유전자를 공평하게 물려 받았는데, 좀 더 못생기지 않거나 좀 더 이쁘지 않은데는 또 그만한 유전적인 원인이 있겠죠. 그런데 나를 위해서 그것을 좀, 살짝 어떻게 해보시면 안될까요? 하는 것은 거의 최순실적인 범죄 행위인 것 같습니다. 지금 내게는 아무 까닭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저 먼 태초부터, 원죄라고도 불리는 어떤 과오의 누적이 지금의 나일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다만 나를 위해서 온 세상을 손봐 달라는 것은 예수씨의 성령을 받은 사람의 억지 인 것 같아요. 제가 기도하는 것은 당신이 만든 질서 안에서 제가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원인을 가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더 참된 진실 같은 것 말이죠. 제품을 팔아야한다면, 진실로 그것을 사지 않으면 그의 삶이 나빠질 수도 있는, 또한 그것을 사면 진실로 그의 삶이 좋아질 수도 있는 근거를 제가 제시할 수 있는 진실을 가지게 해달라고, 그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마땅할 것 같아요. 전 제 사랑이 미신이 되는 것이 싫어요. 불공평하고 무질서하며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광신이 되는 것이 싫어요. 당신이 정말 신이라면 어떻게 나만 잘봐줄 수 있어요?
빌어먹을, 그래, 어쩐지..시간 좋고, 보수 많고, 어떻게 이런 일이 아직도 내게 기회를 주나 싶었어요. 그래도 해보지요. 다행히도 제가 파는 제품은 신뢰도와 인지도가 높은 상품이니, 예수씨, 부디 제가 지치지 않고 노력할 수 있게 해주시옵고, 제가 진정성을 가지게 하여 주시옵고, 그 진정성을 잘 전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 기도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제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을 믿는다고 하여 무슨 특혜를 받고, 달이 기울어지고, 지구가 스물 여섯시간 자전한다면 아무도 당신을 믿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이 누구의 기도에도 응답하지 않는 것이 온 세상의 기도에 응답하는 일임을 저는 믿습니다. 믿을 수 있는 구석이란 아마도 예측할 수 있는 구석일 것입니다. 술 취해서 빨리 자야겠습니다. 깊이 달콤하게 잠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