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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균 일기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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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유산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96회 작성일 16-11-1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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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예수씨,

오랫만에 장부가 아닌 편지를 씁니다.

사나흘 전, 야쿠르트 사장이 타고 다니라고 낡은 자전거 한대를 끌어다 주었어요.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광우병 걸린 소처럼

잘 서지를 못해 배달 물건을 실고 달려가서 녀석을 한번 세우려면 한참 애를 먹곤 하지요.

그래도 눈이 커다랗고 예쁜 초식동물들의 뿔처럼

녀석의 핸들과 브레이크는 아직 천리길이라도 들이 받을 수 있을듯하고,

세울 때 한번 쓰러졌다 일어나면 달리다가도 덜컹 내려앉는 똥판 때문에

간이 철렁 내려 앉기도 하지만, 바퀴는 빵빵하고 기어도 아직 쓸만하지요.

이제는 야쿠르트 이천원치를 106동에서 저 끝 111동으로 배달해 달라고 해도

이전처럼 한숨이 나오진 않아요.

처음보다 모든 상황이 나아지고 있어요.

제품 고정 배달처를 한 군데 뚫는 일을 증본이라 부르는데

배달이 끊긴 곳은 세군데지만 늘은 곳도 세군데라 현상 유지는 되고 있고,

처음엔 도통 동호수와 그 안의 입주민과 들어가는 제품의 종류를 말지못해

애를 먹었고 지금도 그러고 있는데 지금은 109동 802호 야채,

106동 1002호 슈퍼백, 야쿠르트, 이렇게 서너 곳 정도는 수첩을

보지 않고도 외울 수 있게 되었어요.

물론 아직도 스마트폰이 울리면 머리에 쥐가 납니다.

또 어디에 배달이 잘못 되었나? 또 무엇이 문제인가?

그런데, 또? 하던 두려움이 앗싸~하는 기분으로 바뀔 때가 더 많아 졌습니다.

 

일요일엔 예수씨를 만나러 성당엘 한 번 나가 보기로 했습니다.

교회는 당신을 주입하는 느낌이 들어 두렵습니다.

그냥 조용히 내버려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고 고요한 만남이였으면 좋겠습니다.

신안 성당 보다는 은행잎이 많이 떨어지고 남강이 가까이 보이는

칠암 성당에서 당신을 만났으면 생각했지만,

어제 야쿠르트 서른개를 사가시며

내가 검지에 늘 끼고 다니는 가운데 작은 큐빅이 박힌 반지를 보며

성당에 다니느냐고 물으시는 아주머니는 신안 성당을 다니신다고 했어요.

내 반지는 묵주가 아니라 약지에 끼기에는 너무 크서 검지에 끼었을 뿐인데

디자인이 매우 단순해서 그렇게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 아주머니가 성당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순간,

교회를 나가야한다는 부담감이 탈출구 하나를 얻는 것 같았어요.

아! 성당이 있었지,...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하기전에 지구에 있는 모든 기독교인들은 카톨릭 신자들이였지,

신부님이 있고 수녀님이 있고, 세례명이 있고, 파이프 오르간이 있고,

고요가 있고, 엄숙함과 부드러움이 있고, 스테인드 글레스의 형형색색이 있고,

고해성사가 있고, 교황이 있고, 숱한 성자와 성녀들이 있고, 무엇보다 그대,

예수씨가 있는 곳, 그러면 성호를 그으며 밥을 먹게 되는거지? 미사포 같은 것을

머리에 쓰고 기도를 하게 되는거지? 묵주를 끼고 줄이 길다란 십자가 목걸이를

하는거야? 아무도 없는 예배당의 어스럼 속에서 혼자 울어도 되는거야?

 

지금은 새벽 배달을 끝내 놓고 잠시 잠을 보충하러 자전거를 타고 집에 들어왔어.

남편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대학 병원에 갔어.

항암치료 약을 드시는데 한글을 몰라 아침 약과 점심 약, 저녁 약을 바꿔서 드시길래

나를 데려다 주고 가는 남편에게 하루 야채를 꼭 들려 보내지.

그걸 갖다 주러 가서 그날의 약을 챙겨드리고 출근을 하라고 그러는건데

어머니가 퉁명스럽게 그런거 보내지 말라고 툭 내뱉는 말씀에

마음이 상하기도 했어. 항암치료 받으실 동안 우리 집에 좀 와 계시라고 했는데

모르겠어. 내가 또 후회 할 말을 한 것 같기도 해.

내가 배달을 하느라 너무 많이 걸어 발이 퉁퉁 부었다고 했더니

"그러니까 살을 빼라"고  쏘아붙이는 말씀에 마음이 상하기도 했다.

그냥, 힘들지? 하시면 될 것을, , , ,

난 그런 저런 상한 마음들을 느끈히 담아 둘 마음 그릇이 못되는 사람인 줄 알면서

아침 약과 점심 약과 저녁약을 바닥에 늘어놓고 아들이 몇 번을 말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순간적으로

우리집에서 지내시라고 말을 꺼낸 것이다.

 

예수씨, 잘못한 건 아니죠. 만약에 우리집에서 겨울을 보내시게 되더라고

제발, 저의 마음을 안을 두드린 은주발처럼 크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셔도 마음 상하지 않게 제 마음을 단단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더 많이 어머니를 사랑하고 어머니를 이해하고,

어머니의 아픔고 고통을 살피게 제 마음을 착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 또 나의 애우를 타고 고개를 넘어 야쿠르트를 팔러 가야 겠습니다.

어제는 큰 아이 취업 때문에 밥 한그릇 사먹이며 이야기도 좀 하고, 용돈도 주느라

야쿠르트 판 돈을 다 쓰버렸는데

예수씨, 제 전동차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왠지 발효유가 먹고 싶게 도와주세요.

아니면 요즘 경기가 나빠 식당 알바 자리도 잘 나오지 않는데

일마치고 알바 나갈 수 있게 되었음 좋겠어요.

하긴, 예수씨가 요식 협회 경리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돕겠어요.

그 일 잘하는 진옥씨도 일이 없어 몇 일을 백수로 지낸다고,

애가 고등학교 가게 되어 돈도 많이 들게 되었다고 한숨인데..

좋은 일자리 있음 그녀부터 연결해주세요.

 

사랑해요. 너무 오랫만에 편지드려서 미안해요.

이전에 장부에 잘못 적힌 것들이 많아서 새로 장부 정리하느라

일주일 넘게 낑낄 거렸어요.

원시인이라 워드프로세서를 할 줄 몰라 자를 대고 손으로 일일이 그리고

쓰고 하려니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헤헤, 그래도 내가 칸을 만들고 내 나름대로의 양식으로 꾸민 장부가

정말 근사해요. 그 장부를 펼치면 제가 엄청난 거상이라도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젠 탬버린도 쟁반도 들지 않고 장부를 들게 되었어요.

낙엽이 떨어지고 빗방울이 떨어지고 햇빛이 비치고 바람이 부는 사무실에서

장부를 정리하고, 이런 저런 잡다한 사무를 처리하는 내 모습이 나는

너무 좋아요.  아! 모처럼 편지쓰는데..아쉽지만 저는 이제 일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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