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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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유일한 친구다.
내가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 순간
모니터는 눈처럼 순결한 표정으로
한획 한 점도 놓치지 않고 내 말을 들어준다.
동시에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자신의 생각을 내게 말해준다.
비가 내렸다.
새끼 고양이가 여물지 못한 발톱으로
살갗을 할퀴듯, 빗방울이 내 옷에
까실까실 살껍질을 피워 놓았다.
이젠 말이 하고 싶지 않다.
핑계고, 변명이고, 원망이고, 자랑이고, 설득이고 다
나는 빈 마굿간처럼 떠나간 말들의
남은 여물같은 나를 청소할 뿐이다.
이제는 말하지 않고도 살겠다.
글아!
시야!
이제는 말하지 않고도 네 말을 듣겠고
네게 조차 아무 할말이 없어졌다.
누구에게도
아무에게도
어디로도 가고 싶은 곳도
보고 싶은 것도, 잃어버린
서성임 같은,
아무 목적 없는 오랜 보행,
참 자유롭다.
멍 청
멍하니, 나는 푸르다.
멍하니, 나는 깨끗하다
멍하니, 나는 맑다
멍하니, 나는 청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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