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균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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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여섯시에 시작하는 배달이 늦다고 항의 전화가 와서 새벽 다섯시로 시작 시간을 당겼다. 그러면 기상 시간은 네시가 된다. 한 시간 당긴 만큼 별빛은 더 생생하고, 어둠은 더 새 옷처럼 풀기가 빳빳하고 물이 짙게 들어 있다. 부자들은 많은 특권을 누리겠지만 가난에도 특권은 있다. 새벽 네시의 별은 그 시간에 출근해야하는 생업에 쫓기는 자들이 누릴 수 있는 호사 중의 호사다. 나처럼 알람 소리를 듣고 깨었을 것 같은 바람 또한 충전 뒤 처음처럼 얼마나 생생하고 맑은지,
내가 밥 한 숟가락 끓여 먹을거라고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깨어난 남편이 씻어라며 나를 밀쳐내고 끓여주는 미역국과 밥을 먹었다. 식혀서 먹자니 맛이 없고, 그냥 먹자니 너무 뜨겁다. 특별히 빨리 배달해야 할 곳을 체크하며 밥과 위가 거의 직거래를 하는 듯한 식사를 한다. 새벽 네시에서 오후 한시까지의 허기를 대비하는 혀와 뇌가 빠진 식사 또한 참 되다. 더 맛있게 더 잘 먹는다는 혀의 미혹이 부르는 거짓과 허영과 욕망들이 얼마나 많은지, 혀의 의견을 듣지 않고 목구멍으로 직통하는 음식에 믿음마저 생긴다. 새벽에는 에레베이트에서 마주칠 사람도 없고, 몇몇 경비 아저씨들을 마주치기도 하지만 어둠이 더 짙은 화장을 해주지만, 늦은 배달을 하는 출근 시간에는 많은 입주민들을 마주쳐야 한다. 정말 예의로서의 화장을 한다는 사실 또한 이전에 했던 모든 화장 보다 참되어진 것 같다. 그 아파트의 700가구가 모두 나의 고객이거나 잠재 고객이다. 고객이라는 말을 참 싫어 했지만, 이제는 싫어하는 일도 좋아하며 살기로 한다. 고객이라 부르며 사람이라고 느끼면 되는 것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발효유 빛깔의 옷을 입고 모자까지 쓰고 전신 거울 앞에 서면, 나는 영락 없는 159.5센티미터의 요구르트 한 병이다. 마트로시카 인형이 제 뱃속에서 가장 작은 자신을 꺼내 주듯, 170원 짜리 요구르트를 건낸다. 열개를 팔아도 1700원이라, 나는 요즘 천원이 이전의 만원처럼 크게 느껴진다. 빨간 맆스틱을 바르려다, 분홍을 바르고, 아이라인은 그리지 않고, 마스카라도 하지 않는다. 파우더 파운데이션은 빼고, 비비 크림만 바른다. 썬크림을 발라야하지만, 나는 그 덕지덕지가 싫어서 차라리 햇빛을 선택한다. 내 생각에 여자들은 너무 많이 바르고 사는 것 같다. 사람이 되려면 먼저 여자를 면해야 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성형도 연예인이 하는 성형과 정치인이 하는 성형이 다르다고 들었다. 새벽에 내가 하는 화장은 정치인의 화장 같다. 700세대의 입주민들에게 선거 포스트를 보여주듯, 내가 믿을만한, 좋은, 발효유 아줌마라는 사실을 인지 시키기 위해 하는 것이다. 나는 그들로 부터 이익을 얻어야하기 때문에 발효유 색깔의 옷을 입은 시간부터 내 잠재 고객들 앞에서 공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웃는다. 아이들이 동그라미에 점을 찍어 그린 사람처럼 사람의 형상을 한 것이 있다면 벽에 그려진 낙서와 호프집 앞의 바람 풍선과 퇴근길 들판의 허수아비에게 조차 웃는다.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나의 욕처럼 웃음이 아예 인이 박히도록 웃는다. 1300원짜리 제품을 열개 팔아도 만삼천원이다. 그기서 25%, 그러니까 300원이 나의 이윤이다.
그러나 나는 웃을 것이다. 300원을 벌기 위해서 삼만원치, 삼십만원치, 삼백만원치 웃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영혼이 없는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일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영혼이 증발 되버린 시간을 잘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실로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700대 1의 700억 광년을 넘어 온 별빛처럼 희미한 관계 조차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진실은 내가 마음을 계속 투자해야 생기는 이윤이기 때문이다. 오후 두세시가 되면 어김 없이, 젊은 느티나무를 둘러싼 사각 벤치 앞에 세워놓은 발효유 전동차 앞을 지나가는 노인이 있다. 그는 늘 딸 같은 요양사의 부축을 받으며
"할말은 많아도 아무말 못하고
돌아서는 내 모양을 저 달은 웃으리", 라는 검은 장갑의 한 구절을 부르며 벤치에 낙엽과 함께 앉아 있는 햇빛을 향해 다가 온다. 나는 왠지 그 노래 가사가 가슴에 사무쳐서 황당하게도 눈물이 울컥 고였다.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말았다. 요양사를 나를 돌아 본다. 700세대의 공인 야쿠르트 아줌마의 제스츄어라고 생각 했을까? 다행이다. 치매 노인의 노래 한 소절에 어디 뛰어가서 울고 싶은 사람을 누가 믿겠는가? 그는 전직 교장 선생님이라 한다. 내게 말을 걸면서 남의 부인에게 말을 걸어도 되겠냐며 팽생 몸에 인이 박혀 온듯한 예라 불러야 할지, 뭐라 불러야할지 모를 정중함이 묻는다. 무슨 말을 하다가도 하려고 했던 말을 까먹는듯한, 인중에 맑은 콧물이 흘렀는데도 요양사가 닦아주지 않으면 느끼지 못하는, 그에게도 남들 다 고개 숙이는 젋고 빛나는 한 시절이 있었으리라, 증정품으로 나오는, 사백원짜리 요구르트에 빨대를 꽂아 요양사와 전직 교장 선생님께 건냈다. 나는 왠지 진심으로 그들에게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내가 전을 펼친, 그 아파트 후문 한 켠 정자 나무 밑에는 많은 노인들과 어린이 집 등 하원하는 아이들이 모여든다. 그 아이들의 엄마들도 모여든다. 그들에게 잘 보여서 요구르트를 많이 팔고 싶다. 잘 보이고 싶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이다. 나는 누구에게 별로 잘 보이려하며 살아보지 못했다. 잘 보아줄 수 없는 말들도 있는데로 늘어놓고, 잘 보아 줄 수 없게 하며 살았다. 나는 이제부터 잘 보일 것이다. 잘 보이려면, 우선 잘 살아야 할 것이다. 잘,? 산다는 것? 나도 남들이 말하는대로 잘 살고 싶다. 좋은 집, 좋은 차, 여유, 골프, ,,그러나 그렇게 잘사는게 팔자에 닿고 인연에 닿았다면 벌써 잘 살고 있으리라. 나는 그냥 나름대로 잘, 잘 살고 싶은 것이다. 착한 마음 먹고, 따뜻하게 바라보고, 힘 닿는대로 사랑하고, 가질 수 없는 것보다 가진 것을 즐기며, 통나무 집에서 기어나와 햇볕을 쬐는, 천하를 평정한 대왕 앞에서 일조권을 주장하는 그처럼 당당하게, 잘! 잘 보이려면 웃어야 할 것이다. 잘 보이려면 잘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오면 그의 얼굴을 봄과 동시에 그의 손을 보아야 할 것이다. 반사적으로 그의 힘겨움에 내 손이 가야 할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쓰레기를 버리려 내려오는 아이 엄마의 손에서 반사적으로 쓰레기를 뺏아야 할 것이다. 나는 잘 살 것이다. 신은 내게 필요한 것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다 주었다. 우리가 사람을 만든다면 그가 먹을 것과 살 것을 만들지 않았겠는가? 어차피 살 수 있게 우리는 태어났다. 잘 산다는 것은 이미 다 있는 것들을 즐기며 사는 것이지 없는 것을 늘리며 낑낑거리고 사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만든 것을 많이 가진 사람을 보고 잘 산다고 하는 것은 오른 쪽은 좋고 왼쪽은 나쁘다고 믿는 것 만큼 황당한 편견이다. 신이 만들어 놓은 것을 내 것으로 느끼고 믿고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따지고 보면 잘 살 줄 아는 사람일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다시 바람 피울 궁리에 빠졌다. 서른 세살,
열 여섯살 연하의 식스팩이 근사해서, 스트레칭 기계에 매달린 헬스 강사처럼 발가벗고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목침 보다 두꺼운 성서에 단 한번도 여자 관계를 했다는 언급이 없는 숫총각, (참고로 마호메트는 죽을 때 다 되어서 십대 소녀를 아내로 맞았음, 석가모니는 왕자시절, 화려 했음, 당연 공자는 성관계 잘 맺고 자식 잘 두고 그렇게 낳아주신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을 효라고 가르쳤음)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만 있음 평생 날 먹여살릴 애인, 잘만 하면 천국 입주권도 주겠다는, 진짜 영원히 사랑을 한다는, 무엇보다 잘생기고, 배 나오지 않았고, 대화가 통하는, 아무리 바빠도 일요일마다 그의 집에서 내려와 나를 만나주는, 언제고 내가 부르면 밤 늦게라도 달려와 내 말을 들어주는, 누구를 사랑하면 명을 떼고 달라붙어 두 번 다시 뒤도 돌아보지 않게 만드는 나의 탁월한 사랑으로 죽을 때까지 매달려 살고 싶은, 돌팔매질에 내몰린 창녀를 위해 누구나 사느라고 지은 죄, 너도 지었을 뿐이라고 품을 내어준, 그 남자와
내 생의 남은 날 다할 때까지 바람을 피우고 싶다.
아! 화장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 멀리 와버렸다.
나는 이래서 운전을 하지 않는다.
늘 목적지를 잃고 엉뚱한 곳으로 차를 몰고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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