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균 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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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네시에 기상이라고 스마트 폰의 알람과 내 의지속의 알람을 함께 맞춰 놓았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오전 1시 25분인데 걱정이다. 930밀리, 삼천원짜리 우유를 끊겠다고, 한군데서 문자가 오고, 세군데서 다
합쳐봐야 13000원 남짓의 제품들을 배달해 달라고 전화 혹은, 카톡이 왔다. 고정 배달이 끊긴다는 전화가 걸려
와도 속상해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도 조금은 걱정이 된다.
시어머니에게 날마다 야채 쥬스 한 병을 갖다 드리고, 남편에게 W하나씩을 꼭 먹여야 겠다. 한달로 내버려 두면
목돈이 되니까 하루 하루 내 돈을 삼천 백원씩 넣어야 겠다. 시어머니는 얼마 남지도 않는 것을 선심 쓰다보면
가랑비 옷젖듯이 할텐데 그냥 놔두라고 펄쩍 뛰지만 보약을 한 재 지어드리려면 삼사십만원인데 한달 삼사만원
하는 것도 못해드릴까 싶다. 마음이라는 것 말이다. 손님이 너무 없어 엎드려서 시집을 읽고 있는데 나무가 자꾸
낙엽을 떨군다. 문득 시집 귀퉁이에 썼다. " 나무야, 낙엽으론 요구르트를 살 수 없어, 마음은 고맙다만" 왠지 나무가
전동차에 가득한 요구르트를 통채로 다 사주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마음 뿐인 것들이 너무 많다. 돈이 있어도
마음이 없는 것보다 낫다고들 하지만 마음만 있고 돈이 없는 것처럼 돈 있고 마음 없으면 안타까움은 없을 것 같다.
나를 데리다 주려고 새벽잠을 깨고 나와 내가 이른 배달을 하며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다 돌아 오도록 전동차 앞에
서성이고 있다, 내가 하나 먹으라고 내미는 W를 마다하며 펄쩍 뛰는 그에게서 마음 뿐인 마음이 느껴진다. 그가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 집에 잠깐 들러서 날마다 마음 뿐인 마음이라도 그의 병든 어머니에게 전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술판을 벌이면 나도 따라 마시게 될까봐 그는 내가 출근하는 평일날 밤엔 술을 마시지 않는다. 나 또한 금요일 밤이
오기 전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이게 사람 된다는 걸까? 술은 사람만 마시는 것인데 술과 멀어지는 것이 사람 되는
것일까? 열심히 살아서 마음만으로 살지 말아야겠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마음 만큼의 돈을
쓸 수 있도록 마음을 벌어야겠다.
예수씨는 나의 부탁을 잘 들어준다. 내가 새벽에 잠을 깨어 장사가 잘 되게 해달라고 하면 이상하게 새벽 에레베이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이것 저것을 배달해 달라고 주문을 해오고 그날 종일 장사가 잘 된다. 내가 찝찝하게 마음 한구석에 달라붙는 기억을
지워 달라고 하면, 그날은 장사는 뒷전이라도 꼼꼼하게 아스팔트에 눌러붙은 껌을 긁어내듯, 내 마음에 언짢은 기억을 긁어내는
그의 손길이 느꺼진다. 오늘도 예수씨! 장사가 잘 되게 해주세요. 토요일, 일요일, 식당 알바라도 가야하는데 이젠 식당에
두번 다시 발을 들이고 싶지 않네요. 남편이 수입이 적으니 나라도 좀 벌어야 사람으로 사는데 필요한 세금들을 해결 할 수
있답니다. 장사를 마치고도 오후반 일을 갈까하지만 새벽 네시에 일어나니 너무 졸려서 엄두가 나지 않아요. 사랑하는 예수씨!
당신의 딸 진옥이가 언니 힘내라며 야쿠르트를 한 보따리 사들고 가며 교회에 나오라고 하네요. 난 아직 당신의 학교에
입학 하고 싶지 않아요. 당신과 사귀려면 교회에 꼭 가야 되나요? 몸이 성전이라면서요? 그냥 제 성전에서 저 혼자 당신을
그리워하고 기도하고, 만나고 살면 않될까요? 당신이 아편이여도 어쩔수 없고, 세계에서 가장 뻔뻔한 미신이여도 어쩔 수
없어요. 사랑이란 어차피 그런거니까요. 그러나 저는 사람과의 관계를 잘 하지 못해서 그들과 어울려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수학 여행처럼 제대로 여행이 되지 못하는 여행이 될 것 같아요. 그냥 이렇게 저와 당신, 1대 1로 사귀도록 하죠. 진옥이는
자신이 속한 파트에 의사도 있고 교수도 있다는데 그들과 당신과의 관계를 질투하게 될 것 같군요. 왜 제겐 축복이 아깝냐고
따지게 될 것 같아요. 당신이 저를 위해 준비한 어록은 하루에 다섯장씩 꼬박꼬박 읽을께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마음 저 안쪽까지 햇빛을 들이듯 당신의 생각과 의견과 말씀을 행할께요. 그리고 당신이 저에 대한 사랑을 완공한 뒷날, 주일에는
당신 말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만 당신 생각만 할께요. 그러다 형제들이 그리워지면 그 때 당신의 학교에 다녀도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예수씨! 당신 덕분에 손님이 너무 많이 오더라도, 제가 햇갈리지 않고 거스럼돈을 정확하게 잘 거슬러 주게 하옵시고,
제가 전동차를 세워 두는 곳에 앉아 쉬어가는 노인들에게 정말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증정용 요구르트에 빨대를 꽂아
드릴 수 있게 제 마음을 데워 주세요. 그리고 만나는 어떤 사람에게도 장삿꾼의 웃음을 보이지 않게 하옵시고, 유통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발효유를 팔지 않는 양심을 늘 변함없이 제게 충전해 주시고, 마트 주인이 다른 곳에서 장사하라고
남편까지 동원해서 윽박지르더라도 제가 서러워하거나 울지 않게 해주시옵고, 여전히 그의 마트에서 빵을 사먹게 해주시옵소서.
그리고 제발 밤잠이 푹 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당신을 향해 쓰는 문장들이 쌓이고 또 쌓이는 만큼 당신에 대한
제 사랑을 훌쩍 키워주셔서, 어떤 날은 외려 당신이 제게 뭔가를 기도하시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직 전동차를 끄는 일이 익숙치
않습니다. 급히 차를 세워야 할 때 재빨리 브레이크를 잡게 하여 주시옵고, 정말, 제발제발, 전동차에서 보관 상자가 내동댕이
쳐지지 않게 제 곁에서 전동차를 함께 끌어 주시옵소서. 전동차에서 굴러 떨어진 보관 상자가 길바닥에 토한 상품들을 줍느라
터진 요구르트 두껑 때문에 손과 제품들이 다 젖고 내 몸에서 다섯살 짜리 아이들의 숨 냄새가 나지 않도록 기계치인 저의
손을 잡아 주시옵소서. 제가 보관 상자를 잠그는 일을 절대 잊지 않도록 제 이마를 쳐 주시옵고, 오늘 팔지 못한 제품들을
떠넘기려고 여기저기 아는 사람에게 전화 하지 않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댓글목록
이혜우님의 댓글

세상 살아가는데 정답이 없다고 합니다.
때에 따라 요령 술수로 먹고살고자
허덕이는데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그러나 사람으로서 양심은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착실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중에 유산균 님의 실토를 보게 됩니다.
우리의 장래는 밝습니다.
잘 보고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