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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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잔만 마시면 잠들 것 같은 술을 외면하고 밤을 보낸 아침이다.
술을 마시는 자의 내면에는 술을 부르는 목소리들만 가득하여
바람이 부는 것도 바람이 불지 않는 것도
눈을 뜬 것도 눈을 감은 것도 핑계가 된다.
다만 바람이 분 날은 좀 더 폭음을 하고
바람이 불지 않은 날은 좀 과음을 하고
눈을 뜬 날은 절주를 눈을 감아버린 날은 질주를 하고
그 다음날 아침은 술 기운을 빌려 세상에서 달아났던 만큼
제 자리로 돌아오느라 빙글대는 시간을 붙들고 진을 뺀다.
늘 술김에 잠이 들었다.
부부싸움이라도 한듯 술과 내가 서로 눈치를 보며 내외를 한 밤이 참 길었다.
아침이 되어 먼저 출근해버린 아내처럼 술 생각이 멀어지고
나는 달력에 동그라미를 친다.
여자들이 달력에 사랑 한 날을, 혹은 사랑하지 않은 날을 표시 해두듯
영영 끝내면 술이 아플 것이다.
한 발, 한 발, 하루 하루 여자를 사랑하여 여자를 아프게 하지 않는
연애의 고수처럼 술이 먼저 정떨어지게 만들며
조금씩 야금야금! 술이여! 안녕!
사랑한다. 내 필생의 애인, 내가 첫 여자보다 담배보다 먼저
알았던, 내 피를 따라 돌며 나를 덥히고 나를 취하게 해주었던
투명하고 해맑은, 밖에선 시원하고
안에선 화끈한 나의 연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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