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6年 09月 24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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鵲巢日記 16年 09月 24日
맑았다.
오전, 토요 커피 문화 강좌를 개최했다. 새로 오신 분이 다섯 분 있었다. 카페 개업하는데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체인점 개설비용은 어떻게 하는지 질문 있었다. 13년 전이었던가! 그때도 카페가 참 많았다만, 커피 하는 사람으로 기우는 자판기 사업을 접고 차렸던 카페였다. 다섯 평으로 시작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카페가 많은 건 사실이다. 조금 다른 것은 카페가 들어갈 곳 같지 않은 곳도 요즘은 들어간다는 게다. 경제활동의 첫 시작 그러니까, 사회에 첫발은 카페에서 시작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만큼 많이 차리는 것이 카페다. 사람은 비전을 잃은 건지 아니면 정말 비전을 본 것인지 누구나 한 번쯤 해보는 사업이 카페가 되었다. 오늘도 꽤 많은 분이 오셨다. 그간 커피 경력을 짧게 소개했다. 로스팅 수업했다. 오 선생께서 수고했다.
정문 기획 사장께서 전화다. 전에 맏이와 함께 스페인 여행 다닌다며 소식이 온 이후 첫 전화다. 점심 함께했다. 사동에 무슨 만둣집 가게에 갔다. 체인점이다. 약 15평에서 20평 정도 되는 가게다. 만두는 중국 음식 아닌가! 내부 공간미는 일본풍이다. 물론 일본을 다녀온 경험은 없지만, 분위기가 그렇다. 만두는 종류가 다양하다. 두 가지 정도 주문해서 먹었는데 맛이 독특했다. 메뉴 하나에 어떤 것은 만두 2개가 담긴 것도 있고 어느 것은 8개 든 것도 있다. 2개 든 것은 그 크기가 어린애들 손바닥만 하다. 모두 맛이 꽤 있어 둘째 생각에 만두 2인분 주문했다. 가만 생각하니 사동 조감도에 가까운 곳이라 직원 생각해서 2인분 더 주문했다. 둘째는 만두를 꽤 좋아하는데 일주일 만두 없이 보내는 날이 없을 정도다.
오후, 울진 더치 공장 운영하신 이 사장께서 본점에 오셨다. 오늘 볶은 커피 30봉을 차에 실었다. 이 사장께서 내린 더치를 맛보았다. 우리가 내린 더치도 함께 맛을 비교하며 보았는데 큰 차이는 없었다. 우리는 한 병씩 정성껏 내린다지만, 이 사장은 대량으로 뽑아내는 설비를 갖추고 있으니 훨씬 경제적이었다. 커피 한 봉에 300mL 용량 더치가 약 16병 뽑는다고 했다. 우리는 130g에 300mL 한 병을 뽑으니 말이다.
사동, 옥곡, 청도에 커피 배송 다녀왔다. 옥곡은 마침 점장께서 가게를 보고 있었다. 현관문 앞에 손님이 쉽게 드나들 수 있게 방부목으로 받침대 해 놓은 일 있다. 이것도 8년의 세월이 지나니 낡고 후지며 어느 곳은 움푹 빠질 듯 삭기까지 하여 목수께 견적을 의뢰했다며 얘기한다. 문 앞에 깐 방부목 받침대를 수선하는데 약 100여만 원 들어간다고 한다. 가게를 보수하며 이미지를 바꿀 필요는 언제부터 가져야 했지만, 그간 돈이 없어 하지 못했다. 이제야 고친다니 반가운 말이다.
사동에 들렸을 때다. 점장도 있었고 함께 일하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아주머니는 방금 볶은 커피를 신문을 펼쳐놓고 쏟은 다음 부채로 부치고 있었다. 연기가 모락모락 나며 식어간다. 콩을 자세히 보니 볶은 시점은 잘 맞추었으나 들어내고 식힐 때 타는 과정은 미처 생각지 못한 것 같다. 그러니까 조금 늦게 뺀 것 같다. 조금 진하게 보였다. 드립 한두 잔 내리기에는 결코 부족한 양은 아니다. 조그마한 밥솥 같은 로스터로 볶았다.
저녁에 조감도에서 오 선생과 대화를 나누었다. 본점에 일하는 직원 한 분이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내용이다. 집 안에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자세한 것은 이야기하지 않아 모르는 일이다만, 새로운 사람을 구했으면 하고 보고했다. 2월쯤에 들어왔으니 만 8개월 일했다. 새로운 사람으로 어떤 사람이 좋을지 서로 의논을 가졌다. 오 선생은 여러 사람을 거론했지만, 그래도 젊은 사람이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했으면 하고 조언했다. 오 선생은 이 씨가 그간 일을 참 잘해주었다며 한마디 했다. 이 씨는 11년 3월 14일에 카페리코 교육등록을 하였다. 약 두 달간 커피 교육을 받았다. 그간 중앙병원에서도 또 다른 분점에서도 일한 바 있다. 중앙병원 점장께서도 이 씨를 꽤 칭찬한 바 있다.
늦은 저녁에 ‘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었다.’ 책 읽었다.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절 국제 정세를 읽었다. 중국은 이때 오호 16국 시대를 맞았는데 북위에 사관이었던 최홍이 쓴 ‘16국춘추十六國春秋’로 이 시대를 대변한다. 사실은 십육국 이상이었다. 그만큼 중국은 혼란의 시대를 맞았다. 이러한 시대에 장수왕은 주변국에 대한 사신을 파견하며 국제정세를 알려고 노력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구려는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절에 최대의 전성기를 맞았다. 정치가 안정되니 국민의 생활이 안정되었으며 국민 생활의 안정은 곧 국부를 창출하여 이웃 나라도 넘보지 못할 만큼 강력한 힘을 가졌다. 대학의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라는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이겠다.
본점 11시 34분에 마감했다. 경모가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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