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6年 09月 11日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鵲巢日記 16年 09月 11日
대체로 맑았다. 저녁 늦게 비가 왔다.
조감도에 전시해놓은 기계를 점검했다. 샤워망과 고무가스겟을 교체하고 스팀노즐을 확인했다. 추석쯤에 후배 이 씨 쪽 사람이 가져간다고 했으니 손보았다.
시지 우드에 다녀왔다. 여기도 기계 점검했다. 사장은 어제 늦게 잤는지 오늘 아침은 먹지도 못하고 가게 나와 일하고 있었다. 점장께서 뒤늦게 나오시어 김밥 말 테니까 함께 먹자고 했다. 아침 먹은지라 사양했다. 아이스 커피 한 잔 청했다. 커피 거름 역할인 샤워망을 바꾸었으니 커피 맛도 확인할 겸 한 잔 청해 마셨다.
오후, 울진에서 전화가 왔다. 커피 지금 당장 필요하다며 20봉 있느냐고 했다. 4시쯤 전화 왔었는데 아무리 급해도 지금 어떻게 할 수 없는 처지라 내일 오시라 했다.
본점 11시 30분에 마감했다. 경모는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오래간만에 부산 다녀오셨다고 했다. 자갈치시장에서 고등어를 사셨다고 한다. 경모는 고기를 좋아한다. 전에 회식 때, 돼지고기를 아주 잘 먹는 모습을 보았다. 경모야 너는 육류를 좋아하니? 어류를 좋아하니, 했더니 아무래도 육류죠, 한다.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특히 소고기는 구워서 먹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우리나라에 소고기를 제대로 구워 먹는 집안이 과연 몇 집이나 되겠니? 나도 40여 년 살았지만, 소고기 구워 먹었던 기억이 별로 없구나! 경모야.
나라를 여닫은 임금, 태조와 고종 편을 읽었다. 태조 편에서는 이성계의 뿌리에 관한 이야기 나온다. 이성계 4대조인 고조부 이안사(목조)는 전주에 있을 때 관기를 두고 산성별감과 다툼이 있자 170호를 거느리고 삼척으로 이주했다가 다시 두만강 하류를 거슬러 올라가 경흥 동쪽 30리의 오동(중국 연길)으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원나라 장수 산길의 지원을 받아 관직을 얻게 되었는데 이것이 개국의 터전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물론 태조실록에 나와 있는 말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엎기도 한다는 말이 있다. 고려 말의 정치적 상황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권세가들이 모두 빼앗고 노비로 삼았다는 얘기가 나오듯 불법적 사전확장이 큰 문제였다. 농업국에서 자영농의 몰락은 망국의 조짐이었다. 이러한 농지부족으로 아마, 요동 정벌론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정도전은 이때 토지개혁을 단행하여 과전법을 시행한다. 우왕의 요동 정벌을 반대한 이성계, 그가 남긴 한시가 있어 공부삼아 아래에 적는다.
등백운봉 登白雲峰
인수반라상벽봉 引手攀蘿上碧峰
일암고와백운중 一庵高臥白雲中
약장안계위오토 若將眼界爲吾土
초월강남기불용 楚越江南豈不容.
백운봉 오르며
백운봉白雲峰은 서울 북쪽 삼각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다. 반攀은 무엇을 붙잡고 오르는 것을 말한다. 라蘿는 담쟁이덩굴이다. 벽碧은 푸르다는 뜻으로 옥玉에 많이 쓴다. 1연을 해석하면, 담쟁이덩굴 휘어잡아 푸른 봉우리 오르니
암庵은 암자, 초막을 말한다. 한 암자 하얀 구름 속에 높게 누웠구나!
안계眼界는 눈으로 바라보는 범위를 말하는 것으로 보이는 세계를 말한다. 왕조시대니까 내가 본 땅의 경계, 지평선까지다. 눈에 보이는 지평선까지 내 땅이 되려면
초나라 월나라 강남도 어찌 수용하지 않을까!
이 시 한편으로 태조 이성계의 마음을 볼 수 있음이다. 장수의 기개가 담긴 시로 새 나라를 세울 야심뿐만 아니라 대륙을 넘어 중원까지 차지하려는 웅지를 품었다고 볼 수 있다. 실지, 이성계 집안은 본질적으로 대륙에 아주 친숙해서 요동정벌을 한시一時도 잊은 적 없었다.
고종 편을 읽을 때는 참담하기 그지없다. 고종의 우유부단한 성격은 결국 망국의 군주가 되었다. 고종은 수신修身 실패가 제가齊家 실패로 이어 당연한 결과를 초래했다. 황현의 매천야록에 의하면 고종은 등불을 환히 밝히고 새벽까지 놀다가 오전 4~7시경이 되어야 비로소 잠을 잤다고 한다. 둘째 고종은 시대 변화를 거부했다. 고종이 어린 나이 11세 때 즉위해서 처음 내린 명령이 자신에게 군밤을 주지 않은 계동 군밤 장수를 처형하라는 것이었다고 전하는데 정환덕의 남가몽에 있는 말이다. 이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나, 어떻든 고종을 잘 대변한 말은 사실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같은 입헌 정치체제를 수립했지만, 고종은 개화를 추진하다가 입헌 정치체제가 전제왕권을 조금이라도 저해하면 하루아침에 돌변해 모두 무너뜨리기 바빴다. 갑신정변으로 급진 개화파를 죽이고, 아관파천으로 온건 개화파를 죽였다. 외국군을 끌어들여 동학 농민군을 죽였다. 왕권 강화에 병적으로 집착하면서도 고종은 왕권 강화에 가장 큰 걸림돌인 노론을 자처했다. 경술국치를 단행한 이완용에게 베푼 처사는 이를 잘 대변한다. 한마디로 고종 정치의 특징은 편의적인 정치 행태를 반복했다. 대세에 순응하는 척하다 틈을 보아 뒤집는 것이었다. 결국, 고종은 정권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극진히 인정을 베푼 이완용과 이기용이 숙직한 그 날 밤, 서거했다. 1919년 1월 20일이다.
이것으로 이덕일 선생께서 쓰신 조선왕을 말하다 1권과 2권 책거리한다. 내일부터는 사마천 평전을 읽겠다.
댓글목록
오영록님의 댓글

중부는 소나기가 며칠째 오락가락하네요..//
낼 모래면 벌써 추석이네요. 참 빠르기도 하네요.
잘 감상하고 내일부터는 사마천을 함께 읽겠군요.
명절 다복하게 잘 보내시구요..
鵲巢님의 댓글

여태껏 지진을 느껴 본 일이 없었습니다.
올해는 자주 느낍니다. 전에도 한번 땅 흔들리는 것을 느꼈는데
오늘은 두 번 흔들렸고 자정에는 땅 밑에서 소리까지 들리는 듯했습니다.
원룸 단지에 사는 많은 사람이 뛰쳐나와 웅성웅성 거리는 모습도 보았네요.....
역시 천재지변은 사람이 감당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좀 더 조심하고 살펴야겠습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