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6年 08月 25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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鵲巢日記 16年 08月 25日
비도 오지 않았는데 날이 참 맑았다.
나는 이덕일 선생께서 쓰신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를 읽고 참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조직인 조선사편수회의 남은 세력이 아직도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일본은 식민사관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시켰다. 이를 따르는 학자가 적지 않다는 것에 또 놀라울 따름이다. 일본의 고대사는 6세기 말이나 7세기 초쯤에 이르러서야 그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그러니까 백제가 멸망할 시쯤 일본은 꽤 많은 전투력으로 백제 부흥운동에 참여했다. 이것도 백제왕실과 혈연적인 관계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백제가 가장 왕성했던 시기는 언제인가? 말하자면, 근초고왕 시기라는 것은 우리나라 중학교만 졸업해도 다 아는 사실이다. 이때가 4세기 무렵이다. 근초고왕은 이미 요서지방과 일본의 왜까지 백제라는 한 국가를 뛰어넘어 국가 자체를 다국적 기업으로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요서지방 진출에 관한 내용은 중국 송서와 양서에도 나와 있는 사실이다. 이때 일본은 그야말로 부족국가나 다름없었다. 몇몇 부락으로 이룬 사회는 청동기 재질의 제기 하나도 못 만든 그야말로 원시부족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니 일본 학자는 우리의 역사를 보고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백제의 국가 성립은 삼기사기에 나와 있는 시기보다 약 200년이나 더 앞당겨야 하지 않겠나 하는 것이 역사를 제대로 연구한 사람의 목소리다. 왜냐하면, 고구려 시조 추모왕(동명성왕)의 국가 성립도 마찬가지지만, 부여에서 탈출한 시기와 국제정세를 미뤄보아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니 고대국가 성립은 이미 국가를 성립한 백제의 시조 온조왕 때 모두 이루어졌다고 나는 본다. 일본은 왜 백제 역사를 민감하게 보는가? 지금도 일본 오사카 지방에 가면 백제역과 백제 초등학교를 보듯이 백제라는 말을 흔히 볼 수 있으며 수백 개가 넘는 신사와 상당수의 비석, 교량, 고분 등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모두 백제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니 일제강점기 때 정치가나 어설픈 민족주의 발동으로 전쟁을 도모했던 극우파 세력은 이를 인정하기에는 뇌 용량이 부족했다. 그러니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라며 떠들어대며 식민지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조선사를 왜곡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듣도보도 못한 임나라는 말이 나왔고 임나일본부설이라는 새로운 역사 지도가 나왔다. 근데 이것을 또 믿는 식민사관의 잔재가 있으니 아예 가야를 임나 가야로 고쳐 논문이나 역사정보를 스스로 왜곡시키는 우리나라 학자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 학자는 도대체 무엇을 공부했단 말인가! 단재 신채호가 살아 있었더라면 책을 들고 모서리로 한 대 쥐어박아도 시원찮았을 것이다. 제발 공부 좀 하라고 말이다. 소위 학자라는 사람이 무엇을 보고 공부했단 말인가! 한서에 나와 있는 어떤 토시 하나 달고 이상한 소리만 지껄이는 즉 우리나라 사람이 한자를 모르니 이상한 소리로 지껄여 놓은 것을 파헤쳐보지도 않고 스승의 발자취니 단순 믿고 저질러 놓은 식민사관의 잔재들 아닌가 말이다. 참 안타깝다.
역사는 한마디로 말해서 거울이다. 자기 얼굴을 이리 개차반스럽게 만들어 놓는 저런 친일 식민사관으로 무장한 역사학자가 아직도 우리나라 대학 곳곳에 역사를 다루는 주요기관에 뿌리 깊게 박혀있으니 어찌 걱정이 안 되겠는가! 이들은 우리의 교단에서 잘못된 역사를 가르칠 것이다. 아! 참으로 가슴이 먹먹하다.
이덕일 선생께서 쓰신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 뒷부분이다. 독도에 관한 문제를 얘기하고 있다. 동북아 역사재단의 구성원으로서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의 역사를 바르게 알고 독도에 관한 문제를 올바르게 얘기한다면 독도 소유권 문제가 왜 일어나겠는가! 배 모모 씨는 독도가 우리 것인가 하는 어처구니없는 논문으로 일관하는데 이를 조목조목 설명하는 이덕일 선생의 논평을 읽게 됐다. 독도는 신라 지증왕 때 우산국 정벌로 줄곧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우리의 영토다. 물론 삼국사기에만 나오는 기록도 아니다. 이후, 조선왕조실록이나 조선 후기 여러 실학자에 의해서도 독도를 언급한 많은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배 모모 씨는 일본 측 주장을 변론한다. 이러고도 동북아 역사재단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대변하는 학자라니 참, 무슨 말이 나오겠는가! 말문이 막히고 통탄할 일이다. 역사학계에 식민사관이 아주 깊숙이 뿌리박혔다는 얘기만 들었지, 이 책 한 권을 읽고 상황이 어떠한 것인지 알 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해방 후, 친일세력을 제거하지 못한 것도 있으며 이러한 학자를 뿌리째 제거하지 못한 우리 민중의 잘못도 크다.
오전, 중앙병원과 대구 동원이 가게에 다녀왔다. 커피 배송했다. 동원이 가게에서 정석이 보았다. 정석이는 수염을 깎지 않은 지 며칠 돼 보였다. 모자까지 써 예술가 같기도 했다. 아마 커피를 하니까 이러한 모양새도 한번 즐겨볼 만하겠다. 마침 나의 책 ‘커피 좀 사줘’를 읽고 있었나 보다. 책이 마치 드라마 보는 것처럼 재미있다고 한마디 해주었다.
오후, 조감도에 잠시 있다가 미용실에 다녀왔다. 이발했다. 종일 이덕일 선생께서 쓰신 책 한 권이 잊히지 않는다. 해방이 되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정말 해방이 되었는가! 지금도 기득권층은 올바른 생각으로 이 나라를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식민사관으로 펼친 정치논리는 그냥 이루어지는 것도 아님을 볼 수 있었다. 나라 팔아먹는 사람은 국세로 하고 애국은 자비로 한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자정쯤 밀양에서 상현 군이 왔다. 영업 마감하고 곧장 왔나 보다. 임당 막창집에서 고추장불고기 한 접시 놓고 식사 함께했다. 커피 챙겨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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