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6年 07月 28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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鵲巢日記 16年 07月 28日
꽤 맑은 날씨였다. 낮 기온이 무려 35도까지 치솟았다. 완전 땡볕 더위였다.
오전, 버섯 명가에 커피 배송했다. 10시 좀 넘은 시각이었는데 주방은 점심 맞을 준비하느라 바쁘고 사장은 잠시 어디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다.
오전, 서울 생두 수입상께 브라질과 케냐 생두를 주문했다. 잔돈이 필요해서 은행에 잠시 다녀왔다. 마침 전무님께서 계시기에 차 한 잔 마셨다. 요즘 서로가 휴가 안 가느냐며 얘기하는 것이 인사가 되었다. 다시 본부에 들어와 어제 속리산에서 가져온 기계를 뜯고 보았다. 물을 당기며 열어주는 밸브에 이상 있었다. 코일이 밸브를 감싸고 있어야 하는데 이 기계는 코일이 떨어져 옆에 덜렁거리며 따로 놀고 있다. 분명 누가 분해한 흔적인데, 관련 재료상께 전화하니 결코 뜯은 적 없다고 하니 아이러니하다. 코일을 다시 원상태로 복귀하고 나사를 조였다. 다시 물 넣고 전기 넣으니 기계가 작동한다. 큰 고장이 아니라서 천만 다행한 일이다.
오후, 중앙병원에 다녀왔다. 지난주, 몸이 별로 좋지 않아 혈액과 소변검사를 했다. 담당 의사 선생은 모두 정상이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전립선이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생각했지만, 의사 선생은 아무 이상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한 달 치 약으로 처방했다. 선생은 한 달 먹어보라고 했다.
사동 조감도 1층 어느 구석진 자리에 앉아 책 읽고 있었는데 2층에서 무슨 잔 같기도 하고 유리 같기도 한, 엄체 큰 물체 하나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직원 2명이 급히 뛰어올라갔다. 나도 덩달아 올라갔는데 태윤 씨 말로는 아무 일 아닌 거로 얘기한다. 한참 뒤, 한 어머니께서 아들이 화장실에 변기 뚜껑을 떨어뜨려 깨뜨려다며 얘기하시는 것 아닌가! 변기 뚜껑을 사다 줄 테니 매입처를 물으시는데 처음 공사했던 한성에 전화했다가 한성은 공구골목 **타일에 가보라고 했다가 손님은 **타일에 갔는데 여기서 산 물건이 아니라고 해서 다시 한성에 전화하니 모모 상사로 입 바꾸어 얘기하는데 손님께는 정말 미안한 일이 되었다. 결국, 어느 집도 아니었다. 한성은 초기 공사 때 장 사장과 함께 한 일이라 이는 장 사장이 아는 일이라 했다. 장 사장은 변기 뚜껑만 팔지는 않을텐데 하며 얼버무렸다. 참, 변기를 만드는 곳도 여러 군데고 이 변기마저도 통일된 크기로 만들지 않으니 여러모로 성가신 일이었다. 결국, 변기 뚜껑은 깨진 채 걸쳐 둔 상황이고 손님은 어찌 되었는지 그 뒤로 소식은 없었다.
저녁, 조감도에서 먹었다. 점심을 둘째와 집에서 라면 끓여 먹었다. 밥이 없었기에 마땅히 집에서는 먹을 수 있는 여건이 못 되었다. 태윤 군, 부건이, 알바, 그리고 나, 함께 밥숟가락 들었다. 굵은 멸치 볶음이 있었는데 나는 무슨 고기를 먹듯 한 젓가락씩 집었다. 조그마한 유리반찬통에 든 멸치, 무언가 큰 영양가라도 있을 법한 멸치, 허기를 면할 수 있을 것 같은 멸치, 야무닥지게 씹었다. 저녁이었다.
단재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에서 말한 비류와 온조에 관해서 잘못 서술해 놓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니까 비류와 온조는 고구려 추모왕의 아들이 아니라 소서노의 전 남편인 우태의 아들이라고 했다. 우태는 부여씨이므로 비류와 온조도 성은 부여가 된다. 여기서 부는 하나의 존칭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면 성은 여 씨가 된다. 추모왕은 부여에서 탈출하여 국가를 세울 때 소서노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러자 나중에 진짜 아들, 유류와 아내인 예 씨가 돌아오자 소서노의 아들인 비류와 온조의 거처가 문제 되었던 것이다. 소서노는 추모왕에게 아뢰고 남하하여 새 국가를 창설한 것이다. 이것이 백제의 시작이다.
사서만 보더라도 고구려와 백제는 분명히 부여에서 출발한다. 부여는 북방 유목민족으로 강성한 국가를 만들었다. 부여에 관한 정확한 사료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단재는 백제의 도읍지를 위례성이라고 했다. 이 위례성의 위치가 불분명하다. 단재는 위례성을 한성 아래쯤으로 적고 있는 듯하다. ‘하남 위례성은 북으로는 한강을 등지고 남으로는 풍부한 못을 안고 동으로는 높은 산을 끼고 서로는 큰 바다를 둔 훌륭한 요새이므로, 이곳을 버리고 다른 데 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적고 있다. 역사 관련 프로그램을 본 적 있어 잠깐 적어놓는다.
백제의 수도는 한성 그 어디쯤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니까, 삼국유사에는 비류가 떠났다던 미추홀은 인주요 온조의 위례는 오늘의 직산이라고 했다. 직산은 천안에 소재한다. 백제의 국호는 처음은 백제(伯濟)였다가 십제(十濟)로 바뀌고 백제(百濟)가 되었다. 백제(伯濟)는 맏 백자로 으뜸이라는 뜻이 있는데 바다를 내다볼 수 있는 으뜸인 나루터를 말한다. 백제는 원래 해상강국이었다. 뱃길을 이용해 중국과 일본을 통한 무역강대국이었다는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십제(十濟)란 열 명의 제후가 백제 건국을 도왔다는 데서 나왔다. 십제공신은 천안 전씨, 직산 조씨, 마씨 등이다. 또 하나의 설이 더 있다. 으뜸인 나루터가 열 곳이 된다는 설도 있다. 그러니까 백제가 소재한 땅만 땅이 아니라, 요서라든가 중국 산둥반도라든가 왜에도 백제 방이라 할 수 있는 백제국이 있었기에 이를 모두 합하여 열 군데의 으뜸 나루터를 가진 국가 십제라고도 한다. 이 십제가 백제로 넓혀 원대한 해상강국으로 발전하게 됐다.
저녁 늦게, 계양동에서 사업하는 아래 들렀던, 이 사장 다녀갔다. 커피 한 봉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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