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6年 08月 05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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鵲巢日記 16年 08月 05日
맑았다.
한학촌과 카페 다이노에 커피 배송했다. 서른두 살은 아직 어린 듯하다.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李箱은 스물일곱에 요절했지만, 지금 사십 대가 바라볼 수 있을 만치 지략智略과 타산打算이 있었다. 요즘은 나이만 먹었지, 어린 것 같다. 눈에 보이는 이익을 쫓다 보면 멀리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은 갖기 어렵다. 요즘은 정보전달 속도가 더욱 이를 흐리게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을 쫓지 않을 수 없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나’라는 개념은 여기서 없어진다. 정말 나를 찾으려고 한다면, 책을 읽어야 한다. 읽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에는 어렵다. 이것은 주체적 마음을 가지라는 뜻에서다.
커피 시장은 분명히 커졌다. 이 커진 시장을 내가 어떻게 캐느냐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렸다. 밭에 나가 김을 매고 묘목을 심고 애지중지 관리하여야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어떤 밭을 만들 것이며 어떤 씨앗을 뿌릴 것인가는 카페를 경영하는 사람의 몫이다. 가만히 오는 손님만 받는다고 해서 영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을 어떻게 상대에 알릴 것이냐가 중요하다. 신을 믿는 목사도 하느님의 사랑을 전도한다. 커피를 믿는 바리스타가 흠뻑 취하는 이 커피 사랑을 전도하지 않으면 누가 전도하며 또 믿겠는가! 시작은 누구나 미약하다. 미약한 힘으로 조금씩 경험 삼아 해보는 그 어떤 일도 나중은 중요한 바탕이 된다. 시장은 언제나 도전하는 사람에게 그 무대를 제공한다.
오후, 백천에서 오신 분 있었다. 모모 카페 가맹점(우리 카페가 아니다.)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월 500 매출은 올렸다. 올해 들어 이 매출도 급격히 떨어져 지금은 잠시 문 닫았다. 그러니까 상담 때문에 온 것 같다. 커피 맛과 커피 재료 구입에 관한 상담이었다. 아메리카노와 드립 한 잔씩 맛을 보였다. 모 씨는 가게 꾸려나가는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매출이 떨어진 이유를 물었다. 아무래도 백천에서 남천 가는 방향에 모모 가맹점 A카페가 들어온 이후부터는 영업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그 A카페도 영업이 잘 돼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의식이다. 소비경기가 위축한 것도 한 몫 했을 테고 깔끔한 내부공간미로 새로 들어온 카페도 한 몫 했을 테다. 거기다가 본점과 가맹점과의 거리도 그리 멀지 않은 것도 나는 이유를 들자면 영 원인이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다. 하여튼, 새로운 커피를 쓰고 싶어 여러 상담을 했다. 나중에 저녁 늦게 문자가 왔다. 기존의 쓰던 커피를 계속 쓰겠다는 문자다. 나는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잘 생각한 것이라 문자를 넣었고 언제 지나가면 들리겠다고 했다. 그때 커피 한 잔 주셨으면 하는 마음을 보였다. 아까 커피 값을 계산하겠다는 모 씨에 극구 받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꼭 오시라는 문자다.
오후, 3시 커피 교육했다. 카페 경영에 관한 강의였다. 어떻게 하면 좋은 사업체를 만들며 또 어떤 방법을 취하면 사업적인 기반을 갖출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밥집을 하거나 커피집을 하거나 또 다른 그 어떤 종목을 하더라도 단일 가게로 성공하는 사람도 많지만, 대부분 어느 정점을 이르고 나서는 사업이 기우는 집이 많다. 또 어떤 집은 이 시점을 타개하며 더 큰 업체로 발돋움하는 업체도 있다. 내가 현장에 들어가 일을 하며 관리할 때 최선의 가게가 된다. 하지만, 경영은 현장에 내가 없어도 돌아가야 한다. 경영자는 미래에 대한 안목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현재에 닿는 영업성과도 지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직의 안전도 보장받을 수 있겠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하며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세상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결코 없다. 이 거대한 유기체에 버금가는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움직여야 한다. 굳은 손가락으로는 그 어떤 것도 집을 수 없다. 그러니 두드려라! 아무리 두드려도 손끝은 그 지문은 그리 쉽게 닳지는 않는다. 디자인하라! 인문은 모두 같지 않다. 너만의 인문을 그리란 말이다. 세계를 향해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고 동감을 불러일으키는 이것으로 세계가 나를 향해 달려오게 하는 그런 무대를 만들란 말이다. 피땀 흘리는 노력과 그 족적을 남기란 말이다.
오후, 5시 조감도에 올랐다. 부건이가 빠진 가운데 한 달 수고한 노력에 감사를 표했다. 모두가 주인으로 그 역할을 다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알바 성은이가 있었다. 생애 첫 월급을 받았다. 40시간이 넘으니 주휴 시급을 매겼다. 시급이 8천 원이 넘는다. 성은이는 올해 21세다. 커피 메뉴를 더 관심 가질 수 있게, 격려했다.
연개소문에 관한 내용을 읽었다. 삼국사기에는 그의 성을 ‘연淵’대신 ‘천泉’을 썼다. 이는 당고조의 이름이 연이었기에 이를 피하고자 함이다. 연개소문은 이두식 표기다. 그의 설화가 남아 있다. 중국에 전해지는 ‘갓쉰동전’이다. 갓 쉰 살 되던 해에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이 이름이 붙였다. 아버지는 연국혜로 아이가 없었다. 설화에 의하면 쉰 살 되던 해에 정성껏 기도한 끝에 얻었다고 했다. 갓쉰동은 개소문蓋蘇文과 같은 표현이다. 개는 ‘갓’으로 발음하고 소문은 ‘쉰’으로 발음한다.
연개소문에 대한 단재의 평가는 읽을 볼 만하다. 선생은 혁명을 역사적 진보의 의의가 있는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역대 역사를 논하면서도 이에 걸맞은 혁명은 또 혁명을 일으킨 영웅은 별로 없음을 개탄한다. 하지만 연개소문은 다르다. 그는 봉건 세습적인 호족 공화제를 타파하고 정권을 한 곳에 집중함으로써 분권적인 국면을 통일적인 상태로 바꾸었다. 또 반대파는 군주든 호족이든 불문하고 죄다 소탕했다. 이뿐만 아니라 침략전쟁을 일으킨 당 태종을 격파했을 뿐 아니라, 이를 추격하여 중국 전역을 진동시켰다. 그는 혁명가의 기백을 가지는 데 그치지 않고, 혁명의 능력과 지략까지 갖추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그는 죽기 전에 지혜롭고 유능한 사람을 자기의 후계자로 만들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야심은 많았지만, 덕은 부족했다.
연개소문에 대해서는 역대에 수많은 사람에 의해 평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의 기록은 턱없이 부족해서 적국의 붓으로 전해지는 기록만으로 평한다는 것은 잘못된 처사임을 단재는 말한다. 또한, 사대부적인 의식과 신하는 충성으로써 군주를 섬겨야 한다는 불완전한 도덕률로 그의 업적을 부인하는 것에 또 이것으로 역사적 인물을 한 점 살도 남지 않도록 씹어버린 것에 통한한다.
그렇다. 고구려는 우리 역사에 가장 주체성을 가진 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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