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6年 07月 03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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鵲巢日記 16年 07月 03日
비 왔다.
종일 책 읽었다.
저녁에 손성태 선생의 강의를 들었다. 강의 주제는 ‘우리 민족의 대이동’이다. 이 강의를 들으며 매우 놀랐다. 맥시코는 ‘맥이족의 땅’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얘기다. 맥시코 원주민이 사용하는 어휘 상당수가 우리말과 비슷한 점이 많다. 그들의 문화와 풍습 및 지명까지 우리의 것과 같거나 비슷하다. 예를 들면 멕시코는 ‘맥이 곳’ 그러니까 맥이 족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스페인 정복자들의 기록에 의하면 아스텍 원주민들은 820년경 아스땅(아사달)에서 온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기를 업고 키우는 것과 젖 줄 때는 ‘찌찌’라는 것도 팽이치기, 자치기, 윷놀이까지 같다. 점쟁이를 그들은 ‘다마틴이(tlamatini)’라고 불렀다. 이는 우리말 ‘다 마친 이(다 맞히는 이)’의 고어(古語)다.
스페인 왕실은 1521년 아즈텍제국을 정복한 직후부터 가톨릭 신부(神父)인 학자들을 멕시코에 파견하여, 그 원주민들이 어디서 왔으며, 어떤 사람들이며, 무슨 언어를 사용하며, 풍속은 어떠한지 등을 조사하고 기록하도록 했다.
그들은 먼저, “너희들은 어떤 민족이냐”고 물었다. 원주민들은 “우리는 고리 족과 맥이 족”이라고 대답했다. 고리 족이 먼저 이곳에 왔고, 맥이 족은 나중에 왔다고 했다.
손성태 선생께서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부여와 고구려를 건국했던 고리족은 선비족과 수많은 전쟁을 치렀다. 결국, 고구려는 698년 선비족의 후예가 세운 당(唐)나라에 패망(敗亡)했다. 698년 고구려의 후예 대조영(大祚榮)은 북만주 일대를 중심으로 발해를 건국했다. 당나라는 서쪽에서 쳐들어오는 토번족을 막아야 했고, 안으로는 각지의 반란으로 점차 혼란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 틈을 타서 발해는 빠른 속도로 남쪽으로 진격하여, 마침내 옛 고구려 전성기의 영토를 능가하는 지역을 장악했다.
그런데 역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발해는 소수의 고구려인 지배층과 대다수인 말갈족 백성으로 구성된 나라다.”
중국의 ‘신당서’와 ‘구당서’에도 일본의 ‘유취국사’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796년 영충(永忠)이라는 일본 승려는 당나라에 불교를 공부하러 가던 길에 만주를 지나갔다. 그는 만주 곳곳을 둘러보고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마을마다 백성들은 말갈족(숙신의 후예)이었고, 고구려인은 소수였다.”
여기서 고구려인이란 고구려 전성기의 백성들, 즉 3세기의 부여, 고구려, 요동에 살던 우리 선조들을 총칭한 호칭이다. 3세기에는 우리 선조들이 7배나 많았다. 7분의 1에 불과했던 숙신족이 8세기에는 만주의 최대 집단이 되었고, 우리 민족은 소수집단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발해가 멸망한 10세기 이후에, 두 번 다시 우리 민족의 왕조가 그 땅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 민족이 만주를 떠났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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