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6年 07月 10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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鵲巢日記 16年 07月 10日
맑았다.
예전이다. 가맹점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점점 관리하기 힘들 때 이야기다. 가맹점이 많으면 상표 인지가 높아 각 매장은 매출이 오른다. 하지만, 매출이 오른 만큼 여러 가지 일도 많이 생기는 법이다. 하지만, 영업이 안 되는 것보다는 영업 되는 쪽이 낫지 않은가! 서로의 의식은 전보다 많아지고 약속한 일은 스스로 깨뜨리며 점점 본점과 멀어지는 일을 초래했다. 결국, 하나둘씩 가게가 문 닫게 되었다. 이렇게 이끈 본부장 책임이 더 클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서로의 이득, 때문에 스스로 죽는 결과를 초래했다. 똑같은 일이 단일점포 내에서도 일어난다. 어제 다녀온 중국집이 생각난다. 주인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결코 힘들어도 가족원으로 구성하여 함께 일합니다.’ 화교 정통적인 경영 철학(소규모 가족기업 경영체제)이다. 주방은 사위가 맡고 시중은 딸이 아버지는 대표를 맡고 있으며 어머님은 계산대와 다른 부차적인 일을 맡는다. 아내와 식사할 때였다. 잠시 손님이 비는 상황에 가족 모두 모여 식사하는 모습을 보았다.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얼핏 보기에도 그리 손님이 많이 찾을 것 같지 않은 작은 동네에 마련한 가게였다.
경영은 참 힘든 일이다. 찾는 손님이 없고 하루 보내는 시간이 지루하면 갈 길 잃은 사람 같고 갖은 마케팅과 많은 자금을 투자하여 마련한 가게라도 일이 바쁘면 인건비와 여러 수고비로 자원은 탕진하고 만다. 인력을 많이 써 운영한다지만, 경기가 좋지 않고 영업이 되지 않으면 그때는 또 어쩔 것인가! 일 어렵다고 하지만, 같은 매출에 다른 매장을 보아도 결코 적은 인원이 들어가 일하는 것도 아니다. 내부에 조화가 없으면 결국 사람으로 때우니 그러니 얼마나 힘든 일인가!
오후, 우리나라 고대국가의 하나다. 조문국에 대한 다큐멘터리 보았다. 조문국이 자리한 곳은 경북 의성 부근이다. 대표적인 곡창지대다. 이곳은 경산 임당에서 볼 수 있는 또 경주와 다름없는 고총이 꽤 있다.
당시 무덤의 형태는 적석목곽분이었는데 이 적석목곽분에 관해서 더 자세히 알 게 되었다. 많은 인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묘다. 재밌는 사실은 유물 발굴 작업을 통해 고대문화를 되짚어 본다는 것이다. 고총에서 발견된 유물은 신라와 거의 비슷한 것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꽤 있었다. 예를 들면 금동관의 모양이 조금 달랐다. 의성에서 발견된 것은 고구려 것과 더 비슷한 모양을 갖는다. 조문국은 과연 체계적인 국가였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이곳에서 발견한 유물로 재조명한다. 무덤의 양식과 유적은 이를 대변해 준다. 신라와 거의 비슷한 것도 나오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이는 조문국 자체 고유의 문화생활을 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신라는 꽤 황금문화를 나았는데 이 황금은 어디서 났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의성은 금 생산 지역이었다. 금뿐만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로 잇는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신라는 통일국가로 나가기 위해서는 이 의성을 어떻게 해서든 손에 넣어야 했다. 신라의 어느 고총에서는 금동관이 무려 다섯이나 발견되기도 했다는데 이를 뒷받침한 것은 의성이 아니었을까! 의성은 금광이 개발 된 흔적이 꽤 있다. 일제강점기 때에도 상당량의 금을 채굴했다. 지금 의성에서는 조문국을 기억하고 이어가기 위해 발견된 유물을 전시하기 위한 박물관을 건립하고 있다.
자정, 조감도 직원, 본점 권 씨, 권 씨의 남자 친구, 경모, 오 선생이 함께한 가운데 가졌다. 조감도 손익계산서를 작성해서 직원들에게 한 부씩 나누어주고 한 달 어떻게 경영했는지 자세하게 설명했다. 조감도 알바도 참석했다. 알바 박 씨는 다음 알바에게 이것만은 꼭 숙지하여야 한다며 몇 가지 얘기하고 싶은 글을 작성해왔다. 술 한 잔 마셨기에 자세하게 읽지는 못했으나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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