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6年 07月 16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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鵲巢日記 16年 07月 16日
흐리고 비가 내렸다.
아침 토요 커피 문화 강좌 개최했다. 처음 오신 분, 한 분 있었다. 중앙병원에서 급한 전화다. ‘본부장님 제빙기에 얼음이 하나도 없어요?’ 다시 눌러도 안 된다는 전화였다. 상황을 들어보니 수랭밸브 나갔다. 급히 부품 챙겨서 갔다. 현장에 들러 제빙기 들어내고 물 들어가는 수관을 묶었다. 전원을 끄고 뒤판을 뜯고 밸브에 묶인 상하로 들어가는 수관을 풀고, 관련 부품을 뺐다. 새것으로 교체하고 조립이 잘 됐는지 확인했다. 물 새는 곳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한다. 다시 밀어 넣고 어디 새는 곳이라도 있으면 다시 뜯어야 하니 확실히 점검하는 것이 좋다. 다시 뜯는 것은 오래된 기계일수록 부품과 그 주변기기에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니까 말이다. 수리시간은 약 30분 정도 필요했다.
부가세 신고에 관한 얘기와 병원 돌아가는 얘기를 들었다.
가족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토요 커피 문화 강좌를 들으시는 모 씨 가게에서 먹었다. 신대부적에 자리한 중국집이다.
오후, 봉덕동에, 동원이 가게에 다녀왔다. 모두 커피 배송 일로 다녀왔다. 저녁, 조감도에서 먹었다. 태윤 군, 인열이, 부건이, 알바 순영이 모두 남자 넷이 앉아 먹는다. 달랑 찌개 하나만 놓고, 밑반찬도 없다. 참, 내가 그간 너무 했나 싶다. 저녁을 먹고 반찬가게에 다녀왔다. 예전 시지에 살 때 자주 들렀던 시장이기도 해서 신매시장에 갔다. 깻잎 절인 것도 멸치 볶은 것도 애기고추 절인 것도 샀다. 옆집은 어물전이라 아는 집이다. 할매께서 나와 이것저것 정리하신다. 인사했다. 참 오래간만에 왔는데 알아보신다. 이왕 이곳까지 온 김에 갈치도 한 마리 샀다. 근데 갈치가 꽤 비싸다. 할매 말씀은 제주 갈치가 중국 사람도 와서 잡고 일본사람도 와서 잡으니 정작 우리 먹을 게 없다는 것이다. 제주도에서 사면 더 비싸다는 말씀도 놓는다. 물건이 꽤 좋은 것도 있었는데 바짝 들어 보이며 이건 말이야 6만5천 원짜리야! 하신다. 나는 너무 놀라, 또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예~? 6만5천 원. 아까 함께 밥 먹었던 직원도, 식구도, 촌에 부모님도 생각나지만,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할매는 갈치가 아니라 금을 들어 보였다.
저녁, 신라 문무왕 비문에 나와 있는 투후秺侯라는 글자를 통해 김 씨 왕족의 후예를 밝히는 내용이다. 신라 미추왕 때부터 김 씨 계에서 가장 먼저 왕위를 이은 왕이다. 이 뿌리는 어디서 온 것인가! 투후 김일제와 성한왕(김알지의 15대손 세한, 신라의 시조, 김알지라고 하지만, 김일제의 후손이다.) 김알지는 우리 역사에 낯익은 인물이다. 그러니까 김일제는 김알지다. ‘秺侯祭天之胤傳七葉以’흉노를 자기들의 조상으로 여긴다. 유득공도 신라의 뿌리는 김일제라고 얘기했다. 흉노는 북방 유목 민족이다. 말 위에서 태어나 말 위에서 죽었다. 흉노족이 중국에 막강한 힘을 발휘했던 시기가 기원전 3세기다. 한나라 북방 오랑캐라고 일컬었던 유방은 흉노족에게 무릎 꿇기도 했다. 사마천 사기에도 기록이 남아있다. 흉노 선우에 미인을 보내고 공물을 바쳤다. 흉노족이 사용했던 대표적 유물, 동복, 한반도 남단까지 출토됐다. 항상 말 등에 동복을 달고 다녔다. 기마 유목민족에게는 없었어는 안 되는 필수품이다. 동복이 발견됐다는 것은 그 지역에 강력한 추장이 살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동복은 흉노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흉노는 한나라부터 조공까지 받은 대제국을 건설했다. 어쩌면 문무왕은 이른 기상을 얘기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김일제는 흉노 3~5만 명 정도 이끌고 중국에 정착했다. 이를 기반으로 왕국을 세웠다. 투국이라 했으며 금성(金城)이라 했다. 이 명칭은 경주의 금성과 일치한다. 김일제의 후손이 사라졌던 묘연한 시기는 왕망이 전한을 멸망시키고 신나라를 세우다가 패망한 시기다. 김일제의 증손자인 김당과 쿠테타를 일으켰던 왕망과는 이종사촌지간이라는 사실도 알 게 됐다. 이는 반고의 한서에 기록됐다. 왕망이 패한 뒤 투후도 끊겼다는 기록도 있다. (왕망은 전한을 멸망시키고 신나라를 세웠다. 신나라와 신라는? 왕망이 세웠던 신라는 후한을 세운 광무제 유수에 의해 패망했다. 유수는 왕망과 그의 친인척을 그냥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 씨는? )그러니까 김일제의 후손은 큰 회오리에 몰렸던 건 만은 사실이다. 왕망이 죽은 해는 기원 23년, 신라 김 씨의 시조 김알지 기원 65년, 가야 김 씨의 시조 김수로 서기 42년이다. 왕망이 발행했던 화폐 ‘화천’이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되었다. 이는 중국에서 이민 온 사람이 있었다는 얘기다. 신라에서 출토된 유물은 백제와 고구려와는 큰 차이가 난다. 독특하다. 황남대총 발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황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형적인 적석목곽분, 경주 일원에서만 발굴된다. 흉노지배층과 똑같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목민족은 재산을 금으로 한다. 금을 존중한다. 농경민족은 토착해서 살기 때문에 옥을 숭상한다. 신라는 ‘금국’이라는 뜻이 있다. 신라는 마한, 즉 백제 땅에서 산 민족과 언어가 달랐다는 내용도 있다. 추사 김정희도 성한왕은 김알지로 얘기했다. 문무왕은 대당 전쟁을 통해 서기 676년 격전 끝에 20만 당나라 대군을 물리쳤다. 문무왕비는 통일을 이룩한 한반도의 역사를 새로 쓰기 시작한 비다. 흉노의 기상을 밝혔다고 본다. 우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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