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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890회 작성일 16-06-03 08:57

본문

오랫만에 화장을 했다.

허리가 너무 아파 마늘밭에 일하러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식당 주방으로 일을 달라고 했더니

홀로 일을 붙여 놓았다.

 

두 달 동안 햇빛을 가리는 넓은 챙모자에 구겨 두었던 머리를

빗으로 빗어 펴고 스프레이를 뿌려서 가지런히 묶었다

그렇게 칭칭 싸매고 가려도 햇빛은 뚫고 들어와 내 얼굴에

그림자를 묻혀 놓았다

물분을 칠하고, 맆스틱도 바르고

제법 사람 같다.

 

이제 식물이 아니라 사람의 시중을 들어야 한다

가지 하나가 뚝 부러져도

심지어는 목이 통째로 부러져도 신음 소리도 내지 않던 식물이 아니라

입은 옷에 부글부글 끓는 찌개나 탕이 한 방울만 튀어도

지랄을 하며 세탁비 물어내라는 사람들 말이다.

 

사람은 사랑하면 사랑할 수록 진저리 쳐지는 동물이다

징그럽고 토하고 싶을 정도록 비린내가 역겨운 동물이다

 

오랫만에 교수 할베로 부터 전화가 왔다

자신을 쓰레기 같은 지성이라고 말했다.

종로에 무슨 극장인가하는데 뒷골목에서 치킨에 맥주를 마시면서 전화를 한 것 같다

술에 취하지 않으면 나도 그도 전화를 하지 않고 전화를 받지 않는다

마치 술을 마셔야 제정신이 돌아오는 사람들처럼

시 때문에 사랑을 하고, 시 때문에 바람을 피우고

시 때문에 술을 마시고, 시 때문에 술에 취해서 파출소에 끌려가고

시 때문에 스스로를 시를 쓰다 구겨버린 파지처럼 망가뜨려버린

내가 만나본 시인중 진정했던 유일한 시인!

마치 뒷문을 열어두는 것 같아 사랑을 끊었다.

 

의리가 되는 사랑이 있고

사랑 밖에 아무것도 되지 못하는 사랑이 있다

의리가 되는 사랑을 지켜야 할 때

사랑 밖에 아무것도 되지 못하는 사랑을 끊어야 한다.

시라곤 한 줄도 쓸 줄 모르고 한 줄도 읽지 않지만

십년 넘도록 시를 쓰느라 미쳐있던 나를 지켜 주었다

그래서 의리는 사랑이 되었고

사랑 또한 의리가 되어간다

 

지금도 심야버스를 타고 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어둠마저 낯선 서울 어느 거리에서 택시를 타고

진주에는 내리지도 쌓이지도 않는 눈을 바라보며

아!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택시 기사가 당황하도록

엉 엉 울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이여!

사랑밖엔 아무것도 될 수 없어서 발목을 끊고

물 한모금 주지 않고 말려 죽여서 일기장 갈피에

묻어버리고, 그러고도 나는 시를 쓸 수 있을거라고

자판을 두들긴다

 

가끔 사랑밖에 아무것도 될 수 없었던 사랑의 미히라를 꺼내들고

영혼처럼 빠져나간 향기를 맡는다

그 마저 배신 같아

후닥닥 책장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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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경호님의 댓글

profile_image 이경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 재미있는 읽을 거리가 이곳에 보석처럼 있었군요.
참 재미있게 잘 쓰신단 말이야....
폼이 참 믓쪄요,
야, 이것들아. 이렇게 쓸테니 어디 한 번 마음대로 상상해보시지? 하는 왈패 폼!
아무리봐도 보석 같아요,보석... 진주라는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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