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동안 고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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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엮은 천 개의 달을 네 목에 걸어줄게
네가 어디서 몇만 번의 생을 살았든
어디서 왔는지도 묻지 않을게
네 슬픔이 내게 전염되어도
네 심장을 가만 껴안을게
너덜너덜한 상처를 봉합해줄게
들숨으로 눈물겨워지고 날숨으로 차가워질게
네 따뜻한 꿈들을 풀꽃처럼 잔잔히 흔들어줄게
오래오래 네 몸속을 소리 없이 통과할게
고요할게
낯선 먼먼 세계 밖에서 너는
서럽게 차갑게 빛나고
내가 홀로 이 빈 거리를 걷든, 누구를 만나든
문득문득 아픔처럼 돋아나는 그 얼굴 한 잎
다만
눈 흐리며 나 오래 바라다볼게
천 년 동안 소리 없이 고백할게
신지혜, 천 년 동안 고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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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물풀님의 댓글

그리워질 때 / 김설하
붉은 노을이 풍경으로 걸리더니
허리춤까지 자란 풀과 나무 그늘
나리꽃 순결한 양지 녘에도 어둠이 찾아오고
오리나무 빼곡하던 숲도 커다란 몸집을 웅크렸어요
모든 소란이 고요로 단단해지고
내일을 위하여 단꿈을 준비할 때
어둠 속으로 사라진 에우리디케는 돌아오지 않고
하늘 저 어디쯤에서 거문고를 뜯는
오르페우스의 슬픈 연주가 별빛으로 흐르는 밤이에요
철마다 제각기 다른 빛을 내며 별은 반짝거릴 것이고
언젠가는 이별이 오리라는 것도 모른 채
그로 하여 그리움이 쌓이는 것도 모른 채
수많은 인연 중에 단 한 사람과 우리는
별을 헤던 손가락 걸어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죠
새벽이 오면 골목 저 끝부터 여기까지
뿌연 안개 휘감아 외로움이 형체를 잃을 때
동트는 창으로 젖은 엽서 한 장 날아들까요
흔한 유행가 같은 사랑이라도
그립다고 말할 수 있는 안타까운 확인 말이에요